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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는 도시

생장 드 포/ 서귀포

by 순쌤

ST.Jean pied de port 가는 날

파리에서 스페인과의 국경도시 생장으로 간다. 기차로 약 5시간 걸린다고 한다. 기차 밖 풍경은 그림이다. 노란 유채꽃과 그리고 밀밭일까, 가지런한 푸른 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거기에 간간이 나타나는 그림 같은 집들을 보니 오르세에 있는 그림이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었구나 싶다.


어제까지의 도심지 파리는 조금 질서 없고 흐릿한 빛깔이었다. 서울의 시민과 다를 바 없이 피곤에 쩐 모습의 출근길의 파리지엥들, 칙칙한 전철 안.... 그러나 파리에서 조금 벗어나 테제베가 신나게 달리는 곳은 이렇게 눈의 한계를 넘은 지평선과 원색의 땅이다. 이런 지평선을 가진 큰 나라들의 농부들은 일 하는 데 안 힘들까? 작은 땅에서 온 사람의 오지랖...

기차에서 내려 버스로 갈아타고 목적지인 ‘생장피에드포’에 오다. 안내 책마다 만났던 이 작은 마을, 이 낯선 이름의 마을, 까미노를 시작하려면 꼭 와야 하는 마을, 이곳에 내가 오다니, 드디어 꿈에 그리던 그 길을 시작한다는 거다.

‘사람들 가는 곳을 따라’(이 문구도 모든 책에 다 나온다.) 순례자 협회로 간다. 순례자 카드를 만들기 위함이다. 줄이 길다. 세월아 네월아 끝에 우리 차례. 카드를 만들고 도장을 받고 알베르게와 코스 안내물을 받고 2유로를 내고 끝. 예약한 알베르게를 찾아가면 된다.

알베르게에는 침대만 12개 아무 감정 없이 놓여있다. 우리 둘이 제일 먼저다.

일단 씻자. 샤워실이나 화장실이 남녀구분이 없구나. 그냥 들어가서 볼일 보고 씻으면 되는 구조, 샤워를 하는데 좀 갑갑하다. 이렇게 30여 일을 지내야 한다. 흠, 요걸 잘 해내야 해.


내일부터 걷는다! 799km라고 했다. 첫 고비가 첫날에 있단다. 바로 피레네 산맥 넘기! 할 수 있다!


제주로 가는 날


쾌청하다. 짐은 최대한 간단하게 쌌다. 노트북과 팬플룻은 들고 타는 걸로. 걷기 끝내면 바로 준비해야 할 한국어교사 면접시험용 책 하나 빼내니 정확히 허용치인 15kg이다. 제주에서 공부하는 것은 접기로 한다. 핑계 제대로다. 한 달은 준비해야 한다는데 두꺼운 그 책 말고는 뺄 것이 없다. 좀 신경 쓰이긴 하지만 걷고 와서 일주일 빡시게 준비하는 걸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면 되고,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안 하면 되고,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은 기도하면 되고, 어려워도 해야 할 것은 인간적으로 하면 되고, 이 이상 욕심부리지 않으면 되고, 사랑하면 되고, 존중하면 되고, 이해하면 되고.... 짐 하나에 이렇게 인생 오지랖 의미 부여하며 정리 끝.

창 밖으로 한라산과 제주 시내가 들어온다.

언제 봐도 성스러운 저 한라산! 흰 구름이 옅게 양털처럼 퍼져있다. 역시 멋있다.

걷기를 쉬는 일요일에 저 산엘 오르기로 예약을 해놨다. 곧 만나요. 님!


버스를 타고 서귀포로 간다.

신시가지 너머 바다가 보이고 범섬이 떠 있는 풍경이 배경인 아담한 호텔, 침대 두 개와 욕실... 딱 두 명이 자고 쉬고 할 수 있는 공간, 이만하면 한 달 간결한 시간을 보내기에 좋다.

동네 마실을 나온다. 하늘에 펼쳐 있는 구름 하나가 감성적 분위기 자아낸다. 먼 남쪽 나라에 온 것 같고, 바람 살살 불고, 내일부터 무심히 길을 걸을 거고, 설레고... 이 평화로움이란...

총길이 437km, 전체 27코스로 된 길이다.

만난 지 삼십 년이 넘은 우리, 이제 그날처럼 막 젊지는 않아. 발목 한 번 다친 경험이 있던 친구는 잠시 걱정도 한다. 그러나 천천히 걷자. 할 수 있을 거야.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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