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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써 보는 의사 Sep 19. 2024

2. 건강의 삼요소 上 - 철학의 이유

건강학개론 1장   (국민건강총서 제1호)



0. 변명



일단 시작부터 미안하다. 두 번째 글이 너무 오래 걸렸다. (사실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이 두 번째 글이 연재된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을 터이니 미안할 바 없겠으나 그래도 예의는 차려본다)

또 하나 미안하다. 오늘 쓰고 보니 분량이 아주 길다. 끝까지 수업에 남는 자 과연 몇이나 될지... 고심하다가 도저히 안될 듯해 두 편으로 나눴다. 내 소심함에 박수를.


자, 이제 시작하기 전에, 여러분은 지난 시간 내준 숙제를 기억하는가?


......

...........


알고 있다, 숙제는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숙제가 있는지조차 몰랐을 것이다.

미안해할 필요는 없다. 사실 나 역시 그다지 기대하진 않았다. 혹시나마 궁금한 이들을 위해 상기시켜 주자면, 건강이란 무엇인지 나름대로 정의 내려 보기가 숙제였다.


사실 이번 글이 길어진 한 가지 이유가 거기에 있다.

"도대체 건강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뭐냐? 쓸데없는 짓 말고 그냥 유용한 정보를 달라!!!"

수강자들의 성난 항의가 접수됐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본 학회는 건강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내린 바 있다.


건강이란 당신의 삶의 가치관을 되찾아
당신이 마땅히 걸어야 할 길을 걷는 것이다


그리고 본 학회가 내세운 위의 건강 철학이 이번 글이 길어진 두 번째 이유가 되겠다.

 

미안하고 안타깝다. 하지만 다시 말해야겠다. 이 매거진의 의의는 지식 전달이 아닌, 자기 몸과 건강을 인식하는 능력 향상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마음이 동하는 바가 있어, 연재를 진행함에 따라 나름의 정보들을 아주 조금씩 풀어놓을 테니 그것으로나마 정보 충족의 욕구를 해소하길 바란다.





1. 본 학회 철학의 탄생 배경  +  왜 건강 철학인가?  



먼저, 건강이란 왜 각자의 삶의 가치관을 되찾아 마땅히 걸어야 할 길을 걷는 것인지, 이 이유를 설명해 보겠다. 이 부분은 중요한 부분이므로 좀 더 자세히 설명할 필요성을 (나 혼자만) 느꼈다.


기억나지 않겠지만 브런치 첫 글에서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를 아주 잠깐 언급한 적이 있다. 그 얘기를 해보겠다.


이분은 기독교 목회자로 꽤 유명한 분이지만, 목사이기 전에 영국의 뛰어난 의사였다. 워낙 총명해 왕실 주치의의 수석 전공의(?)로도 임명됐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로서의 능력이 빛을 발해 탁월한 의술로 환자들을 낫게 했지만 문제가 발생했다.

환자들이 건강해져 퇴원하면, 금세 이전과 같은 행위를 반복해 재입원했던 것이다. 예를 들어, 술 때문에 간이 망가진 환자를 치료해 놨더니, 말짱해진 간에 다시 술을 퍼부어 이게 간인지 간으로 담근 술인지 곤죽이 돼 실려왔다. 이 환자만 그런 게 아니었다. 비슷한 사태가 끝없이 반복됐다.

무슨 생각이 들었겠는가? 의사로서 자신이 정말 환자를 낫게 하고 있는 것인지, 도대체 의학이란 무엇인지, 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어느 날, 그는 한 사건을 계기로 결국 영혼을 바꾸는 목사가 되기로 결정한다. 그 사건이 무엇인지 궁금하면 찾아보도록. 아, 미리 밝히는 바이지만, 나는 종교계에 입문할 생각은 없다. 학회를 유지하고 입에 풀칠하기에도 버거울 지경이다. 영혼에는 조금 관심이 있으나, 글을 읽어보면 감이 오겠지만 그런 인물이 될 만한 인격 수준은 못된다.


