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어라! 2부
‘정령치’라는 이름의 유래가 깊다. 서산대사가 쓴 『황령암기(黃嶺庵記)』에 따르면 마한의 왕이 진한과 변한의 침략을 막으려고 정씨 성을 가진 장군에게 성을 쌓고 지키게 했다 한다. 유래야 어떻든 산 아래로 펼쳐진 계곡을 내려다보면 신령스런 뭔가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다.
나는 그곳에 정령(精靈)들이 산다고 믿는다. 그 정령은 사람들이 앞을 볼 수 없도록 연기를 피워내는 무기를 가지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연막탄을 터뜨려 계곡에 사는 식구들을 숨겨준다. 정령은 사람의 욕심을 잘 안다. 그들에게 몸보신이 된다면 무엇이든 잡아가거나 꺾어 가져가려고 하니 잠시라도 그들의 눈을 못 보게 하는 것이다. 몸보신에 관심 없고 눈으로 마음으로만 담아가는 사람에게 산은 종종 귀한 곳을 볼 수 있도록 허락한다.
화창한 날 밤에 그곳에 가면 반짝이는 정령도 만날 수 있다. 정신을 리셋 시켜주는 정령이다. 산 정상에 자리 펴고 누우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반짝이는 정령들이 무더기로 쏟아진다. 정령들을 보고 있노라면 방황하던 정신이 제자리에 돌아오고, 불편했던 사람과의 관계도 회복시켜 주는 영험이 있다. 사람들이 불 멍을 때리고, 바다 멍을 때리고, 하늘 멍을 즐기는 이유가 아닐까. 멍을 때리고 있노라면 복잡한 생각이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아버지의 유언문제로 형제들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으며 오랫동안 관계가 좋지 않았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형제들은 꼭 닫힌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 어려웠다. 별 정령을 만나면서 당신의 유언이 장손이나 장남이 아닌 형제들에게는 ‘서운한 마음이 들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할 여지를 갖게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