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은 인터넷 환경에서는 기업의 의도와 상관없이 해당 기업의 제품 또는 서비스에 대한 평판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급속히 퍼져 나간다. 이러한 경영 환경하에서, 서로 다른 문화와 가치관을 지닌 다양한 이해관계자 특성을 미리 고려하지 않은 기업은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다시 말해, 다양성 관리가 필수적이다.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인터넷 평판으로 인해 유독 곤란을 겪는 경우가 많다. 해당 업계는 글로벌 팬덤을 형성한 아이돌의 앨범 프로모션이나 광고 제작 과정에서 문화 다양성에 특히 유의해야 한다. 최근 K-그룹 세븐틴의 새 미니앨범 프로모션이 한국, 일본, 중국을 배경으로 각각 제작되어 공개되었는데, 여기서 만리장성을 배경으로 한 티저 영상이 논란에 휩싸였다. 중국인들의 정서에서는 자신의 역사적 건축물인 만리장성을 한국 아이돌 앨범의 상업 광고(티저 영상)에 사용하는 것이 탐탁지 않았던 것이다.
세븐틴의 소속사인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는 논란이 된 영상을 신속히 삭제했다. 그리고 오히려 중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을 알릴 기회로 생각했다면서, 자국의 문화유산에 큰 자부심을 느끼는 중국인들의 정서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던 점을 사과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 소속사와 중국 팬덤 양측이 문화유산의 활용과 관련하여 서로 다른 시각으로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다는 게 드러났다. 이 사례는 문화적 관점의 차이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예방하는 ‘문화 다양성 관리 역량’이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필요함을 시사한다.
또한 기업은 국제 정서뿐 아니라 주요 소비층의 다양한 가치관과 의견을 존중하는 데도 신중해야 한다. 특히 불매 운동과 같은 민감한 상황에서 콜라보레이션 상품을 출시할 때는 더욱 주의해야 한다. ‘농담곰’ 캐릭터 기업은 SPC 계열사인 삼립과의 협업을 통해 최근 다시 유행하는 '띠부띠부씰'을 동봉한 캐릭터 빵을 출시했다.
그러나 ‘농담곰 캐릭터 빵’ 출시 예고가 나왔을 당시, SPC 노동자 사망 사고로 인한 불매 운동이 격화된 시기였기 때문에 많은 소비자들이 철회를 바라는 목소리를 표명했다. 농담곰 측 실무진은 삼립이 포켓몬빵으로 유명한 기업이었기 때문에 협업을 선택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 기업이 해당 소비자 집단의 시각에서 어떻게 인식되는지에 대한 도덕적 가치는 고려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관점에서 의견 공유가 이뤄지지 않는 조직에서는 편향된 시각의 검토만 이루어지기 때문에 결국 조직의 성과를 악화시킬 수 있다. 자아 범주화 이론과 사회 정체성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과 유사한 특성을 가진 사람과 다른 사람을 구별 짓는다. 그리고 이러한 구분을 통해 자신과 비슷한 특성을 가진 집단 내에서 사회적 정체성을 형성하고 해당 집단을 선호하게 된다(Stets, & Burke, 2000).
우리는 자신과 유사한 사람들과 함께 모여 있으면서, 다른 집단을 대상으로 본능적인 적대감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 유사성에만 기반하여 돈독하게 뭉친 조직은 집단 사고에 빠질 수 있다. 이는 다시 조직 내 다양성을 억제하는 원인이 된다.
조직 구성원의 다양성은 국가 문화 및 가치관 외에도 개인의 능력, 성별, 세대 등을 포함한다. 이러한 다양성 요소는 지나치게 경쟁적인 분위기를 완화하고, 서로의 사고를 환기해 주어 집단 사고를 예방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복잡성 및 동태성이 높은 경영 환경에서 조직 구성원 다양성은 더 많은 관점을 도출하고 이를 검토함으로써 조직이 나아가야 할 새 비전과 문제 해결 방법을 제시해 준다.
그러나 다양성이 높은 조직은 그렇지 않은 조직에 비해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 더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신속한 대처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그런데도 유수한 기업들은 조직 구성원의 다양성 관리에 투자함으로써 더 큰 혜택을 얻는다. 창의적 인재가 기업의 경쟁우위인 경우 더욱 그렇다.
다양성 관리는 성공적인 경영전략의 기반이 된다. 2015년 펩시 그룹 아시아, 아프리카 수석 부사장이었던 움란 베바는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펩시가 코카콜라 그룹을 이긴 비결로 조직 구성원의 다양성을 강조했다. 그는 세계적으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새로운 소비자로 떠오르고 있다며, 수요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조직 구성원의 다양성 수준을 높이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국가, 인종, 성별 등을 뛰어넘은 인재 확보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욱 핵심적인 것은 기존 구성원들 간의 문화적 이해라고 했다. 그래서 펩시는 각기 다른 여러 문화적 배경을 서로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성 수용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라고 밝혔다. 이 프로그램은 다양한 문화적 배경에 의해 발생하는 갈등을 더욱 쉽게 조정할 수 있게 한다. 이러한 접근은 다수의 의견 통합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다양성의 부정적 측면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될 수 있다.
또한 펩시는 적극적으로 여성 고용을 촉진하고 여성 임원 비율을 높이는 등 젠더 다양성을 확충함으로써, 100여 년 만에 코카콜라 그룹의 매출을 뛰어넘을 수 있었다고 한다. 새롭고 다양한 시각이 기업의 성과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김보현. (2023). 한국외국어대학교. Global Business & Technology 학부
Stets, J., & Burke, P. (2000). Identity theory and social identity theory. Social Psychology Quarterly, 63(3), 224-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