그렇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의 사연을 보면 알겠지만, 건강은 특정 조직이나 장기를 고친다고 해서 유지되지 않는다. 그 사람이 바뀌기 전까지는 같은 잘못만 계속 반복될 뿐이다!!!!


이 매거진 내내 반복되겠지만, 지식뿐인 건강은 어차피 쓸모없다. 문자도착증과 지식 중독증을 어떻게든 만족시키고 싶은 수강생은 굳이 이 글을 볼 필요 없다. 이 글보다 훨씬 세련되고 지적인 정보는 차고도 넘친다. 차라리 논문을 찾아 읽어라. 아니면 챗gpt 선생을 겸허히 숭배하라. 당당히 고백하건대, 그 선생이 나보다 백만 배는 낫다. 나 역시 선생의 답변을 듣고 털썩 꿇었던 무릎에 아직도 멍이 빠지지 않았다.  


의학적 지식은 유용하게 쓰기 위해 존재한다. 소위 지식인들이나, 의사를 비롯한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흔히 빠지는 것이 지식의 늪이다. 자기가 파놓은 함정에 스스로 빠지고서는 눈치조차 채지 못하고, 때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리로 들어오라고 여기 좋다고 손짓할 때도 있다. 지식 습득의 목적을 자주 잊는다.

그러는 너는? 묻는다면, 그래, 부끄럽지 않게 대답할 수 있다. 실은 나도 그렇다!!

  

치료하기 위해 지식을 습득하는가? 아니면 그저 지식이 좋을 뿐인가? 즉 자기만족을 위함인가, 남을 치료하기 위함인가? 또 이 치료가 정말로 이 사람을 낫게 하는가? 낫는다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이것은 꼭 의사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 외의 전문가, 가수, 예술가, 문학가 등도 다 마찬가지이다. 그저 자기만족을 위함인가? 아니면,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가? 자기 허영을 만족시키면서 남들의 인정도 받는다면, 그건 대단한 능력이다. 실은 나도 한 수 배우고 싶다. 그러나 자기 허영을 위한 결과물은 자기만족에서 끝날 때가 가장 해피엔딩이다. 내 입맛대로 만든 결과물을 남들이 다 알아주기 바란다면 욕심이다.

유명했지만 지금은 세상에 없는 한 감독도 대중이 자기 영화의 작품성을 알아보지 못한다고 비난한 적이 있다. 만약 내가 그에게, 1994년쯤 앤드류 와일즈가 증명한 100 페이지가 넘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불쑥 내밀어 두 손에 꼭 쥐어 주면서, '이 증명 참 아름답지 않냐'라고 한다면, '왜 이 아름다움을 알아보지 못하냐'라고 그를 비난한다면, 내가 문제인가? 그가 문제인가?  

전문가가 아니라면 못 알아보는 것이 당연하다.


다시 건강으로 화제를 돌려 지난 시간에 했던 담배 얘기를 해보겠다. 얘기가 자꾸 딴 데로 새도 그냥 그러려니 해라. 무한한 가지치기가 이 매거진의 고유한 정체성을 이루는 요소라고 해두자. 알고 보면, 톨스토이의 책들도 쓸데없는 가지치기투성이고, 아카데미 수상작인 마이클 치미노 감독의 디어헌터도 지루한 결혼식 장면만 30분이 넘는다. 그렇다고 그 가지를 다 걷어내면, '왕자와 신데렐라가 갖은 고난에도 눈이 맞아 잘 먹고 잘 살았다더라' 말고 뭐가 남겠는가?


자, 만약, 내가 지적인 호기심이 발동해 담배의 백해무익함에 대한 사전적 정보와 병을 일으키는 화학적 기전들을 열심히 습득하고 기어이 감동해, 빵빵한 풍선처럼 터질 듯한 기대를 한껏 품고 이 유익한 정보를 어떤 40대 남자 흡연가에게 침이 튀도록 설명했다고 하자.


'흡연자가 비흡연자에 비해 기대수명이 10년 이상 짧다'

'니코틴, 카드뮴, 타르 등 수많은 독성 물질들이 많다.'


