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인공별이 지는 하늘
SF멜로 연재소설 《다시, 만나러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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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시간이... 얼마야?」
재민의 목소리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수현은 천천히 손목을 들어 올렸다. 피부 아래로 비치는 생체 시계가 푸른빛으로 깜박였다.
[ 시스템 잔여 시간: 3일 3시간 33분 33초 ]
「마치 운명이 농담하는 것 같지 않아?」수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모든 숫자가 3이네.」
재민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수현의 손목에서 초침이 한 칸씩 움직이는 것을 바라볼 뿐이었다. 각각의 '틱' 소리가 심장을 찌르는 것만 같았다.
「난 괜찮아….」 수현이 재민의 뺨을 쓰다듬었다. 손가락은 이제 거의 움직일 힘도 없어 보였다. 「난 후회 없어. 당신이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80층 높이의 메가 타워에서 내려다보이는 도시는 네온과 스모그의 바다였다. 끝없이 이어진 고층 빌딩들 사이로 비행 차량들이 빛줄기를 그리며 질주했고, 건물 외벽을 뒤덮은 홀로그램 광고들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인공 무지개를 만들어냈다. 산성비가 내리는 하늘은 언제나 검붉은 빛이었고, 도시의 스카이라인은 거대 기업들의 피라미드형 본사 건물들로 가득했다.
'K-2080 메가 타워'는 저소득층 사이보그들을 위한 집단 거주 시설이었다. 80층 높이로 솟은 이 거대한 벌집은 마치 디스토피아의 상징물처럼 도시 한가운데 우뚝 서 있었다. 각 층마다 수백 개의 좁은 유닛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고, 복도마다 설치된 홀로그램 안내판은 24시간 국가 슬로건을 반복 재생했다.
[ 오늘은 공기 오염도가 치명적인 수치입니다. 실외 활동을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
중앙 AI의 기계적인 음성이 방송되는 동안, 창 밖으로는 산성비가 형광빛줄기를 그리며 내렸다. 빗방울 하나하나가 네온사인을 반사하며 무지개 빛으로 반짝였다.
수현의 인조 피부는 낡은 플라스틱처럼 광택을 잃어갔다. 한때 생명력으로 빛나던 피부는 이제 투명한 셀로판지처럼 변해가고 있었고, 그 아래로 차가운 금속 뼈대가 섬뜩하게 비쳤다. 움푹 꺼진 볼은 마치 오래된 인형처럼 부자연스러웠고, 손끝은 겨울날 시체처럼 차가웠다.
피부 아래로 드러난 회로들은 마치 부패해 가는 혈관처럼 검푸르게 돋보였다. 관절에서는 쇳소리가 났고, 녹슨 기계처럼 뻣뻣하게 굳어갔다. 체온 조절 장치의 고장으로 그녀의 몸은 점점 더 차가워져만 갔다. 한때 생기 있게 반짝이던 눈가의 생체 센서는 이제 깜빡거리는 형광등처럼 불안정하게 명멸했다.
방 안의 공기정화기가 윙윙거리며 돌아갔다. 15평 남짓한 공간은 정부 지정 표준 가구들로 가득했다. 회색 벽면의 스마트 디스플레이는 끊임없이 국가 방송을 송출했고, 천장 구석의 감시 카메라는 붉은 눈을 깜박이며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창밖으로는 검은 순찰 드론들이 레이저 스캐너를 비추며 건물 사이를 날아다녔다. 붉은 센서광이 마치 기계 독수리의 눈처럼 번뜩였다. 메가 타워를 감싸는 전자기 방벽은 밤이 되면 보라색 빛을 내뿜으며 통행금지를 알렸다.
「미안해…」재민의 작은 속삭임이 방 안에 메아리쳤다. 초고층 아파트의 방음 시스템이 완벽했기에, 목소리는 더욱 공허하게 들렸다.
건물 외벽을 타고 흐르는 거대한 전광판 광고가 방 안으로 푸른빛을 쏟아부었다.
[ 새로운 삶을 원하십니까? 사이보그 전환 프로그램 - 정부 공인 할부 상품 ]
정부는 사이보그들의 수명을 철저히 통제했다. 인간의 의식을 기계로 옮기는 것을 허락하는 대신, 그들에게 3년이라는 숙명을 강요했다. 물론 재민처럼 천문학적인 돈으로 예외가 될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또 다른 형태의 감옥이었다.
복도를 순찰하는 경비 로봇의 기계음이 들려왔다. 방 곳곳의 감시 장치들은 쉴 새 없이 작동했다. CCTV의 차가운 눈동자, 스피커에서 간헐적으로 들리는 단속 경고음, 창밖을 맴도는 드론들의 위협적인 윙윙거림이 그들의 세계를 규정했다.
「당신을 위해 살아있는 동안…」수현이 희미한 목소리로 말했다. 창밖으로 비치는 네온사인이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무지갯빛으로 물들였다. 「난 정말 행복했어….」
스모그로 뒤덮인 하늘에서는 끊임없이 산성비가 내렸다. 비행 차량들의 행렬이 빌딩 숲 사이를 누비고, 거대 전광판들은 밤하늘을 대신해 인공의 별들을 수놓았다. 이곳은『1984』의 세계가 사이버펑크와 만난 디스토피아였다. 빅 브라더는 이제 차가운 기계의 모습으로 영혼까지 감시하고 있었다.
영원한 삶이 축복인지 저주인지, 재민은 알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 차가운 철창 같은 도시에서 영원히 홀로 남을 것이라는 사실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