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편 소화제를 먹는 친구, 혼자 밥 먹는 나
3편
[소화제를 먹는 친구, 혼자 밥 먹는 나]
나에게 아주 오래된 친구가 있다.
함께한 시간이 얼마나 되었는지 이젠 잘 기억나지도 않는다.
친구라기보다 삶의 일부처럼 느껴질 만큼 오랜 시간 곁에 있어 준 사람.
힘들 때 내 얘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어떤 문제든 복잡하게 얽지 않고 단순하게 풀어낼 줄 아는 사람.
어찌 보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사람이다.
그 친구와 나는 많은 걸 공유한다.
생각의 결도 비슷하고,
감정의 흐름도 다르지 않다.
내가 말로 다 설명하지 않아도
척하면 척, 마음이 통해버리는 그런 사람.
그래서 나는 늘 이 친구를 소중히 여긴다.
그런데
딱 하나.
정말 딱 하나 맞지 않는 게 있다.
식성
그 친구는 미각이 아주 예민하다.
예민하다는 건 단지 음식에 대한 기준만의 문제가 아니다.
식당의 분위기, 종합원의 친철, 간의 농도, 식감 등 여러 가지 조화로움에 대해
입에 넣는 모든 것 뿐만 아니라 보는거 느끼는 것에 모두 민감했다.
입맛은 곧 성격이라고들 하는데
그 친구를 보면 정말 그렇다 싶다.
음식에 대한 태도를 보면
어떤 면에서는 삶을 대하는 자세 같기도 하다.
나는 정반대다.
나는 웬만하면 다 잘 먹고
식사는 음식보다 사람과의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좋은 음식보다 더 좋은 건,
그 자리에 함께 있는 사람이니까.
처음엔 이런 차이쯤이야 웃으며 넘겼다.
"얘는 원래 저래."
"입맛이 까다로워서 그런 거지, 나를 싫어하는 건 아니잖아."
스스로 이렇게 위로하고 넘겼다.
하지만 문제는 반복될수록 작지 않게 느껴졌다.
식사 자리가 잦아지고,
그 친구의 표정이 식탁 앞에서 더 무거워질수록
나도 덩달아 불편해졌다.
맛집이라며 신나게 데려간 식당에서
친구는 젓가락을 놓고 한참을 메뉴판만 바라본다.
음식이 나오면 한두 입 먹고는 손을 멈춘다.
간이 세다, 느끼하다, 익힘이 덜 됐다…
표현은 조심스럽지만
결국 나와 함께하는 식사가 즐겁지 않는거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그 친구와 밥 먹는 게 두려워졌다.
만나자는 말을 들으면 반가움보다 먼저 떠오르는 건
‘이번엔 어디를 가야 괜찮다고 할까’라는 걱정.
심지어 집에 놀러 온다 해도
“그럼 뭐 좀 먹고 와. 집에 아무것도 없어.”
자연스레 이렇게 말하게 된다.
한 두 번은 화도 내봤다.
"좀 그냥 먹으면 안 돼?"
"내가 너 입맛 다 맞추기 너무 힘들어."
그렇게 툭 던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말 뒤엔 늘 불편한 공기가 흘렀다.
그 친구는 억지로 맞춰주려 했고,
그 억지가 더 큰 부담으로 돌아왔다.
결국, 소화제를 꺼내 먹는 그 친구의 뒷모습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장면을 보고 있자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정말 모르겠더라.
그래서 더 이상 억지로 서로에게 맞추기 않기로 했다.
함께 밥을 먹는 자리를 줄이고,
그 친구에게 내 마음을 강요하지 않기로.
그리고 그때부터
나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 기대가 어긋났을 때
나는 서운했고,
억지로라도 맞춰주지 않으면
내 마음이 무시당한 것처럼 느껴졌다.
결국 내가 불편했던 건
음식이 아니라,
마음이 오가지 않는 식사 자리였던 거다.
요즘은 혼자 밥 먹는 시간을 즐긴다.
특히 회사에서 혼자 먹는 점심 시간이 제일 좋다.
출근하면서부터
오늘은 뭘 먹을지 즐거운 고민을하고
한 그릇 뚝딱 비운 후 조용히 산책을 한다.
햇빛 받으며 바람을 느끼는 그 짧은 시간.
그게 나만의 작은 힐링이다.
혼자 먹는 밥은
아무에게도 맞추지 않아도 된다.
나의 입맛, 나의 속도, 나의 기분대로
오롯이 나를 챙길 수 있는 시간.
물론, 오래된 친구와의 우정은 여전히 소중하다.
밥을 함께 먹지 못한다고 해서
우리 사이가 가벼워지는 건 아니다.
다만, 이제는 안다.
모든 걸 함께 할 수는 없어도
함께 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용기도 관계엔 필요하다는 걸.
그리고,
무조건 서로에게 맞추는게 다는 아니라는 것도.
내가 편한 방식으로,
내가 상처받지 않는 선에서
사람을 존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걸.
그러니
이제는 혼자 먹는 밥도
충분히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