등등 썰을 풀어도 그 사람이 담배를 끊지 않으면, 그 지식은 내 지적 만족 이상의 의미는 없다. 실제로도 대개 담배를 끊지 않을 것이다.


대신, 이따금 마누라의 눈총을 피해 흡연 전우애를 같이 불태우던 옆집 20대 청년이, 어느 날, 해쓱한 몰골로 나타나(이 청년은 담배에 대한 전문적 지식은 없다고 하자), 오늘도 어김없이 끽연을 즐기고 있는 아저씨에게

"형님, 저 폐암이래요, 형님도 담배 끊으세요."

무표정하게 내뱉는다면 어떨까?

전문 지식이라고는 한 점 찾아볼 수도 없는 이 한마디가 어쩌면 칼처럼 폐에 꽂혀, 단번에 아저씨는 담배를 끊을 수도 있다. 이렇게 된다면, 누가 혹은 무엇이 그 사람을 치료한 것인가?


지식과 행함은 완전히 다른 영역이다.


나 역시 건강 상의 문제를 겪고서야 깊이 깨닫고 행동을 바꾸게 됐다. 이 건강 상의 문제가 무엇이고 왜 발생했는지에 대해, 물질적인 혹은 학술적인 해설은 이 매거진에서 밝히게 될 것이고, 이 문제에 대한 소소한 감상은 다른 매거진 '삶과 일에 대한 잡설'에서 풀어내도록 하겠다.




첫 번째 주저리,


일단 여러분만의 삶의 철학이 있는 편이 좋다. 이에 따라 건강은 알아서 결정된다.

free solo 라는 다큐가 있다. 다큐인데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추천한다. 이 다큐의 주인공은 아무런 안전 장비 없이 맨몸으로 암벽 등반(프리 솔로)을 한다. 프리 솔로가 곧 인생인 사람이다.

이 사람 삶의 가치관은 오로지 맨몸으로 등반을 하는 것이다. 목숨과도 맞바꿀 만큼 중요하다. 이 사람에게 통상적인 관점의 건강하라는 말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렇다면 묻겠다. 여러분은 목숨과도 맞바꿀 만한 삶의 가치가 있는가?


예를 들어, 아이가 있는 부모 중 누군가는 아이를 위해 목숨까지도 맞바꿀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인생도 거기에 맞춰 돌아갈 것이다. 심지어 건강조차.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 있는데, 그 일이 건강보다도 중요한데 무슨 음식이 몸에 좋고, 이건 위험하고, 어쩌고 이게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조국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희생한 독립운동가들을 생각해 보자. 그들이 목숨이 귀하지 않다고 여겨서, 생명의 존엄성을 몰라서 목숨을 바쳤겠는가?  

당신의 삶의 우선순위에서 건강이 하순위라면 건강에 대해 아무리 얘기해 봐야 소용없다. 그리고 삶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기준은 바로 당신만의 삶의 철학이다.


철학 같은 거 없어도 잘 먹고 잘 사는데, 철학은 무슨 놈의 철학.


'철학'이라는 단어만 꺼내 들어도 군발성두통(두통 중 증상이 심한 두통)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학문으로서의 철학이 아니다. 철학이 뭐 별 건가. 그러니 사뭇 거창한 '철학'이라는 단어를 빼고 생각해 보자. 그냥 당신이 사는 모습이 철학이다.


자, 그래서 한번 준비해 봤다.

다 같이 다이어리를 꺼내 들어라. 없다면 무엇이든 적을 만한 것을 마련해라.



A. 당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혹은 후회 없는 삶)이 무엇인지 한 문장 정도로 적어보자. 그리고 그 아래에 당신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의 목록을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마구 적어 내려 가자. 가치든 물건이든 사람이든 상관없다. 여기서 포인트는 빠르게 적는 것이다. 굳이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고 머리보다 손이 더 빠르게 적을수록 좋다. 그럴듯하게 부연하자면, 프로이트의 자유연상 기법을 활용했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에서도 추천하는 방법이다. 나는 이 책을 추천 도서목록 베스트 10에 올려놓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다 썼는가?

