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에 헛짓거리했네
내가 생각해도 나는 기분파가 아니다. 나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분위기에 잘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내가 그날 뭐에 씌었나 보다. 골득실도 모르는 내가 축구라니?
그게 말이다. 지난주 일이었다. 수요일(22일)에 개학하고 목요일(23일)이었다. 점심 먹고 복도를 어슬렁거리는데 아이들이 복도에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뭐야? 하면서 아이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보니 이 포스터가 딱하니 붙어있었다.
풋살컵? 뭐야 우승 트로피에 축구공까지 주다니. 참가 조건을 보니 3, 4, 5, 6학년 골고루 섞여야만 출전할 수 있었다. 그까짓 24살 나 혼자 다 채우고도 남지만, 애들한테 나도 출전하고 싶다고 선생님 축구 잘한다고 거짓말을 흘리고 다녔다. 하지만 아이들도 바보는 아니었다. 나의 옛 제자이자 현 6학년 아이들은 선생님 개발인 거 다 안다며 안된다고 했다. 힝 너무해! 감정 상한 채 교실에 와서 앉아 있었다.
근데 말이다. 몇 분 후에 6학년 녀석이 나를 부르는 거였다.
“선생님, 진짜 할 거예요?”
“응, 하고말고. 나 팀에 끼워 줄 거야? 잠시만 근데 나 6학년 2반 선생님한테 가서 5학년 자격으로 참가해도 되는지 물어보고 올게.”
6학년 2반 선생님은 웃으면서 진짜 하겠냐고 그랬다. 그래 그때라도 나는 멈췄어야 했다. 근데 말이다. 이날의 나는 브레이크가 고장 난 폭주 기관차였다. 내가 할 수 있다고 하니까 선생님이 나도 참가하라고 재밌겠다고 했다. 그래! 재미! 체육부장이 기대하는 건 풋살컵의 재미니까 나는 재미로 흥행수표가 되겠어! 얼떨결에 나에게도 출전 자격이 주어졌다. 야호!
근데 눈치도 없이 나는 재미만 보여주면 되는데 이기고 싶은가 보다. 벌써 얼큰하게 취한 부장님처럼 행동한다.
“MS아! 우리 1승 하면 회식하자!”
“선생님이 소주 사는 거예요?”
“MS이 맞을래? 뽀로로 주스 사줄게. 자자 정신을 차려보자! 근데 우리 팀이 누구야? 나랑 너랑? 또 누구?”
“선생님이랑 저랑, JH 그리고 두 명은 구해야 해요”
“야, 빨리 가서 2명 더 구해와 봐. 일단 우리 3명이 17이니까, 3학년 1명, 4학년 1명 구해와.”
10분 정도가 지나서 우리 팀은 다 모아졌다. 나중에 알았다. 축구 잘하는 애들은 벌써 끼리끼리 팀을 다 구성했다는 것을. 아까비! 한발 늦었어!
1시에 중앙현관 앞 벤치에 모여 앉은 우리 팀은 참가 신청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포지션도 정했다.
“JH 네가 골키퍼 하고, MS이 네가 공격수, 선생님이 수비할게!”
“아니에요. 저하고 3학년, 4학년이 수비할 테니 선생님이 스트라이커 하세요!”
다행히 옆에 있던 4학년이 자기도 스트라이커 한다고 해서 최종적으로 수비수 2, 공격수 2, 골키퍼 1명으로 정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팀이름을 정해야 하는데 말이다. 곧 종이 울릴 것 같다. MS이가 연필을 잡더니 빈칸에 휘갈겨 썼다. 맹구 FC. 여보세요? 맹구 FC라니! 그래 그렇게 나는 맹구 FC의 팀원이 되었다.
-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