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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벗어라!!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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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원 이치운 Aug 14. 2023

벗어라!!

벗어라! 1

     

   뱀사골 초입이다. 집에서 이십여 분을 차로 달리면 달궁에 도착한다. 이 길을 지나가는 사람은 누구나 도로 표지판에 나온 지명을 보면 고개를 주억거릴 것이다. ‘아! 이래서 뱀사골이구나!’하고 말이다. 

   길과 계곡은 지리산에 살던 큰 뱀이 꼬리를 치고 노고단 정상을 향해 몸을 비틀어 치달았던 것처럼 구불하다. 내가 잠시 거주하고 있는 삼화마을은 꼬리처럼 가느다랗고 노고단 정상은 뭉툭한 머리를 쳐들고 하늘로 승천하려는 영락없는 이무기의 형상이다. 고속도로 보다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운전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을 한편 느긋하게 해준다. 

   정령치 초입에 들어서니 노고단 쪽에서 여우비가 제법 온다. 매연과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나무와 산 짐승들을 보호하려는 것처럼 빗줄기는 꼿꼿이 몸을 세워 창과 화살을 만들어 계곡으로 들어오는 자동차를 향해 날려보지만 속수무책이다. 

   지리산은 서쪽 중봉과 천왕봉을 거쳐 동쪽 바래봉까지 천오백 미터가 넘는 열세개의 큰 봉우리를 품고 있다. 높은 산들을 마주하고 있는 정령치 또한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진다. 골(汨)깊은 계곡은 구름을 등에 업고 등성이를 내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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