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이야기
수술 전까지 위 내시경을 여러 번 시행했다. 위궤양 부위 재출혈로 인한 지혈 때문이었다. 혈변과 피 섞인 구토를 하기도 했다. 이를 위해 헤파린의 사용도 일시적으로 중단하기도 했다.
에크모를 사용하면 피 순환과 피가 굳어 알맹이가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헤파린이라는 피를 묽게 하는 약물을 사용한다. 이를 중단하는 것이 좋지는 않지만 위 내부의 출혈과 이로 인한 혈변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어떤 선택을 하는 것에도 위험 부담이 있지만 지금 당장의 문제 해결이 더 중요한 방향으로 결정하며 치료를 진행했다.
의료진 분들은 작은 것 하나를 결정할 때에도 굉장히 신중하셨다. 그들의 신중함이 많은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믿었다. 그래서 나는 나를 온전히 그분들의 결정에 맡길 수 있었다.
언제 결정될지 모르는 이식을 위해 몸 상태가 나빠지지 않게 하려고 했다. 물론 나의 의지로 되는 것은 아니기는 했지만 말이다. 혹시나 자연적으로 나아지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와 상태가 더 나빠지지 않았으면 하는 긴장과 걱정으로 하루를 가득 채웠다.
매일 밤이면 오늘은 아무런 에피소드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일어났다가 잠들고는 했던 것 같다.
심장 이식을 준비하는 하루하루를 보내며 내가 이식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그동안 핸드폰을 들고 있으면서도 단 한 번도 심장 이식에 대해 찾아보지 않고 있었다. 모르는 것이 약이라고 너무 많이 알아버리면 더 안심하기보다는 불안과 막연한 두려움만 늘 것 같았다. 그렇지만 이제는 이식이 나의 일이 될 테니 어느 정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검색하기 두려웠던 그동안의 기간이 무색하게도 인터넷에서 심장 이식에 대한 정보를 찾기는 생각보다 어려웠다. 심장 이식 환자가 비교적 적어서일까, 성공적으로 회복한 사람이 적어서일까, 아니면 환자들의 연령대가 높은 편일까 등 여러 생각이 들었다. 심장 이식을 검색했더니 신장 이식으로 검색어가 바뀌어 있기도 했다.
오히려 그 부분이 나의 알고자 하는 욕구를 부추긴 것이었을까. 나는 인터넷 세계 구석구석을 다니며 자료 수집을 하고, 심장 이식에 대해 알고자 했다.
이식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삶이란 무엇일까' 하는 문장이 자꾸만 머리를 맴돌았다. 내가 기다리는 이식은 누군가의 슬픔과 연결된 것이었다. 나도 나의 삶을 사랑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
아무리 끝없이 큰 마음으로 감사를 표현한다 해도 그 마음이 닿을 수 없다는 것도 기분을 이상하게 했다. 이식 기증자 가족분들, 기증을 받고 건강한 삶을 살아가거나 그렇지 못한 결과를 가진 분들의 글들을 찾아 읽어보며 나의 마음을 정리해보곤 했다.
건강해질 수 있다는 희망, 만약에 대한 두려움, 막연한 기다림, 죄책감 비슷한 감정의 회오리는 때로는 잔잔하게 가끔은 마을을 송두리째 집어삼키는 재해처럼 내 속을 헤집었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복잡해지는 마음과는 별개로 나에게는 살고 싶은 이유가 너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