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내책자에 소개된 ‘보트쉐드’, 넬슨만에 정착해 있는 배에 마련된 레스토랑이다. 뉴질랜드의 명물 초록홍합요리와 함께 샌드위치로 점심을 먹다. 햇살에 반짝이는 잔잔한 바다 위로 요트들이 노닐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부유한 유람을 하고 있는 느낌이다. 학생들 단체가 요트 훈련을 받고 있다. 직업상 이런 모습은 관심 있게 보게 된다. 꼼꼼하고 안전하게 교육을 받고 있는 것 같다. 학교를 떠나 바다에서 이런 교육을 받는 아이들은 좋겠다. 우리도 그런 여유가 있는 나라가 되길...어른들도 요트 위에서 바람을 타고 있다. 다들 평화롭고 안전하게 보인다.
픽턴은 북섬과 남섬을 오가는 페리항이 있는 곳.
크지 않은 도시인 것 같은데, 역시 평화롭고 활기찬 느낌이 팍팍 온다. 많은 캠퍼밴과 차들을 실은 페리는 북섬을 향해 남섬의 도시를 날렵하게 빠져나가고 있다. 북섬 웰링턴까지 3시간 여를 항해한 후 저녁 10시 즈음에 도착할 것이다. 오늘은 도착한 곳에서 그냥 야영을 하기로 했다. 홀팍에 너무 늦고 예약 자리도 없단다.
해가 진다. 달과 별이 배를 따라온다. 고향 생각...
웰링턴을 저기 앞두고 화려한 도시의 야경이 다가오는데 지금까지 보아온 뉴질랜드가 아니다.
주차장을 찾아들어간다. 지키는 사람도 돈 받는 사람도 없다. 일단 차를 세우자. 차 세울 수 있는 곳이면 잠만 자면 되니까. 근데 소심하게도, 밤에 혹시 누가 오면 뭐라 하는 거 아닐까? 벌금 엄청 날아오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느닷없이 들면서 자다가 막 뒤척이다.
통가리로 국립공원으로
아무도 뭐라 하러 오지 않았고 아침만 오다.
시내 한 바퀴 돌고 선착장으로 가서 씻고 바로 통가리로 국립공원으로 달린다.
북섬의 길은 남섬과 달리 길이 그냥 주욱 뻗어있다. 구불구불하지 않다. 길가는 수려하지 않다. 우리나라 평범한 지방도로와 비슷하다.
남섬의 길은 직선도로가 많지 않다. 산길은 구불구불 무섭다. 대신 길가의 경관은 수려하고 새롭고 놀라움을 준다. '남섬과 북섬이 이렇게 다르구나.' 그러면서 간만에 쌩쌩 달린다.
웰링턴을 벗어나 바로 바닷길이 나오면서 뉴질랜드식 시원한 경관을 지닌 길이 이어진다. 이런, 길도 직선이고 게다가 바다가 보이는 길이라니 매우 감사하군.
바다를 앞에 두고 차를 세워 아침을 먹는다. 그리고 달린다. 운전할 맛 난다. 뻥뻥~
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눈 덮인 루아페후 산 그리고 원추형의 어떤 산! 와우! 차를 멈춰야 하리.
가슴이 뛴다. 저 산을 올라갔음 좋겠다. 가이드북에는 산악인 박영석 씨도 못 올라갔다고 쓰여있다만...
실리카래피드 트레킹
와이파파빌리지 홀팍은 숲 속 계곡 옆에 멋스럽게 자리 잡고 있다.
일단 트레킹 하나 하기로. 왕복 2시간 30분 소요되는 실리카래피드 트랙이 있다. 계곡을 따라 걷다가 벌판이 나오고 다양한 경관을 볼 수 있다는 안내가 부담 없이 걸을 수 있을 것 같아 선택한다. 확 트인 벌판으로 나오자 앞에 아까 본 두 산이 펼쳐진다. 세상에....
저 원추형 화산은 봐도 봐도 신기하다. 이름하여 나우루호에 산이란다! 멋지다.
올라갈 때 할머니도 한 분 보고, 달리기 하며 내려오는 청년 둘을 본 것으로 사람 구경은 끝이다.
땡볕이기는 하나 화산에서 흘러나오는 계곡물에 세수를 하는데 세수해도 될까? 물이 불그스레하다. 반환점까지 돌고 왔던 길 그대로 돌아오지 않고 다른 길로 이어진 것은 뉴질랜드 트레킹에서 처음이다. 아무도 없는 산길의 주변 풍광은 내 맘을 완전 빼앗는다. 신비스럽고 태곳적의 세상을 보는 듯하다.
