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정 - 사소한 것 혹은 우연히 발생하거나 피할 수 없는 사고에 흔들리지 마라(주 1). 겸손 - 예수와 소크라테스를 본받으라(주 1).
한 번은 회사를 다닐 때 일이다. 하루 연차를 쓸 때 우연히 거래처의 연락을 받게 되어 확인을 할 수 없는 곤란한 상황이 발생했다. 꼭 마치 계획되었던 일처럼 나에게 어떤 시험이 오고, 테스트를 당하는 기분이었다랄까?
거래처의 사장님과 통화를 했을 때도 있다. 나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보시기 시작하셨다. 나도 직종이 스페셜리스트이긴 하지만 경력이 짧고, 사장님들 대부분은 여러 가지를 알고 계시니 질문을 하신 것이다. 직접 그것을 다루시는 것이 아니셨지만 다 아시고 계셨고, 나에게 대답을 들으려고 하신 점에 모든 사장들은 대단하시다고 생각했다. 나는 답변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질이 좋은 대화가 이어지는 것을 보며 난 평정을 찾아갔다.
대화가 되지 않는다면 또 나보다 훨씬 연세가 있으신 분이시라면 이해하시기 쉽게 말씀을 드릴 수 있을까 하는 염려와 동공 지진이 왔을 것 같다.
평정을 갖고 살아야 한다. 동공 지진 순간 머리가 하얗게 될 텐데 평정을 갖도록 연습해야 한다.
프랭클린은 사소한 것, '우연히 발생되는 것'이라 표현했지만 나의 경우는 '새로운 것'이 더 와닿아 이것으로 생각했다. 나는 새로운 것을 접할 때 느끼는 것에 평정을 찾기 위해 사는 사람이지 않을까 싶다. 요동치지 않는 모습이 잔잔하다고 생각해서 그러면 길게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 때문이다. 이미 요동이 큰 것은 이뤄지고 있으며 자연스럽게 내 의지에 상관없이 밖으로 내비쳐진다.
내 안의 물불과 같은 대립
불꽃이 튀거나 꺼지거나
따듯하거나 차갑거나
이 갈등이 존재하는 순간 또 평정심을 위해 의식해서 찾아가는 것을 넘어선 무의식의 평정을 찾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
되돌아보니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라는 것을 느끼고 깨닫게 됐다. 평정이라는 것 무감정의 상태는 아닌 중심을 가진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알 수 없는 당황스러움, 예기치 않은 일들에 대해 대부분의 감정은 짜증이 올라온다. 가까운 사람에게선 이것이 자연스럽게 보이게 내비쳐진다. 그러나 가깝지 않으면 필터로 한 번 걸러 예의를 지키려고 한다. 다른 누구와 가까운 유무 상관없이 나의 중심이 지켜지면 오래갈 텐데, 깊이에 대한 것도 필요하겠다. '이것은 진심을 전하는 유무일 것이다'라는 믿음으로 진심을 전하면 깊이가 생길 것이다.
그러면 또 나만의 평정을 가질 수 있지 않으려나 싶다.
그리고 마지막은 겸손이다.
예수님과 소크라테스를 본받아야 하는 이유는 상대방에게 교만하게 보이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멀어질 수도 있다. 겸손이라는 미덕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표현하는 대화 방식에서 단호한 말투보단 부드러운 표현 단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다.
가끔은 나의 생각만 고집하면 그런 실수를 저지르는 것 같다. 내가 아무리 맞는 이야기를 하더라고 표현하는 것에 따라 받아들이는 사람은 다르게 받아들일 것이다. 아무리 주장과 의견과 사실이더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에 서서 주장을 펼치는 데에 교만한 태도로 상대방을 존중 하지 않게 이야기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어렵지만 표현을 하는데에 상대방을 존중하고 들어주면서 대화를 이어나가고, 겸손한 태도로 이야기를 해야 한다. 글을 쓸 때도 교만하게 보일 수도 있는 점이 있다. 저자처럼 글을 쓰는 대부분은 자신의 이야기를 적어가는 것이 누군가에게 교만하게 보일 가능성이 있다는 염려를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