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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언니 Mar 27. 2024

<골드미스 프롤로그>

어쩔 수 없이 골드미스가 되어가는 그녀의 스토리 - #7


#7
현실을 직시해!


은경이 처음 만나는 상대는 공기업을 다니는 44살 남성이다.


사실 다른 3명의 남자들에게도 진행 의사를 밝혔지만 하나만 승낙을 받았다. 그래도 주변의 남자들보다는 훨씬 괜찮은 남자라고 생각되어 마음이 설렜다. 오랜만에 주말이 기다려진다. 마음 같아서는 전문가에게 메이크업과 헤어를 받고 싶지만 재정 상황이 이제는 정말 여의치 않아서 일단 유튜브를 보며 스스로 최선을 다해 보기로 했다.


원래 은경은 우아한 자연스러움이 묻어나는 생얼 그대로의 미를 추구한다. 하지만 30대 후반으로 접어들자 화장을 안 할 수 없었다. 그녀가 제일 싫어하는 초라함이 얼굴에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화장을 했더라면 오히려 능숙했을 텐데 늦은 나이에 유튜브를 따라 하며 얼굴에 색칠을 하고 있으니 결과물에서 초짜티가 팍팍 났다.


어쩌다 그녀의 인생이 이렇게 되었을까.


자꾸만 6년 전 헤어진 전 남자 친구가 생각난다. 그와 결혼했더라면 지금쯤 집안 살림에 집중하다가 가끔 에스테틱 마사지를 받을 수 있는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 화장 안 한 게 더 예쁘다며 칭얼대는 은경의 머리를 헝클어뜨리는 다정한 남편과 매일 밤 편안한 저녁을 맞을 수 있지 않았을까.


중요한 미팅을 앞두고 카드 값 걱정에 유튜브나 보며 소질도 없는 화장을 따라 하고 있는 스스로가 은경은 너무 비참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전 남자 친구는 6년 전에 헤어졌고 은경의 인생을 바꿔줄 수도 있는 새로운 남자와의 미팅은 코 앞이다. 지나간 과거를 잊고 현실에 집중해야 한다. 은경은 감정에 복받쳐 찡해지는 코끝에 힘을 주며 다시 유튜브에 집중했다.       


-


공기업 월급은 생각보다 적었다. 다행히 그 남자는 모은 돈으로 초소형 아파트를 사두었는데 지역이 일산이어서 강남으로 출퇴근해야 하는 은경에게는 마음에 쏙 드는 조건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수입 때문에 항상 원하던 내조하는 현모양처로는 살기 힘들고 맞벌이를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도 40대로는 절대 안 보이는 그의 외모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잘 생기지는 않았지만 동안인 데다 머리가 작고 어깨가 넓어서 큰 키가 아닌데도 연예인 느낌이었다.


"은경 씨는 참 순수하신 것 같아요. 좋네요."


은경이 자신의 해외여행 경험에 대해 재잘재잘 떠들어 댈 때 그가 건넨 말이다. 좋아하는 여행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약간 달아올랐었는데 이런 은경의 눈에서 열정을 본 건 같다. 차분한 저음의 목소리로 칭찬을 들으니 은경은 마음이 설렜다. 이 정도면 월급이 적어도 충분히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은경도 같이 벌고 절약도 하면서 오손도손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보였다.


게다가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매너가 묻어나고 세심한 것 같아서 더 호감이 갔다. 상대도 은경이 마음에 있는지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이 많았다. 시간이 날아간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보다. 사소한 대화인데도 집중을 하다 보니 순식간에 시간이 갔다.


창 밖은 벌써 어두워졌다. 가게 조명이 저녁 조명으로 바뀌자 유리창에 은경과 상대가 반사되어 보였다. 따뜻한 오렌지 빛 조명 아래 두 사람은 영락없는 커플의 모습이다. 외국의 로맨틱한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다음에 또 봬요.”


언제 어디서 몇 시에 볼지 정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은경에게 애프터 신청을 했다. 마음이 포근해지는 행복한 하루였다. 만족스러운 미팅을 하고 나니 왠지 모르게 초조하던 은경의 마음이 안정을 찾는 느낌이다.


-


하지만 매니저를 통해 전해 들은 월요일의 소식은 청천벽력과 같았다. 은경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데이트를 즐겼던 그는 은경을 거부했다. 이것은 뒤통수를 넘어서 인간에 대한 믿음을 말살하는 배신과 같았다.


“은경님 죄송하지만 남성분이 만남 진행을 안 하시겠다고 해요.”


“네?! 어… 당일에 애프터 신청도 하셨는데요.”


“주말 동안 생각이 바뀌셨나 봐요. 즐거운 소식을 못 전해드려서 너무 죄송해요.”


“이유가 뭐래요?”


“성격이 너무 다른 것 같다고 하시고… 본인 수입이 아무래도 은경님이 원하는 만큼은 아닌 거 같아서 만족시켜 드리기 어려울 것 같다고 하시네요. "


은경은 주말의 데이트를 곱씹으며 분명 자신은 맞벌이를 계속해도 좋다고 대답했던 것을 떠올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따뜻하고 좋은 시간을 보냈는데 왜 거절하는 것인가.


"그래서 제가 만났던 분들을 체크해 보니 많이 여성스러운 분을 선호하시는 것 같아요."


매니저가 에둘러 남자가 여성스러운 스타일을 좋아한다고 굳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남자에 대한 실망이 더욱 커졌다.


결국 외모인가! 매너 있고 배려해서 괜찮은 줄 알았는데 대실망이다. 왜 다음에 또 보자는 거짓말을 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은경은 마음의 상처를 느꼈다. 아무리 외모가 그의 이상형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렇게 많은 대화를 하고 웃고 떠들었다면 그도 어느 정도 마음을 열었다는 것일 텐데 왜 만남을 거부하는 것인가. 은경을 더 알아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을 텐데 어째서 그는 섣부른 판단을 한 것인가. 백만 가지 질문이 은경의 머릿속을 덮쳤다. 하지만 응답받지도 못할 질문들을 되뇌어 봤자 해결되는 것은 없다.


매니저와 실망스러운 통화를 마친 은경은 바로 단골 미용실에 예약을 했다. 요즘 지출이 지나치긴 하지만 별로인 외모로 또 차일수는 없는 노릇이다. 매니저가 새로운 프로필을 전달해 주기로 했으니 이번의 실패를 교훈 삼아 여성스러운 모습으로 다음에는 꼭 진짜 애프터를 받고 말겠다. 거금을 들여 결정사까지 간 은경은 목표를 위해 사소한 상처는 지나쳐 가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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