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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언니 Apr 10. 2024

<골드미스 프롤로그>

어쩔 수 없이 골드미스가 되어가는 그녀의 스토리 - #9


#9
나만 왜 이래.



역시나 별로였다.


프로필에는 푸근한 인상이라고 기재되어 있었지만 예상한 대로 뚱뚱하고 배가 많이 나와 셔츠의 단추들이 불쌍한 지경이었다. 머리숱도 많이 없었다. 문제는 외모도 별로인데 첫 만남에 목 인사만 까닥하는 것이 예의도 없었고 은경에게 얼마 모았냐고 바로 물어봐서 염치까지 없는 사람임이 드러났다.


그와 마주한 시간이 너무 느렸다. 주말 아침 일찍 일어나 부기를 빼기 위해 했던 산책이 부질없었다. 평소 같았으면 누워서 뒹굴거리며 드라마 속 잘생긴 배우나 보고 있을 시간인데 여기 와서 못 생긴 아저씨의 허세를 듣고 있는 은경 자신이 불쌍했다.


머리가 크고 배가 남산만 한 이 아저씨는 초밥을 좋아한단다.


은경은 없는 약속을 만들어내며 커피만 마시고 절대 없을 다음 만남을 기약하고는 자리를 빠져나왔다. 결혼은 쉽지 않은 정도를 넘어선 험난한 과정이다. 제대로 마음먹고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진도가 나가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썸'이라도 타야 진도가 나갈 텐데 그걸 못하고 있다. 나은처럼 같은 오빠를 여러 번 만나야 연인을 넘어 배우자로서 인생을 함께할 만한 여자가 바로 은경이라는 것을 알릴 수 있는데 못하고 있다. 그냥 평범한 외모에 평범한 인성을 갖춘 괜찮기만 한 남자면 된다고 은경은 생각하는데 그 평범함을 찾는 것이 안되고 있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은경은 분명 열심히 살았고 사회구성원으로서도 크게 이상한 일에 연루된 적 없이 정상적인 트랙에 맞춰 살아왔는데 왜 남들도 다 하는 평범한 결혼이 이렇게 어려운 것인가.


일요일 저녁 한산한 지하철에 몸을 실은 은경은 우울해졌다. 그래도 창 밖에 반사된 얼굴은 우울하지만 청순하게 슬퍼 보여 감성적이었다. 분명 모르는 사람이 지금 은경을 보았다면 청초한 여성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역시 저런 아저씨는 나에게 어울리지 않아.’


스스로의 모습에 약간의 위로를 받은 은경은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남겼다. 평소 사진을 자주 찍지 않아서 지금의 청초함을 사진에 담는 것이 쉽지 않다. 반복해서 찍어도 팔자 주름이 눈에 띄는 촌스러운 사진만 한가득이다. 차창에 반사된 여리고 청초한 모습은 은경의 눈에만 보일 뿐 렌즈를 거치니 흔한 아줌마 같은 사진만 있다.


'왜 이렇게 나만 되는 일이 없냐.'


직장인에게 금 같은 일요일 아침부터 일어나 부기 빼고 광내서 약속에 나갔더니 돼지 같은 아저씨의 허세에 시간만 낭비했다. 오늘뿐인가. 결혼에 도전하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제대로 되는 일이 없이 돈만 줄줄 세고 있는 느낌이다. 전동차 창에 반사된 모습만 봐도 아직 청초함이 가득한 배 나온 아저씨에게는 절대 가당치 않은 아가씨인데 '운'이 안 좋아 되는 일이 없다.  


진도가 나가는 것 같은 나은이 옆에 있어 더 우울하다. 마치 세상이 은경만 골라서 차별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  

 

별로였던 데이트 덕분에 가라앉아 버린 무드에 휩쓸려 계획하지 않은 반차를 써버렸다. 오후에 출근을 했더니 사무실 분위기가 화기애애하다. 아니나 다를까 분위기의 주인공은 이나은이다. 저번에 이야기했던 나름 동안이라고 소개하던 아저씨와 진지한 관계로 발전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일단 성격이 너무 잘 맞아. 내가 게임 좋아하잖아. 같이 하는데 재밌더라고.”


“돈은 잘 버니?”


“그냥 보통이야. 근데 뭐 나도 버니까 괜찮을 것 같아. 그리고 조절하고 아껴 써야지. 나도 모은 거 별로 없이 가니까 더 벌어서 메꿔야지. 집은 같이 모으다 보면 언젠가는 살 수 있을 것 같아.”


“선물은 뭐 해줬어?”


“어휴 무슨 선물이야. 지금 모으기 바쁜데. 이제 백화점 하고는 안녕이야. 옷이 없는 것도 아니니까 있는 거 돌려 입어야지.”


“어머 왜 이렇게 어른됐어? 변했다. 나은이~”


소영 대리가 나은의 평소와 달라진 모습에 감탄하며 한마디 했다.


왜 굳이 저런 남자를 만날까? 좋은 배우자와의 결혼이 나은의 인생을 180도 바꿔 놓을 텐데 저렇게 쉽게 조건을 포기해 버리는 걸 보니 어른이 되었다고 하기보다 나은이는 눈이 낮다고 은경은 생각했다.


남편이 되면 매일 아침 얼굴을 봐야 하고 그가 번 수입으로 먹고살아야 하며 수많은 그의 것들이 자기 인생에 들어올 텐데 저런 아저씨와 결혼까지 생각하다니 나은이가 이해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주말에 망해버린 자신의 데이트가 생각나 화기애애한 대화에 참여할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지금은 은경의 코가 석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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