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밥을 함께하면 보이는 것들
1편
[밥을 함께하면 보이는 것들]
“여보세요.”
“밥은?”
“밥은 먹었어?”
밥, 밥, 밥.
어련히 알아서 챙겨 먹겠지.
그만 좀…
괜히 할 말은 없고,
그저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꺼내는 말인 줄 알았다.
좀 귀찮게도 느껴졌다. 세상의 모든 자식들이 그러하듯.
그런데 이제는
내가 그 말을 아버지께 하고 있다.
“밥은 잘 드셔야 해요.”
“밥 드셨어요?”
“꼭 세끼, 제시간에 드셔야 해요.”
이제 밥, 밥, 밥—그 말들을 내가 하고 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서 꺼내는 말이 아니다.
혼자 식사하시는 게 싫으셔서 차려 드시기 귀찮아서
그냥 넘기신다는 걸 알기에 뵐 때마다,
갈 때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을 대접하고 싶어진다.
이제 내게 밥은 단순한 한 끼가 아니다.
식사 자리는 사랑이고, 걱정이고, 진심이다.
언제부턴가
식사 자리의 무게를 느끼기 시작했고,
그 시간을 함께 나누는 사람에게 조심스럽게 마음의 평가를 내리기 시작했다.
밥을 함께하면 보이는 것들
얼마 전, 어떤 분과 몇 번의 식사 자리를 함께했다.
그리고 나는 조용히 결심했다.
다시는 그분과 밥을 먹지 않겠다고
그전까지 그분은 내게 꽤 좋은 이미지였다.
말도 조리 있게 잘하시고, 반듯한 인상에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예의 바르고 유연하게 다가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몇 번의 식사 자리 후 그 인상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 사람은 늘 늦었다.
사정상 어쩔 수 없는 날도 있었겠지만 반복되는 건 우연이 아니다.
늘 다른 사람들이 먼저 도착해 물을 따르고 수저를 챙기고 자리를 정돈하고 조용히 기다리고 있을 때
그는 바쁜 하루를 견디고 온 사람처럼 마지막에 모습을 드러냈다. 습관처럼...
“오늘도 회의가 길어져서요.”
“아침부터 너무 정신이 없었네요.”
미안함보다는 피곤함이 먼저였고
자기 상황을 설명하는 데 익숙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 순간, 아주 작고 낯선 불편함이 마음 한쪽에서 일었다.
그리고 나는 그 감정을 놓치지 않았다.
사람을 판단할 땐 말보다 느낌이 먼저 온다.
말은 감출 수 있지만 반복되는 태도와 공기의 흐름은
결국 본심을 흘려버리고 만다.
그 사람과 함께한 몇 번의 식사 자리에서 나는 그의 말보다 ‘움직임’을 읽었다.
항상 늦고, 당당하게 앉으며, 누군가가 준비해 둔 물과 수저를 당연히 받아들이는 사람.
타인의 시간을 사용하는 데 죄책감이 없는 사람.
그리고 자신이 그렇게까지 ‘배려받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
그건 단순한 무례함이 아니었다.
그는 그렇게 자기중심적인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누구도 적극적으로 무시하진 않지만, 누구의 사정도 깊이 들여다보지 않는 사람.
겉으로는 반듯하지만, 속은 비좁은 사람.
나는 왜 그런 걸 느낄 수 있었을까?
돌이켜 보면, 내 안에도 오래전부터 사람을 조용히 관찰해 온 습관이 있었다.
말을 아끼는 대신, 그 사람의 눈빛과 손의 움직임, 대화 속의 빈틈을 보는 것.
그 사람의 존재 방식을 천천히 읽어내는 것.
그건 내가 나를 지켜내기 위해 길러온 감각이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분위기를 먼저 살폈다.
말보다 표정, 표정보다 말 없는 기류에 민감했다.
사람들의 기분 변화, 친구들 사이의 온도차, 낯선 사람의 말투 하나에도
가볍게 넘기지 못하고 오래 머물러 있었다.
그건 피곤한 일이지만 나를 외부로부터 지켜주는 감각이기도 했다.
그 감각은 지금도 작동한다.
내가 믿어도 되는 사람인지,
내 에너지를 나눠도 되는 자리인지,
그 판단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나만의 ‘내면의 감시자’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 감각은 틀리지 않았다.
더는 마음을 나누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조용히 마음을 접었다.
두 번 다시, 그 사람과 밥을 먹지 않기로.
밥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다.
함께 밥을 먹는다는 건, 시간을 나누고 마음을 조율하는 일이다.
그 자리에서는 사람의 리듬이 드러난다.
그 리듬이 나와 너무 다르다면, 나는 굳이 그 밥상을 지키고 있을 이유가 없다.
그 사람은 밥상 위에서 이미 충분히 말하고 있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그리고 나는 그걸 알아버렸다.
밥상은 거울 같다.
누군가의 태도와 시선, 말투와 손끝이 그대로 비친다.
그리고 나는, 이제 그런 식탁 위에서
누군가의 진심을 천천히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