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23년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인 『팔레스타인, 100년 분쟁의 원인 :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서』의 제1장에서 발췌하였습니다.
친이스라엘 사관에 따르면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 땅의 정당한 주인이며, 유럽에서 2천 년 가까이 살아오다가 19세기 말부터 고향으로 평화롭게 귀환해 왔는데 이곳에 거주하던 아랍인 손님들로부터 박해를 받았다. 1917-18년부터 팔레스타인을 통치한 영국은 아랍인의 편을 들고 유대인을 억압했으나,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 땅에 경제적 번영을 가져와 영국과 아랍인들을 이롭게 해주었다. 많은 아랍인이 만족했으나, 소수의 아랍 민족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 유대인을 공격했다. 유대인들은 살아남기 위해 반격할 수밖에 없었다.
유엔의 승인을 받아 1948년에 이스라엘을 건국했을 때는 인근의 아랍 국가들이 침공해 와서 전쟁이 발발했다.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은 함께 평화롭게 살자는 유대인의 제안을 거부하고 아랍 국가들의 명령에 따라 자발적으로 국경을 넘어 난민이 되는 것을 선택했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아랍인의 박해를 받은 피해자이고 이스라엘의 건국은 정당하며, 난민에 대한 어떠한 책임도 없다.
1948년 이후부터는 아랍 국가들의 침략으로부터 방어하거나 예방한다는 안보 논리가 침략 전쟁, 학살, 자원 약탈, 정착촌 건설 등 어떤 반인권적 행위도 모조리 정당화해 주는 ‘충분한 이유’가 되어 왔다.
이스라엘의 역사관은 오랫동안 서구 역사학자들로부터 널리 인정받았다. 팔레스타인인들과 다른 아랍 국가들이 거짓이라고 항변했으나 친이스라엘로 편향되었던 서구인들은 믿지 않았다. 그런 서구 사회의 태도를 바꾼 것은 1980년대 후반에 등장한 이스라엘의 “신(新)역사학자들”이었다. 그들은 정부의 비밀자료가 공개되어 1948년 전쟁의 진실을 알게 되자 역사 진상규명을 하고 나섰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이스라엘의 주장을 맹목적으로 옹호하는 전문가들은 크게 줄어들었다. 반면 비전문가인 대중에게는, 특히 우리나라처럼 중동에 대해 문외한인 지역에서는 이스라엘의 왜곡된 역사 서술이 널리 신봉되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런 시각들은 우리 사회에서 친식민주의와 인종차별주의를 유발하고 있다.
왜 오늘날에도 분쟁이 계속되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원인은 무엇이었는지, 그 역사를 알아야 한다. 과거를 묻지 않고 오늘날의 모습만을 보고 따진다면 누가 옳고 그른지를 판별할 수 없다. 대부분의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의 유대인에게 살해당한 가족이나 친지가 있고, 그보다는 적지만 유대인들 역시 팔레스타인인들에 의해 목숨을 잃은 가까운 지인들이 있다. 단순히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서로가 서로에게 보복할만한 동기는 충분하다.
따라서 책임을 묻고 분쟁을 멈추려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누가 먼저 갈등의 원인을 제공했는지를 알아내야만 한다. 문제는 이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독자들 중에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책을 한두 권 정도 읽고 ‘아! 이래서 분쟁이 생겼구나. A가 잘못한 거구나.’라고 생각한 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다른 시각에서 보다 자세히 쓴 책을 읽게 된다면 십중팔구는 생각을 정반대로 바꾸거나 어리둥절해져서 판단을 보류하게 될 것이다. 필자가 그러했다.
‘여는 글’에서 밝혔듯이, 필자는 원래 분쟁과 관련이 없는 일상의 모습을 세상에 전하고 싶었고 300쪽 내외의 교양서적을 기획했다. 하지만 잘못된 선입견과 편견을 지우지 않은 채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면 분쟁이란 현실을 가려버릴까 봐 역사서를 먼저 쓰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이때는 그저 해외 유명 학자들이 쓴 전문서적 10여 권을 참고하면 간단하게 집필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엄청난 착각이었다.
친팔레스타인 학자들의 책을 읽고 나서 친이스라엘 학자들의 책을 읽으니 무엇이 진실인지 하나도 알 수 없었다. 분명 같은 사건을 서술하면서도 원인과 결과가 다르고 책임에 대한 평가도 달랐다. 뭐가 사실인지를 모르니 더 이상 단 한 줄도 써 내려갈 수 없었고 이미 적었던 수십 장도 반 이상을 다 지워버렸다.
역사는 포기해야 하나 고민을 거듭하던 중에 무엇이 진실인지를 직접 확인해 보고자 1차 사료를 들여다보는 용기를 내보았다. 다행스럽게도 백여 년 전 영국이 팔레스타인을 통치하던 당시에 정부의 조사위원회들이 남긴 보고서들을 찾을 수 있었고 이때부터 자신감을 가지고 진실을 찾아가는 연구를 제대로 시작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정말 많은 시간이 흘렀다. 상상한 것보다 분쟁의 역사는 더욱 복잡했다. 팔레스타인에서 분쟁은 1917년을 기점으로 생겨난 것으로 보지만, 그러한 갈등이 생겨난 배경과 누가 옳은지를 따지는 작업은 고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 기나긴 역사에서 이견이 존재하는 사안들은 수백 개가 넘는다. 그중 무엇을 책에 담을지는 엄청난 고민거리였다.
지나치게 전문적으로 써서 대중이 읽기 어렵게 돼버리길 원치는 않지만, 독자들이 다른 책을 읽고 나서 부화뇌동하지 않을 수 있도록 잘못 알려진 역사적 사실들과 편협한 시각들을 충분히 검증하는 종합적인 글을 써야 했다.
심혈을 기울여 글을 다음과 같이 구성했다. 우선, 제2장에서는 종교적 이해관계로 생겨난 선입견을 깨트리기 위해 고대부터 20세기 초까지의 종교 관련 역사를 살펴본다. 이는 분쟁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분쟁의 원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종교적 편견에 휘둘리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필수적인 내용이다. 제3장은 유럽에서 유대인들이 대거 이주해오기 시작하는 1880년대부터 1914년까지의 역사를 다룬다. 이주의 목적이 평화적이었는지 아닌지를 유대인들이 직접 남긴 기록을 중심으로 분석한다.
제4장은 1차대전부터 1930년까지 영국이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고 통치한 방식을 설명한다. 당시 영국 정부의 기록을 중심으로 영국이 팔레스타인에서 분쟁의 구도를 만들어 낸 책임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5장은 팔레스타인인들이 대항쟁을 벌이는 1930년대부터 팔레스타인 전쟁이 발발하는 1948년까지를 중점적으로, 그리고 그 이후의 일들을 간략하게나마 살펴본다. 이 시기에 팔레스타인인들은 무장투쟁을 선택하게 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정당화될 수 있는지를 함께 고민할 것이다.
이 글은 2023년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인 『팔레스타인, 100년 분쟁의 원인 :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서』의 제1장을 수정발췌하였습니다. 나머지 장의 내용은 인터넷에 게재하기엔 분량(총 805쪽)이 방대하고 전문적인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전문을 그대로 올리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브런치에서는 일부 간단한 내용만 선별하여 올릴 예정이며, 전문이 궁금하신 분은 교보, 알라딘, 예스24 등에서 책을 구매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지금까지 읽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끝으로 책 소개 카드를 남깁니다.
추가 : 책 내용의 요약글 + 추가설명을 담은 독서가이드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동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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