이제 다 됐으면 재빨리 다이어리를 덮어라. 다시 읽지 마라. 묵상하고 음미하지 마라. 확인하지 마라.

 

그리고 그냥 살아라. 살던 대로.

아무 생각 없이. 해오던 것처럼.

자기 삶에 대해 아무런 감상도 비판도 성찰도 하지 마라.



다만, 할 일이 또 하나 있다.

B. 그렇게 생활하면서 내가 평상시에 말하고 행동하는 패턴들을 그대로 다이어리에 옮겨보자. 그날그날 내가 했던 말과 행동을 있는 그대로 감정도 비판도 성찰도 섞지 말고 포커페이스로 말 그대로 기계처럼 써 내려가라. 가급적 디테일하게 적을수록 좋다.

시간 순서대로, 일정 대로 떠올리면서 적으면 더 적기 쉬울 것이다. 매일마다 적어라. 떠오르는 대로 낱낱이 적어라.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통상적인 일기가 아니다. 생각이나 느낌은 적지 마라.


한 달 동안 적어라. 힘들면 일주일만이라도 적어라.


자, 여기까지 했으면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이제 다시 다이어리를 편다.

다시 읽어라. 당신이 써 내려갔던 이상적인 삶(A)이 무엇이던가?

그리고 당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은 무엇인지 이제, 찬찬히 음미하며 읽어봐라.

그런 다음 즉시, 당신의 한 달 동안 생활 패턴(B)을 봐라. 혹은 일주읠 패턴을 봐라. 어떤가?


그래, 알고 있다, 끔찍할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니 자괴감 느낄 필요 없다. 대부분 그러할 것이다. 당연하다. 원래 인간은 그러하기 마련이니까.


내 이상(A), 그리고 내 행동들(B), 이 사이의 아득한 간극. 한때 유행했던 달 착륙 음모론을 아는가? 그 음모론의 그럴듯한 이유 중 하나로 지구와 달 사이의 방사능 밀집 구역인 밴앨런대를 당시 인간의 기술력으로는 통과할 수 없다는 그럴듯한 설명이 있었다. 인간이 이 구역을 맨몸으로 지나가면 그 즉시 DNA가 몽땅 타버려 즉사할 것이다.

나의 경우, AB 사이의 간격이란, 밴앨런대가 껴 있는 지구와 달 사이와 같다. 밴앨런대를 맨몸으로 건너야 하다니, 생각만 해도 피부가 벗겨지고 탈모가 오는 기분이다. 대체 어떻게 이게 같은 종류의 인간에게서 나온 생각과 행동일 수 있다는 말인가?


다이어리를 찬찬히 보고 있자면 생각이 많아진다. 다이어리에서 천천히 고개 멀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마주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신 바짝 차리고 다시 다이어리로 머리를 돌려라. 그리고 눈알을 부라리며 자기가 남긴 글자들을 쏘아봐라.


그렇다, 이것이 당신이다.


자, 이제부터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왜 이렇게 괴리가 있는 것일까? 무엇 때문에?

그리고 괴리가 심하다면 둘 중 누가 진짜 나인가? A가 나인가, B가 나인가?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어느 쪽이 진짜인지는 모르겠으나, '당신의 행동 패턴이 지금 당신'이라고. 누가 진짜인지는 보기보다 어려운 문제이므로 천천히 생각하도록 하자. 아마도 당신의 행동 패턴이 당신이 생활하는 시간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심지어는 꿈에서조차 그럴지도 모른다(내가 그렇다).


AB 사이의 괴리가 크다고 가정할 때....

아, 그런데 그전에, 만약 괴리가 없다면, 됐다. 당신은 더 이상 이 글을 읽을 필요 없다. 그냥 살아라. 지금처럼. 당신의 삶이 옳은지 그른지 그런 가치 판단은 내가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된다. 다만, 지금의 삶이 과연 앞으로도 죽을 때까지 일관성 있게 이어질 만한 종류인지 정도는 생각해 봐라. 예를 들어, 그저 일관되게 욕망에만 충실한 삶을 살기 때문에 괴리가 없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라. 그저 욕망에만 충실한 삶이 옳다고 믿는 사람은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다. 그리고 아마 이 글을 읽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욕망의 맹목적 추종이 진리라 여기는 종교들도 있다. 이 부분은 나중에 소개하도록 하겠다. 조금은 위험할 수도 있으니.


