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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형 Aug 11. 2023

승마교본 10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당신에게 외출 준비를 하라고 말한다.

   “오늘 경마장에 갈 거예요.”

   “평일에도 시합이 있나요?”

   “아뇨 경마를 보러 가는 게 아니라 조마교육을 볼 거예요.”

   우리는 말을 타고 출발한다. 

   “경마장까지 말로 갈 수 있나요?”

   당신은 놀라 묻는다.

   “설마요, 도로가 슈퍼까지 갈 거예요. 걸어가기에는 멀잖아요.”

   호수에 갈 때 들렀던 동네 슈퍼 뒷마당에 말을 묶는다. 그리고 차를 빌려서 경마장으로 향한다. 나는 의식적으로 침묵을 유지한다. 당신은 한 달간의 경험으로 오늘 분위기가 다르다는 것을 쉽게 눈치챈다. 당신도 조용하다. 그 점이 오히려 편하다. 나는 차를 돌려 ‘이제 수고하셨으니 짐을 싸세요’ 또는 ‘이제 원하시는 만큼 있다가 떠나시고 싶을 때 가시면 됩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그날은 유난히 안개가 심했고, 나는 그 안개 속으로 숨고 싶어진다.

   우리는 두 시간 정도 걸려 경마장에 도착했다. 나는 미리 양해를 구해 둔 조마교육 일정에 늦지 않게 도착했다. 딱 좋은 타이밍이다. 말이 사람을 태우기 위해 어떤 교육을 받을까. 거기에 의문을 품어 본 적은 있을까.

   아직 어린 말들, 기둥에 짧게 묶인 고삐. 마치 물에 들어갔다 나온 듯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고 공포를 느끼게 만드는. 중앙 말뚝부터 줄을 팽팽하게 유지하고 끝없이 뒷발을 차며, 원을 그리며 같은 자리를 돌고 있는 장면들이 지나간다. 

   그 장면들은 당신이 와서 보고 느낀 풍경들과 섞인다. 동물에게 감정이 있을까. 눈동자는 누가 봐도 공포였고, 이제 당신은 승마장의 말들의 눈을 보고 상실을 떠올릴까. 당신은 충격을 받은 듯하지만, 시선을 피하진 않는다. 

   “이건 어디로도 도망갈 수 없고, 사람을 태울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가르치는 과정이에요.”

   나는 묻지도 않은 것을 대답한다. 그리고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

   그곳에 있는 말은 앞다리가 부러져 곧 떨어져 나갈 것처럼 덜렁거리고 있었다. 당신은 결국 고개를 돌린다. 그 말은 숨 쉬는 것도 힘든 듯 연신 푸륵푸륵 거리는 소리를 낸다. 당신은 밖으로 나가고, 이제 내가 당신 뒤를 따른다.

   “저 말은….”

   “경주 중 기수가 떨어졌고, 밟지 않으려다 다리가 꺾인 거예요.”

   “그럼 어떻게 되죠?”

   “고깃집에 팔겠죠. 아마도.”

   당신은 내 말을 듣지 않고 주차장으로 향한다. 난 더 설명하지 않는다. 이제 사람을 태울 수도 없고, 수술을 한다 해도 세 발로 자기 몸무게를 이겨내지 못해 오래 살지 못할 상황이라는 것은 당신에게 중요한 일이 아닐지 모른다. 아니 그건 설명이 아닌 변명일까. 이제 돌아갈 시간이 온 것이다. 우리는 그곳에 더 이상 머물 이유가 없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이번 침묵은 당신이 주도하고 있었다.

   우리가 돌아와 묶어 놓은 말을 찾았을 때 당신이 말했다.

   “슬픈 일이군요.”

   “그렇죠.”

   “전 내일 떠나겠어요.”

   나는 당신이 그 말을 할 것이라 생각했다.

   “고생하셨어요.”

   “아니요. 감사했어요.”

   나는 새벽안개에 올랐다. 당신은 말에 오르지 않았다.

   “먼저 들어가서 저녁 준비할게요. 오시는 길은 아시죠?”

   나는 이미 철쭉이 다 떨어져 양쪽으로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길로 향한다. 당신에게는 달그림자와 함께 천천히 걸어 들어올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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