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 바꿔 생각해 보니

부모 마음 2

by 김혜진





일을 어쩐다.

의외의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 이제는 모든 것이 평탄할 것이라 자부했건만 세상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 도저히 믿기지 않는 말을 듣게 되었다. 이를 어쩌나. 이게 다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반대라 한다. 내 아버지가, 우리 아빠가 딸의 남자친구가 탐탁지 않다 하신다. 아직 만나본 상태도 아니건만 아닌 것 같다, 하신다. 오 마이 아버지!


남자 친구라는 지칭보단 애인이란 미사여구가 어울리는 한 남자를 만났고, 사귀게 되었고 우여곡절 속 이젠 완성된 커플이 되자 맘먹었다. 시민정신에 입각하여 법의 테두리 안에 들어가고자 마지막 절차를 밟으려는 순간이지 말이다.


아빠의 반대 사유 어디 한 번 들어보자. 요는 이러했다.


"무엇보다 나이가 어리다.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난다. 결혼은 서로 간의 이해가 많이 필요한데, 나이차가 그렇게 많이 나면 어렵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니 결혼 자금으로 모은 것도 많이 없을 테고... 나이 차이가 많으면 결혼생활보다는 다른 데에 눈 돌릴 것이다. 아직 어려서 책임감을 모를 수도 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결혼하면 나이 차이로 네가 고생할 수 있다." 아빠의 말을 종합하여 보니 나이차로 인해 발생될 수 있는 '미래 예상치 값들'에 대한 염려이다.


가만 들어보니 하나같이 다 맞는 이야기다. 부정이든 긍정이든 모든 가능성은 열려있는 것 아닌가. 아 그렇구나. 아빠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나를 이 세상에 존재하게 만들어주신 아버지의 말씀, 받아들이고 말고다. 반대의 이유, 걱정됨의 원인이 명확하다. 이 사람, 내 아빠가 확실히 맞다. 딸을 향한 사랑도 듬뿍 느껴본다.









뜬금포 고백하자면, 나는 아빠를 무척 존경한다.

엄마는 아빠의 단점이 많이 보이시는 것 같다지만, 나에게는 장점만 보이는 아버지다. 그런 날 두고 아빠 편든다고 항상 핀잔을 받기 일쑤다. 그렇지만 어쩌겠나, 우리 아빠가 멋있고 좋은 걸. 그런 나의 아빠가 내 남자를, 나의 결혼을 무척이나 걱정하고 계신다. 처음엔 청천벽력 같은 말씀에 흠칫 놀랬지만 가만 듣고 보니 하나같이 이해가 되고 말고다. 나라도 똑같은 말을 했을 법하다.


그렇지만, 그런다 해서 '네, 알겠습니다. 그럼 나이차가 안 나는 남자로다가 결혼 준비도 완성된 분을 찾아와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난 이 남자가 참으로 좋고, 분명히 이 사람이어야만 한다. 하고자 맘먹은 건 분명코 해내는 나로선 한번 정한 것을 번복하고 싶진 않다. 절대로. 그렇다면 답은 이미 정해졌다. 아빠의 말씀은 충분히 이해하였고 들었기에 이젠 내 차례다. 설득에 나서야 할 타이밍이다.





"아빠가 무슨 말하는지 알겠어.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을 뿐이야 나도 걱정되겠어, 내 딸이 일곱이나 차이 나는 남자를 데려온다면 놀래다 뿐이야. 미쳤다고 할걸. 아빠가 이 정도 놀래는 건 양반이네."


"....... 흐흠." (괜한 마른 목 다듬는 아빠다)


"근데 말이야."


"...... 흐음.. 흠."


"한번 만나는 봐야 하지 않겠어. 어떤 놈이길래 어린 녀석이 내 딸 좋다 하는지, 얼굴은 한번 봐야 하지 않겠어. 아빠가 직접 보고도 만나보고도 이놈 아니다 싶으면, 아빠 말대로 나도 생각해 볼게. 어때. 괜찮지 그건?"


"...... 흐음....... 좀 더 생각을 해보자."






좀 더 생각을 해보자는 말은 나에게 있어 완벽한 기회의 문장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아빠와의 조율은 여기까지면 됐다. 아빠의 심정 이해 못 하지 않기에, 딸을 가진 아버지로서의 지당한 말씀들이다. 사실 대들고 따지고픈 말들이 목 끝까지 올라와 서로 나오려 대기 중이었지만, 어르고 달래 돌려보냈다.


이젠 껍데기마저 남아있지 않은, 바깥세상 구경조차 못한 그 말들은 대충 이런 것들이다.


아빠! 내 나이가 몇인데!

내가 좋다는데 진짜 이러기야!

결혼하라고 떠밀 때는 언제고!

하겠다는데 진짜 왜 이래?!

아빠 딸 이제 곧 사십이라고!

나는 말 통하면 됐다고!

교수 의사 어쩌고 다 필요 없다고!

제 잘났다는 놈들은 다 싫다고!

어차피 아닌 놈들은 아니라고!


늘어놓고 보니 이렇게나 많다니, 그 답답함 들을 꺼내어 보니 피식 웃음마저 난다.


내 안의 또 다른 나, 감정들로 뭉쳐진 내가 있었다. 감정의 나와 이성의 내가 '내 안에' 공존해 있음을 감사히 생각한다. 그 모두 다 '나'이지 말이다. 당시의 감정적이던 나를 누그러뜨려준 이성의 나에게 고맙고, 감정의 내가 쉴 곳을 마련해 준 이성의 나에게도 감사하다. 토닥토닥, 사랑 가득 담아 내 안의 나에게 이 손길을 전해주고프다.








