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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태용 Oct 26. 2024

#10. 영원( Eternity)

SF멜로 연재소설 《다시, 만나러 갑니다.》

수현의 시스템 잔여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마치 생명이 꺼져가는 촛불처럼, 시간이 빠르게 사라져 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확인했던 시간은 이제 몇 시간이 채 남지 않은 순간이었다. 방 안은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고요하고 차가웠다.


천장은 어둠 속에 끝없이 이어져 있었고, 오래된 조명은 숨을 고르듯 깜빡이며 희미한 빛을 뿌렸다. 그 빛은 멀어져 가는 별의 마지막 숨결처럼 방 안을 아슬아슬하게 밝히고 있었다.


차가운 공기는 마치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듯 뼛속까지 스며들어 숨조차 차갑게 만들었다. 방 안에는 금속과 기계유의 냄새가 은은하게 퍼져 있었다. 벽 한쪽에는 깊게 긁힌 자국들이 가득하고, 그 곁을 메운 무채색의 가구들은 생기를 잃은 채 먼지 속에 잊혀 있었다. 금이 간 벽에는 얽히고설킨 오래된 전선들이 마치 풀리지 않는 기억처럼 어지럽게 얽혀 있었다.


바닥 곳곳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계 부품들이 흩어져 있었다. 재민이 수현을 살리기 위해 절망 속에서 밤을 지새우며 시도했던 흔적들이었다. 실패의 무게가 켜켜이 쌓여, 슬픔을 바닥에 남겨두고 있었다.


창밖에서는 네온 불빛이 불규칙하게 깜빡이며 방 안을 간신히 밝혔고, 그 빛은 마치 도시의 느린 맥박처럼 흐릿하게 깜박였다. 모든 것이 낡아가는 기계처럼, 서서히 멈춰가는 느낌. 공기 정화기가 내는 기계적인 소음만이 이 공간에서 아직 살아 있음을, 그나마 최소한의 생명이라도 유지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 소리마저도 무거운 정적에 파묻혀, 생명이라는 것의 불안정함을 어렴풋이 드러내고 있었다.


「준비됐어?」 재민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재민의 손은 수현의 차가운 손을 단단히 잡고 있었다. 수현의 손끝에서 느껴지는 마지막 온기가 재민을 그녀의 곁에 머물게 하고 있었다. 이 마지막 순간조차 놓치고 싶지 않았던 재민은 더욱 그녀의 손을 강하게 잡았다.


수현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준비됐어. 이 모든 게 끝난다 해도, 우리는 다시 하나로 이어질 거야. 이 길의 끝이 어디일지 모르지만, 당신이 곁에 있어준다면 더는 바랄 게 없어. 우리가 함께 걸어온 시간이 영원히 남기를 바라.」


그들은 함께 용광로로 향했다. 『정부』는 더 철저히 그들을 감시하기로 결정했고, 그들은 정부에 의해 통제 불능의 위험 요소로 간주되고 있었다. 사이보그 실험의 결과로 그들의 존재는 불안정하고, 통제가 어려운 대상이었다. 재민과 수현은 기존의 명령 체계에서 벗어나 자유를 갈망하는 존재로 변했기 때문에, 정부는 그들을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더욱 강도 높은 감시를 지속하고 있었다.


거주지 밖을 향해 나아가는 순간, 드론들이 그들의 머리 위로 몰려들었다. 드론들은 기계적인 날갯짓으로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재민과 수현을 포위하려 했다. 붉은 경고등이 번쩍이는 가운데, 드론들은 공격 모드로 전환되었고, 레이저가 공중에 불길한 빛을 그렸다.


재민은 수현을 지키기 위해 방어막을 펼쳤다. 사이보그 몸에서 형성된 투명한 에너지 필드가 수현을 감싸며 레이저를 막아냈다. 드론들이 맹렬하게 공격해 왔지만, 방어막은 그 모든 빛을 튕겨냈다.


한순간, 재민의 눈에 미래형 오토바이가 들어왔다. 수현을 조심스럽게 오토바이에 태우고, 방어막을 유지한 채 시동을 걸었다. 오토바이는 숨을 삼킬 듯한 소리를 내며 출발했다.

 바람이 얼굴을 스쳤고, 도시의 네온빛이 흔들리며 스쳐갔다. 재민은 온 신경을 집중해 오토바이를 몰았다.

 드론의 추격은 끊임없었고, 뒤로 붉은 불빛이 맴돌았지만, 재민은 수현을 지키기 위해 결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포기하지 마, 수현아. 여기서 벗어날 수 있어.」


두 사람은 끊임없이 공격해 오는 드론의 감시망을 뚫고 나아갔다. 드론들은 공중에서 빠르게 회전하며 레이저를 발사했고, 그 레이저는 금속 표면을 태우듯이 지나갔다.