자, 다시, AB 사이의 괴리가 크다면,

행동 패턴을 냉정하게 분석해 봐라. 당신이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데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그리고 B의 삶에서 A의 삶으로 갈아타려면, 그 이유를 반드시 알아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계속 같은 구멍에 빠지게 되고, 왜 빠졌는지도 모르거나, 빠져도 남 탓만 하게 될 것이다.

이 부분은 잡설 '20대와 40대의 차이' 중, 다섯 장으로 쓴 짧은 자서전 졸역을 다시 읽어 본다면 더 와닿는 바가 있을지도 모른다.  



https://brunch.co.kr/@eb93881124914a1/5




일단은 당신이 계속 반복하는 그 행동이 무엇인지, 그 현상부터 있는 그대로 살펴봐라.

예를 들어, 저녁에 피자, 빵 등으로 위장을 가득 채우는 패턴이 자주 눈에 띈다면 구체적으로 헤아려 본다. 그랬더니 한 달 새 15일 이상이 관찰되더라, 이런 식으로 현상부터 명확히 파악한다.

이 현상을 통해 당신은 고탄수화물에 중독되어 있다고 가정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왜 내가 고탄수화물을 갈망하는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여기부터는 좀 복잡해지는데 찾아보면 대개 영양학적 설명이 주를 이룬다. 다시 말해 밀가루 등의 탄수화물로 인해 고혈당이 돼서 고인슐린혈증이 생기고, 이에 따라 혈당은 다시 떨어지고 탄수화물이 또 당긴다는 식의 설명이다. 그리고 단 음식이 마약처럼 도파민을 불러오고 쏼라쏼라.


해결은 무엇인가? GI(glycemic index, 당지수)가 낮은 음식(이파리 채소류)을 천천히 꼭꼭 씹어먹고 운동하자로 귀결된다. 이것이 영양학적인 설명이다. 자, 그러면 이제 된 걸까? 그렇지 않다. 위에서도 설명했듯, 지식과 행함은 완전히 다른 영역이다. 그냥 실행하고 지속하면 되는데 나는 왜 그게 안 될까? 여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답도 제시하지 못한다.

계속 얘기하지만, 단편적인 지식이 당신의 삶을 바꾸고, 궁극적인 건강을 되찾아주지 않는다. 나는 수많은 환자들의 반복되는 실패를 봐 왔고, 지금도 보고 있다. 내 일상도 실패투성이다. 아는 것과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로서, 심리적 장애물이나 결핍이 있을 수도 있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려면 반드시 당신의 가장 큰 두려움과 마주해야만 한다. 본 학회의 회장 겸 총무 겸 서기 겸 회원인 본인 역시 결핍과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다.


정신에 대한 갈증으로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은 어찌어찌 읽어봤지만, 별로 기억에 남는 것이 없고,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융의 문장들은 유독 기억에 남는 부분이 많다. 내가 느끼기에 프로이트가 '과학자'라면, 칼 융은 '예언자'이다.

예언자 융이 이런 말을 했다. 중독은 정당한 고통을 회피한 결과(예를 들어, 마땅히 해야 할 힘든 일을 두려움이나 어떤 이유로 피하는 경우 등)라고. (이 양반의 통찰은 한 문장 한 문장 소름이 돋는다. 귀신인 것 같다.) 심지어 우리가 흔히 거론하는 마약이나 도박 중독뿐만 아니라 이상주의도 중독될 수 경고한다.