아빠의 반대 이유는 결국, 나에겐 아빠의 사랑을 흠뻑 느낀 계기가 되었다. 뜻하지 않은 아빠의 진심 어린 고백과도 같았다. 그래서 반대하는 이야기 하나하나가 다 고마웠고, 나 진짜 딸 맞구나 싶었다. 일 이 주 즘 지나고선, 예의 그 남자가 우리 집에 찾아왔다. 회사 출근 모습 그대로 말쑥한 정장 차림이다. 멋지고 말고다.


곧장 안방으로 불려 들어간 남자. 엄마와 아빠는 남자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셨다. 나는 거실에서 우두커니 기다려야만 한다. 그 사이 핸드폰을 만지작거리지만 뭘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겠다. 식탁에 앉아있다 소파에 앉아있다 자리를 옮겨가며 의미 없는 이동만하고 있다. 방 가까이 가서 무슨 얘길 하는지 듣고 싶지만 관둔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방문이 열렸다. 셋이 한꺼번에 나오는 광경이 브라운관 속 드라마의 한 장면 같다. 어디 보자, 엄마의 표정이 밝다. 아빠의 표정은 묵직하다. 남자의 얼굴은 붉다. 뭐라도 먹어야지, 하며 엄마가 부엌으로 향한다.


대학 시험 합격 여부를 기다리는 마음이려나. 입사시험 결과를 기다리는 심정이려나. 인터뷰 끝났다고 바로 결과가 나오는 건 아니지만, 그 자리를 일어선 순간 붙겠다 아니겠다의 감은 온다. 그리고 지금 드는 나의 예감은 수석입학, 수석 합격이지 말이다. 자꾸만 웃음이 새어 나온다.


어느새 아빠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다. 남자의 얼굴은 여전히 붉지만 그 옆에 앉아 있는 여자는 계속 미소 띤 얼굴이다. 다과 준비하는 엄마를 도우러 부엌으로 들어가니, 나의 어머니께서 한 말씀하신다.




"그리 좋으냐. 으이구."


"네. 어머니. 좋습니다. 네. 좋고 말고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부모님 인사를 끝내고 밖으로 나왔다. 무슨 이야기했어? 당장에 물었으나 남자는 '그냥 뭐, 여러 가지 이야기했지.' 한다. 팔짱 끼며, 무서웠어? 라며 빤히 올려다보는데 내 이마를 콩. 꿀밤 맞은 여자는 그럼에도 그저 이 상황이 무척이나 즐겁고 재미있다.


태어나 처음으로, 한 남자를 부모님 앞에 위퐁당당하게 데려온 오늘이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나의 부모님 그리고 세상 둘도 없는 내 남자가, 지구라는 이 아름다운 별 위에서 첫 대면을 하였지 말이다. 그 어떤 시적인 표현을 다 가져온들 충분치 않을 날이다.









결혼을 하는 것이 이리도 신나는 일일 줄이야. 그런데 왜 아무도 이 기분에 대해선 말을 안 해주는 걸까 싶다. 주변인들 그리고 영화나 드라마 어느 매체에서든 보통 이런 이야기들을 한다.


'결혼은 연애와 다르다, 결혼하면 고생 시작이다, 결혼하면 시댁에 뭐에 뭐에 신경 쓸 일들이며 다툴 일들이 얼마나 많은데. 게다 애 키워봐 진짜 힘들어. 안 싸울 것 같지? 지금이야 좋지, 결혼해 살아봐 맘먹은 대로 안될 거야. 결혼이 좋다는 건 다 거짓말이야.'라고 말이다. 한껏 겁을 주며 결혼 다짐을 하라는 것일까?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그들은 모두 결혼을 했다. 모순된 시각으로 보인다. 살다 보면 다 좋을 줄 알았는데 그게 그렇게 되는 게 아니더라고,라는 말도 난 잘 모르겠다. 그럴 수도 있겠다 싶으면서도 솔직히 완전히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산다, 하는 말도 전혀 납득이 안 된다. 모든 일들에는 사정이 있고 이유가 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든다.


'이유'라는 조각들을 인생 도화지 위에 오려 붙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물론 그러다 보면 멋진 작품이 되기도 하겠지만, 되려 가벼이 불어오는 실바람에도 후드득 떨어질 수 있다고 본다. '아직 뭘 몰라서 그래.'라는 말로 일축한다면, 알겠다로 끝내고 접고 말겠으나 여전한 아쉬움은 남는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난 다시 나에게로 집중해야 한다.


결혼은 연애와 다르다며 굵은 선 긋고 구분 지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연애든 결혼이든 앞뒤 어떠하든 사랑하는 둘이서 함께함은 변함이 없지 않은가. 사랑이란 건 헐뜯는 것이 아닌 서로를 보듬어 주는 것이지 말이다.








아빠의 최종 승인도 받았겠다. 이젠 그다음 수순으로 직진이다. 법적 부부가 되어볼 차례다. 자유와 권리에 대해서 책임과 의무를 지는 것은 당연하다. 말하자면, 우리의 결혼이기에 그 모든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결혼을 앞두니 참 많은 생각이 든다. 누구나가 그런 것일까 싶으면서도 나의 마음가짐이 나름 단단해진다.


스무 살 적, 빈 노트에 써 내려간 나의 인생 외줄 위 '결혼'은 언제나 후순위였다. 그랬던 녀석이 이제는 내 삶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나의 인생길 위에서 카운트다운을 시작하였다. 무척이나 설레고 흥분되는 숫자들이 불꽃놀이하듯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연애하기 딱 좋은 나이 - 나는 서른일곱 입니다]

본 에세이는 매주 월/금 연재 중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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