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편 하루의 쉼, 점심밥
5편
[하루의 쉼 점심밥]
요즘 회사들은 점심시간에 회식을 자주 한다.
회식 문화가 많이 사라지고 있는 분위기가 된지는 오래 되었다.
그래도 일 년에 한두 번쯤은 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저녁보다는 모두가 점심을 먹는 걸 선호한다.
공식적인 회식이 아닐 때도 있다.
사장님과 몇몇 팀원들이 함께 나가 점심을 먹는 식사 자리
겉보기엔 가볍고 편안해 보인다.
단체 회식이 아니라 부담도 덜고, 어쩌면 소속감을 다질 좋은 기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런 자리가 나는 참 불편하다.
아무리 오래 사회생활을 했어도, 여전히 피하고 싶은 자리이다.
요즘은
혼자 먹는 점심에 푹 빠져 있다.
그 시간만큼은, 누가 뭐래도 나만의 작고 단단한 휴식이다.
사무실을 벗어나 되도록 조용한 식당에 들어가(지역의 특성상 한적한 식당이 있는편이다.)
입맛대로 메뉴를 고르고
내 속도대로 밥을 먹는다.
식사 후엔 커피 한 잔을 들고
천천히 걷는다.
그 모든 순간이
하루 중 가장 나다운 시간이다.
하지만 누군가와 함께 나가게 되는 점심은
더 이상 ‘쉼’이 아니다.
업무의 연장선
혹은 유지 관리해야 할 ‘관계’의 일부가 되어버린다.
밥을 먹으면서도 말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
눈치를 챙겨야하고, 리액션하고, 웃고, 맞장구친다.
그렇게 점심시간이 쉼이 아니라 노동이 되는 날이면
하루가 유난히 길고 지루하게 느껴진다.
점심시간에 조차 쉬지 못한 날엔 몸보다 마음이 더 피로하다.
혼자만의 점심시간이
심심해 질때 쯤이면
지인들도 나를 보기 위해 점심시간에 맞춰 만남을 갖자고 한다.
오랜만에 얼굴 좀 보자며 찾아오는 친구들
그럴 때 나는,
언제나처럼 조용히 혼자 나가는 척 회사 건물을 빠져나간다.
별도로 보고할 것도 없고,
묻는 사람도 없다.
혼자 밥 먹는 게 익숙한 나에게
그 시간은 또다른 숨 쉴 틈이다.
지인과 나누는 점심은 회사 동료와 먹는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진짜 웃음이 나오고,
내가 ‘편하게’ 말할 수 있고,
밥맛이 난다.
같은 식사인데 이렇게 다르다.
가끔 옆자리 직원이 조심스럽게 묻는다.
“오늘 점심에 뭐 드실 거예요? 같이 가실래요?”
그럴 땐,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으면 따라간다.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있는 일이고, 그 정도는 예의니까.
하지만 역시나,
그 자리에서도 나는 불편하다.
밥보다 말이 많고, 그 말은 대부분 누군가에 대한 뒷얘기다.
누구는 일을 못 한다, 누구는 눈치가 없다, 부장은 이렇고, 팀장은 저렇고…
그 말들이
밥을 씹는 소리보다 더 시끄럽다.
말을 하지 않으면
‘왜 가만있지?’ 하고 이상하게 볼까 싶어,
나도 어느새 맞장구치고,
웃고, 욕도 하고, 그럴듯한 뒷말을 더하고 있다.
마치 진짜 즐거운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기가 쪽쪽 빨리고 있는 중이다.
그런 자리에서 돌아오는 길, 늘 마음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린다.
“이런 점심을 매일 하라면, 나는 절대 못해.”
그리고 그 생각은
날 더더욱 혼자만의 점심으로 밀어 넣는다.
밥은 밥인데,
마음이 먹는 밥을 먹는다.
나는 그냥, 조용히 밥을 먹고 싶다.
누구의 속도나 박자에 맞추지 않고
나의 속도대로, 나의 취향대로, 말이 없어도 불편하지 않은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점심시간은 누군가에겐 네트워킹의 시간일 수 있고,
어떤 이들에겐 사회생활의 연장일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모든 것과 거리가 먼, 나만을 위한 하루치 숨 같은 시간이다.
그 시간이 있어야 나는 오후를 버틸 수 있다.
다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말을 나누고, 웃고, 일하고, 대응할 수 있다.
그러니 부디, 내가 혼자 밥을 먹는 걸
쓸쓸하게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혼자일 때 쓸쓸하지 않다.
오히려 가장 편안하다.
그게,
내가 점심시간에 진짜 원하는 전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