 공기의 진동과 함께, 드론의 기계적인 윙윙거림이 점점 가까워졌다. 재민은 방어막을 강화하며 오토바이를 몰았고, 드론은 그들을 끈질기게 추적하며 발톱처럼 생긴 기계 팔을 뻗어 수현에게 닿으려 했다. 한 대의 드론이 오토바이의 옆을 스치며 휘두르는 순간, 재민은 오토바이를 비틀어 그 공격을 피했다. 드론의 붉은 센서가 빛을 내며 그들을 겨냥했고, 레이저가 옆으로 비껴 나가며 불꽃이 튀었다.


눈앞에는 네온사인으로 가득한 도시의 어두운 골목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재민은 그 좁은 길들을 미친 듯한 속도로 가로질렀다.


「우리, 정말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수현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마치 안갯속에서 길을 잃은 듯 점점 희미해져 갔다. 재민은 미소를 지었다. 눈빛 속에는 마치 잔잔한 물결처럼 수많은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우리는 늘 하나였으니까, 어디에 있든 함께일 거야. 우리의 존재가 이어지는 한, 우리는 결코 갈라지지 않을 거야.」


두 사람은 마침내 정부 비밀 연구시설의 용광로 앞에 섰다. 용광로는 마치 거대한 금속 괴물처럼 그들 앞에서 열기를 뿜어냈고, 바닥에는 붉은빛으로 녹아내린 금속의 흐름이 있었다. 그 순간, 문지기 로봇들이 앞을 가로막았다. 강철로 만들어진 기계들이 일제히 붉은 눈을 번쩍이며 경고음을 울렸다.


재민은 한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로봇들에 맞섰다. 전투 모드로 전환된 그의 몸은 마치 흐르는 물결처럼 유연하게 움직였다. 로봇들이 금속 발톱을 휘두르며 거칠게 다가왔지만, 재민은 그들의 공격을 춤추듯 피하며 반격을 가했다. 그의 팔에서 뻗어 나온 충격파가 로봇들의 몸을 타격하자, 강철로 이루어진 거대한 기계들이 마치 나무처럼 무겁게 휘어지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들이 땅에 부딪힐 때, 쇠붙이의 비명이 퍼지며 공중에 메아리쳤다. 무너져 내린 로봇들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고, 그곳엔 쓰러진 나무들 사이에 고요함만이 남았다.


연구시설의 경보가 울리며 로봇들이 점점 더 몰려왔지만, 재민은 수현을 지키기 위해 맞섰다. 수현은 재민의 뒤에서 그 순간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침내 모든 문지기 로봇이 쓰러지고, 금속 덩어리들이 바닥에 무거운 소리를 내며 부서질 때, 재민은 깊게 숨을 내쉬며 수현에게 다가갔다.


「여기까지 왔어. 이제 정말 끝이야.」


재민은 수현을 안고, 용광로의 거대한 열의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불꽃 속에서 섞인 불빛은 마치 마지막으로 남겨진 따스함처럼 두 사람을 감싸고 있었다.


「영원히 사랑해.」


수현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눈에는 더 이상 빛이 남아 있지 않았지만, 그 안에는 말할 수 없는 깊은 애정이 담겨 있었다. 재민은 수현을 더욱 단단히 안고, 둘이 함께 불길 속으로 사라질 준비를 마쳤다.


《양자 얽힘》의 힘이 재민과 수현의 의식 속에서 점점 선명하게 깨어나고 있었다.


양자 얽힘은 두 개의 입자가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상태를 공유하는 현상이다. 재민은 수현의 의식과 완벽하게 연결되기 위해 서로의 기억과 감정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목 뒤에 있는 연결 포트를 열고, 수현의 시스템에 직접적인 연결을 시도했다.


금속과 플라스틱이 맞물리며 전선이 서로 엮였고, 둘의 기억과 감정이 전기 신호로 얽히기 시작했다. 이처럼 재민과 수현의 기억도 얽히며 서로의 마음속에서 하나가 되어갔다. 서로의 기억이 감싸고, 그 기억들이 마음속에서 혼합되며 하나로 연결되었다.


「우리, 함께야.」 재민의 목소리와 수현의 마음이 하나로 울려 퍼졌다. 그들은 용광로 속으로 몸을 던졌다. 거대한 불길이 그들을 집어삼켰고, 그 순간 그들은 마치 별처럼 밝게 타오르며 서로에게로 녹아들어 갔다.


마지막 순간, 모든 감시, 통제, 고통에서 벗어난 자유의 느낌이 둘 사이에서 피어났다. 수현과 재민은 이제 물리적인 몸을 넘어서, 서로의 의식 속에서 영원히 함께했다.


마지막 선택은 이 차가운 도시 속에서 처음으로 두 사람만의 빛을 만들어낸 순간이었다. 그 불빛은 모든 끝을 품으면서도 아직 밝혀지지 않은 어둠 속에 새로운 희망을 던지는 한 줄기였다.


《영원히 홀로가 아닌,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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