여섯 번째 이야기
나에게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기 위해 나름대로 애썼다.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니 이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면을 발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이를 스스로 증명하기 위해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싸움을 했다. 내 안의 불안, 두려움과의 싸움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기고 졌지만, 그 싸움에 최선을 다했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매일의 일정은 정해진 것 없이 그날의 나의 회복 상태에 따라 결정되었다. 잠에 들 때면 내일 나에게는 어떤 일이 생길까, 어떤 검사를 하게 될까 하는 긴장된 마음으로 잠을 설치기도 했다. 생산성 없는 고민이었지만 그래도 나의 미래에 대한 시선을 놓치지 않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기도 했다. 시간에 맡기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내 몸과 정신을 가만히 둘 수는 없었다.
다음날, 심장 초음파 검사를 통해 좌심실과 우심실 회복 여부를 확인했다. 우심실(피를 받는 근육)은 조금 회복되었고, 좌심실(피를 짜내는 근육)은 덜 회복되었다고 했다. 심장 수축 기능(EF)도 조금씩 회복되고 있었다. 전반적으로 회복이 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혈압차도 평균 10 정도로 늘었고 수치적으로는 아주 조금씩 괜찮아지고 있다고 느꼈다.
이때까지는 아직 심장보조기구나 심장이식은 마지막 수단으로 보고 최대한 자연 회복할 수 있도록 지켜보자는 분위기였는데, 나의 경우 우심실과 좌심실이 모두 좋은 상태가 아니어서 심장보조기구를 넣는 것은 큰 효과가 없다고 하셨다.
고용량의 스테로이드 투약은 다른 장기에 영향을 줄 수 있어서 사용하지 않고 있다가, 소용량으로 투여를 시작했다. 스테로이드로 인해 염증 조절이 되는지 등의 여부를 확인했다. 스테로이드 투약을 했는데도 큰 반응이 없으면 정말 심장이식과 같은 최후의 수단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이때부터는 정말 이식이 나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를 바라보는 의료진 분들의 표정도 점점 진지해지는 듯했다. 특히 아침 회진 시간이 다가오면 괜히 몸이 위축되고 긴장됐다.
며칠 후, 신장 투석을 시작했다. 신장이 좋은 상태가 아니기도 했지만, 의료진 분들은 신장이 더 나빠지기 전 조치하는 방법으로 투석을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분들의 표정과 말투는 그 말이 나의 마음을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느껴지게 하기도 했지만, 나는 그냥 그 말을 문장 그대로 믿기로 했다.
신장 투석을 하면서 몸이 더 으슬으슬해졌지만, 심장 이식을 위해 이제는 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더 나빠지고 조치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기 전에 예방하는 차원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려고 했다.
마인드 세팅은 내가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장점 중 하나였는데 그게 참 쉽지 않았다. 몸이 아프니 마음도 생각도 건강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항상 좋은 생각만 할 수 있겠어. 이 정도면 긍정적인 나를 아직 놓치지는 않았으니 나는 아직 강해!" 라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눈물이 나올 것 같으면 꾹 참았다. 눈물이 흘러내리면 내가 깊숙이 봉인해두고 있는 모든 감정이 같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중환자실에서 지내며 눈물 흘리지 않기를 해냈다는 것은 나 혼자만의 소소한 자부심이다.
(후에 생각해 보니 두 번 울었는데, 다리에 에크모 관을 삽입한 부분 소독이 너무 아파서 소독하며 울었던 딱 두 번이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고통이었으니 스스로 봐줬다!)
매일 새롭게 추가되는 검사와 치료에 너무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 했고, 일희일비하지 않고 나의 상황을 받아들이려 애썼던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