종착점은 빌리지홀팍에서 2km 떨어진 곳, 뻐근한 다리를 흔들며 꽃 보며 일없이 내려오는데 지나쳐가던 자동차가 슬슬 후진하더니 우리 앞에 세운다. 얼굴에 친절이 쓰인 부부가 창문을 내리며 타란다. 고마워요!
저녁을 해 먹고 나도 해가 한창이다. 이렇게 일찍 하루 일과를 마친 적이 없다. 마을로 마실 나가니 조그마한 마을의 바가 쿵작거린다. 들어가 튜이 맥주 한잔. 밴드가 연주를 하고 노래를 불러대는데 정말 신난다. 이미 부른 배에도 맥주는 맛있고 몸은 그냥 흔들린다. 열린 바의 앞 배경은 나우루호에 화산. 오늘 트레킹 때 나의 맘을 빼앗은 산, 저렇게 멋있고 잘생긴 산이 술집의 배경이라니 어찌 술맛이 나지 않으리....
통가리로 국립공원 루아페후산
오늘 갈 루아페후 산도 나우루호에 화산처럼 그런 원추형 산이었으나 얼마 전 화산이 폭발하여 왕관모양으로 된 거란다.
곤돌라승강장까지 차를 타고 올라간다. 구불구불 올라가는 길이 화산이 폭발한 산답게 '태곳적'의 거친 분위기를 자아낸다. 주차장 위로 전망대 겸 카페가 있다. 거기서 곤돌라를 타고 2,000미터 높이까지 올라가는 거다. 거기에 뉴질랜드에서 제일 높은 카페가 있다. 공기 확 다르고 경관과 전망 당연히 굿! 이렇게 자연을 잘 활용하고 지키고 있구나... 스위스에서 느꼈던 그 부러움이다.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숨을 고른다. 등산을 하기로 한다. 아이들도, 연세 있으신 분도 올라가는 것을 보니, 우리도 갈 수 있겠다. 왕복 2시간 걸린다는 스카이라인 워크 코스. 겨울에는 스키장이 되는 것 같다. 눈 덮인 겨울산, 위에서 스키 타고 내려오는 모습이라니... 얼마나 황홀할까 상상이 된다.
올라가는 길은 크게 어렵지 않다. 화산재와 흙과 돌들로 되어있어 길의 구분이 분명치 않으나, 중간중간 막대기를 꽂아놓아 길을 안내하고 있다. 운동화만 있으면 올라갈 수 있겠다. 물병 하나 들고 가볍게 올라간다.
오호 놀라워라. 스카이라인에 올라섰을 때의 그 기분은 뭐라 형용하기 어렵다. 이 산을 오르지 않았으면 얼마나 아쉬웠을까. 후회했을까. 정상은 설산이고 그리고 바로 왼쪽에는 원추형의 잘 생긴 그 나우루호에 산이 떡허니 솟아있다..... 이런 광경을 어디서 볼 수 있을까. 화산 등산은 처음이다. 푸른 산의 아름다움이 아닌, 신비롭고 담백한 느낌과 척박한 느낌이 오히려 힘을 느끼게 하는 산이다.
난 이 산이 너무 좋아지려 한다. 정상까지 갈 수 있으면 갈 것 같은데 날씨가 좋지 않다고도 하고 가이드와 함께 가야 한다고도 하고... 영어가 짧아 잘 모르겠다. 오를 수 있는 바위까지 다 오르고 모든 포즈를 다 취하고 모든 기쁨을 다 누리고 모든 환희를 다 맛보다.
내려올 때의 곤돌라는 '조금' '많이' 무서웠으나, 난 이 나라를 신뢰하기로 했으니까 '이젠 하나도 무섭지 않다'로 마음 정리.
여한이 없이 뉴질랜드를 보았다. 남섬 여행이 주요 목적이고, 북섬은 그냥 덤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예상치 못한 대어를 낚은 기분이다. 이렇게 감사할 수가. 전생에 무슨 공덕을 쌓아서 이런 아름다운 세상을 보는가...... 통가리로...
로투르아로 가는 길은 완전 돌아가는 길 1번 도로를 택한다. 가이드책에 이 길, '데저트 길'이 너무 신비롭고 좋았다며 추천하니, 두 시간이 더 걸리지만 간다. 주변은 사막이며, 우리가 오른 산들은 가는 내내 우리를 배웅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뻥뻥 뚫린 시원한 길 1번 국도! 이런 선물로 아쉬움을 달래주다니... 먼저 다녀온 이의 깨알 꿀팁 안내가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