나는 항상 이상주의자를 경계한다. 이상주의 자체는 여러모로 긍정적이나 인간의 모순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상주의는 파괴적이다. 덩치는 그저 손바닥 만한 어설픈 이상주의자 한 명이 큰 조직 하나를 박살 내버릴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어설픈 열정을 가진 직원을 뽑지 않는다. 고난 속에 바닥까지 찍고 올라오고도 여전히 남아 있는 열정 만이 진짜 열정이다. 이 열정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는 코맥 맥카시의 표현이 아주 적절하다고 생각하는데,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그는 passion(열정) 이 너무 fancy 한 단어라 자기는 쓰지 않는다고 했다. 여기서 fancy 의 정확한 의미를 이미 작고한(안타깝다, 이 분의 감성이 참 그립다) 그분 말고는 정확히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겠지만, 대강 이미지는 그려진다. 방구석에 처박힌 fancy 한 운동기구들처럼 말이다. 제대로 쓴 운동기구는 차라리 녹이 슬지언정, 결코 fancy 하지 않다.


이 외에도 칼융은

'당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찾아야 성장한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가장 두려운 일'

이라는 말도 했다.


그리고 지금 하려는 이 말이 아주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무의식을 의식화하지 않으면 무의식이 우리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게 되는데 우리는 그것을 '운명'이라 부른다'


라는 말도 했다.


즉, 우리가 계속 같은 구멍에 빠지는 것이 바로 운명이고, 이는 무의식이 우리 삶을 지배한 탓이다.

건강이란 '당신의 삶의 가치관을 되찾아 당신이 마땅히 걸어야 할 길을 걷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무의식에만 질질 끌려다녀서는 곤란하다. 언제까지 우리는 같은 구멍에 빠질 것인가? 이제 본 학회 철학의 설립 배경이 좀 납득이 되는가?

같은 행동을 자기도 모르게 반복하는 이유, 바로 당신이 계속 같은 구멍에 빠지는 이유, 그 이유를 해결하지 못하면 당신은 영원히 같은 구멍에 빠지다 구멍 속에서 하직하게 될 것이다. 거기서 당장 나오든지, 아니면 어느 시인의 말처럼, 그저 삶이 소풍이라고 편하게 생각해도 좋다.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두 번째 주저리,


사실 첫 번째 설명과 연속선상에 있는데, 억지로 좋은 습관을 평생 유지할 수는 없다. 다이어트를 예로 들자면, 대개 다이어트가 실패하는 이유는 그저 참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먹고 싶은 고기와 케이크, 빵을 멀리하고 살겠는가? 애초에 그것들을 싫어한다면, 풀과 과일을 좋아한다면, 굳이 다이어트가 괴로울 게 뭐가 있겠는가? 아니, 애초에 다이어트라는 단어를 떠올릴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즉, 당신이 음식을 바라보는 가치관이 바뀐다면 해결되지 않겠는가?


운동으로 살을 빼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체중 감량만을 목적으로 하기 싫은 운동을 억지로 지속하기는 지옥과도 같다. 결국 실패한다. 애초에 운동이 좋아진다면 어떻게 될까?

이 부분을 피하는 편법 중 한 가지 테크닉을 소개한다. 근본적인 비책은 아니지만, 그래도 장기적 유지에는 억지로 하는 것보다는 낫다. 이차적 이득(secondary gain이라는 심리학적 용어를 쓰는 게 아니니 혼동하지 말자)을 노리는 방법. 예를 들어, 몸짱이 되고 싶어 운동을 할 때 겉으로 보이는 근육량만 매일같이 체크하면 지친다. 이러지 말고, 근육은 마음 한편에 고이 모셔두고, 차라리 강해짐을 목표로 운동하면 운동이 재밌어지면서 운동을 지속할 수 있고, 근육은 덤으로(이차적 이득) 따라온다.


자, 여기까지 했으니 이제 건강의 삼요소로 넘어간다. 제목이 '건강의 삼요소'인데 정작 삼요소 중 한 요소의 코빼기조차 내밀지 못해 미안하다. 앞으로는 너스레를 줄이도록 노력해 보겠다.



자, 이제 건강의 삼요소 下로 로 가보자.


https://brunch.co.kr/@eb93881124914a1/51




두려움, 발가벗은 나 자신과의 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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