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에 대한 나의 생각
숫자 계산이 필요해졌다.
남자친구와 그의 누나는 한 살 차이다. 말하자면 나보다는 여섯이 적다. 그렇지만 누나이고 나는 존댓말을 해야 한다. 관계라는 것을 이해하기에 별다른 문제는 없다.
내게는 네 살 차이 여동생이 있다. 나의 남자친구에겐 3살 누나뻘이 된다. 앞으로 하나밖에 없는 처제가 되지만 그렇다고 말을 놓지는 못할 것이다. 서로 간에 존대를 할 듯하다. 동생의 배우자인 나로서는 제부가 되는 이 남자는 남자친구보다 5살이 많다. 분명 형님이지만 형님은 5살이 어린 남자친구 몫이다.
정리되어 가는 숫자들 속에서 머리가 핑 돈다.
평일 오후 저녁을 함께 먹고 거리를 산책하는데 '주말에 약속 있어?' 가벼이 묻는 남자. 누나를 만나러 가는데 동행을 요청한다. 나를 보여주려는 건지, 누나를 보여주려는 건지 어찌 되었건 여자 둘을 대면하게 해 줄 요량이다.
올 게 왔구나 싶었으나 망설일 이유는 없기에 '그래 좋아. 언제?' 하고 여유로운 척 쿨한 척 대답해 본다. 마음속으로는 아... 주말에? 왜 지금? 갑자기? 꼭 봐야 해? 였지만 어찌 그리 대답할 수 있겠는가.
서울 외곽에 사는 그녀를 만나러 가야 하는 디데이가 다가왔다. 전에 없이 긴장이 된다. 만남의 장소는 시끌벅적한 패밀리 레스토랑이다.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익숙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다. 다행히도 텐션 끌어올리기 최적의 환경이지 말이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낮은 목소리 톤이 미소와 함께하니 높아진다.
일명 시누이라 일컫는 이와의 첫 대면이다. 나와는 여섯 살 차이가 나는 내 남자의 친누나이시다. 젊어선가, 이 언니 피부가 하얗고 뽀얗다. 약간의 사투리가 섞여있는 서울말 억양도 귀엽다. 식전 빵을 우물우물 먹어가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는데, 어라. 누님도 긴장한 모습이 역력하다. 나와 같구나, 싶어 지니 편안히 대하자 싶어 졌고 오고 가는 대화도 점점 어색함이 사라져 간다.
오랜만에 만난 오누이의 대화에 끼지 않고 가만 들어가며, 그 사이 배고팠던지라 음식에 집중해 본다. 맛있다. 더 이상의 긴장이 사라졌는지 맥주도 한잔 곁들이고 싶어 진다. 뜬금없이 누나의 주량을 물어본 나. 맥주 한 잔 같이 하실래요? 묻고 말았다.
운전자를 빼고 여자 둘이서 잔을 들어 올려 건배! 이 정도면, 예비 시누이와의 첫 대면은 나름 아주 성공적인 것 같다는 나름의 결론을 내려본다. 서울로 올라오는 차 안 '누나가 착한 거 같아, 기가 센 누나이려나 했는데 아니네. 정도 많은 듯하고.' 운전대를 잡은 남자는 '그래? 좋게 봐서 다행이네.'라며 안도의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 훈훈한 미소는 날 것 그대로 보조석에 앉은 내게까지 전혀 져 온다. 남자 따라 내 입가에도 미소가 띤다.
일본에서 살던 적엔 주말이면 친구 따라 하라주쿠에서 열리는 파티를 가곤 했다. 사장님의 비서이자 사내 영어 통역을 하던 일본인 친구다. 부서는 서로 다르지만 통하는 게 워낙 많아서 둘도 없는 베프가 된 사이이기도 하다. 그런데 베프인데도 불구하고, 난 그 친구의 나이를 정확히 모른다. 그 친구도 내 나이를 정확히는 모른다. 우습지만 우린 그렇다.
대략 서너 살 차이가 있다, 정도이다. 두세 번 물어보았고 대답했지만 둘 다 금세 또 잊고 말기에 이젠 더 이상 묻지도 않는다. 왜 그런 걸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건 아마도 우리 사이에 나이라는 숫자가 중요치 않기에 그랬지 싶다. 친구이기에, 친구인 사이라서 언니 동생의 격이 없었다. 물론 친구 문화가 우리와는 다른 외국이기에 가능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뿐이랴. 나에겐 10살 많은 친구가 있고, 10살이 적은 친구도 있다. 인간 대 인간, 사람 대 사람인 관계로 바라보기에 구분 없이 친구라 칭하고 스스럼없이 대한다.
단 한 살이라도 차이가 나면 위아래가 확실히 정해지는 곳에 살고 있기에, 여기 한국의 문화에 따라 살아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래도 난 나만의 방식으로 사는 편이다. 어쩔 수 없는 관계 속에서 '나이'를 중시하는 상대가 있다면 최대한 존중하지만 그 외에는 자유다.
내가 추구하는 것이, 나를 찾고 있는 것처럼... 그런 맘가짐과 행동들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나 싶다.
그렇기에 내 옆을 차지한 이 남자를 대할 때도 편한 자연스러움이 묻어 나올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싶다. 남자친구의 누나를 대할 때도, 남자의 친구들을 대할 때도 편안한 기분이 드는 이유는 '우린 모두 친구가 될 수 있어요.' 마인드 덕분이지 말이다.
나이가 어려서, 나이가 많아서. 나이가 주는, 숫자로 인한 생각도 깊어지고 고민도 적잖이 많다. 우리가 신경 쓰지 않아도 나이는 어차피 계속해서 더해져 갈 테니 그것보다는 상대를 대하는 순간 '즐거운 관계'에 집중해 보는 건 어떨까. 그러다 보면 사람을 만나는 폭도 크게 늘어날 테고 그 혹은 그녀에게서 나에게 없는 매력적인 부분이 보이기도 한다.
나의 나이를, 상대의 나이를 관여하지 않고 사람을 대하고 만나다 보면 분명 나의 짝을 만날 기회 또한 많아진다. 그렇게 서로에게 있어 친구가 되고 연인이 되어간다. 그 언젠가의 내가 그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