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어라! 3부
사람들이 혐오하는 정령도 있다. 도심지 외곽에 있는 논과 밭에서나 볼 수 있는 정령이다. 몸 전체는 검지만 붉은 색이 섞여 있어 적오(赤烏)라고도 한다. 검붉은 정령은 음식찌꺼기나 동물의 사체를 먹어치워 주위 환경을 깨끗하게 해준다. 해발 천 미터가 넘는 곳에 이들이 사는 이유는 사람들이 깊은 산속까지 들어오는 것이 싫어서일 것이다. 이 정령들은 죽음의 기운을 몰고 다닌다는 속설 때문인지 사람들도 싫어한다. 좋은 기운을 받으려고 왔는데 길조가 아닌 흉조라니! 정령은 가지가 꺾이고 옹이진 소나무 가지에 앉아 검은 색의 기운을 앞세워 사람들 출입을 온몸으로 막는다. 기분 나쁜 색을 보고도 불길한 소리를 듣고도 얼마나 오래 버티는지 보자는 듯 정령 특유의 톤으로 음역대를 높여간다. 하지만 신령스러움에 대한 경외감을 잃은 사람들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정령치에 오면 ‘만물에 영혼이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정령은 바위에도 있고, 흐르는 계곡물에도 있고, 도토리나무를 오르내리는 다람쥐에게도 있고, 장끼가 은신처로 삼는 고사리 잎에도 있고, 계곡의 전령사 어치에게도 있고, 산속 동식물을 지키고 있는 적송에게도 있다. 바위정령은 때를 가리지 않고 찾아가도 늘 변하지 않는 마음을 보여준다. 계곡물 정령은 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쉬어가라는 여유를 내어 준다. 손에 잡힐 듯 몽글몽글한 파란 공기 정령은 지친 폐가 숨쉬기 편안하게 토닥여주고, 흙 정령은 동물을 살게 하고 식물을 자라게 한다. 사람도 함께 어울려 살도록 한다. 생명이 있는 것이든 없는 것이든 그것을 대하는 신성한 마음이 살아나면 정령이 살아난다. 정령이 살아나야 자연이 살고 사람도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