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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언니 Apr 04. 2024

<골드미스 프롤로그>

어쩔 수 없이 골드미스가 되어가는 그녀의 스토리 - #8


#8
결혼은 어렵네.



사무실에 출근하니 오랜만에 나은이 먼저 말을 건넨다.


“어머 언니 머리했네. 공주님 같다.”


동료들이 예쁘다고 이야기해 주는 것을 보니 이번 머리는 성공한 것 같다. 분위기도 변했으니 이제 남자만 만나면 될 것 같다. 평소였으면 주말의 어이없던 데이트를 동료들에게 폭포수처럼 쏟아 냈겠지만 오늘만큼은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결정사를 가입하고 유난히 나은이 즐거워 보여서 은경도 결정사에 가입했다는 이야기를 하면 왠지 나은을 따라서 가입한 것 같이 보일 것 같다. 게다가 나이도 제일 많은 은경이 남자를 만났다는 이야기를 하면 나은과 동료들이 비웃을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나은이 전해주는 만났던 남자들 이야기를 들으니 은경이 만났던 남자보다 조건도 좋고 잘생긴 것 같았다. 은경이 나이도 많고 키도 작으니 어쩔 수 없다고 할 수도 있다. 그나마 학력은 나은이 학교를 외국에서 나와서 인서울 여대를 나온 은경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나은이 더 높은 레벨로 결정사에서 평가받는 것 같아 은경은 알 수 없는 자격지심이 들었다. 물론, 이런 근거 없는 자격지심을 은경이 처음 느끼는 것은 아니다. 사춘기 시절 같은 동네에 살던 키가 좀 크고 말랐던 여자애가 있었는데 같은 반이었을 뿐 말도 한번 제대로 섞어본 적 없었지만 그 애가 은경은 이유 없이 싫었다.


흔히들, '까졌다'는 예쁘장한 양아치들은 조금 예쁘장할 뿐 똑똑하지 않아서 은경에게 측은한 마음을 들게 했었다. 어려서 남자친구들하고 몰려다니며 공주놀이에 심취한 그녀들이 멀지 않은 미래에 어린 애엄마가 되거나 백수가 되어 추레한 모습으로 전락하는 모습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친척 언니들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부터 드라마까지 그녀들의 뻔한 미래를 유추할 만한 스토리는 넘쳐났다. 그래서 은경은 인기가 많아 보였던 그녀들을 부러워하지 않고 공부에 열중했다.


하지만 키 크고 말랐던 조용한 여자애는 달랐다. 예쁘장한 얼굴에 까지지도 않아서 뻔한 레퍼토리가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왠지 은경보다 괜찮은 미래가 있을 것 같아 보이는 막연한 불안감이 그녀를 싫어하게 만들었다. 아무래도 나은이 싫은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 일 것이다. 게다가 나은은 은경보다 어리다. 은경이 40대를 코 앞에 두고 있는 노처녀가 되어버린 시기에 30대 초반 예쁘장한 여성이다. 여자 얼굴 뜯어먹고 살 것도 아니고 늙으면 다 똑같다지만 당장 그녀가 은경보다 어리고 그래서인지 은경은 요즘 나은을 보는 게 불편하다.


그리고 나은은 눈이 꽤나 낮다. 어떻게 저런 아저씨를 만날 수 있지 싶은 나이 든 남자의 사진을 보여주며 너무 괜찮은 오빠였다고 전한다. 다음 약속을 잡았다며 해맑은 얼굴로 사진 속 아저씨를 나름 동안이라고 소개한다. 이런 걱정 없어 보이는 해맑음도 그녀가 은경보다 어리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한판에 최선의 상대를 골라야 되는 은경과 다르게 나은은 선택할 시간이 더 있다. 하나하나 설명하자면 끝이 없지만 인생이 걸린 중요한 시기에 은경이 피나는 노력을 하며 절망을 맛볼 때 노력을 덜한 나은이 걱정 없이 행복한 것이 짜증 난다. 그리고 이렇게 노력하는 은경보다 더 좋은 미래를 맞이할 것 같은 막연한 느낌까지 들어 그녀를 보기가 싫다.

  

-


머리를 새로 단장한 지 일주일이나 지났다. 지금이 새로 한 머리가 가장 예쁠 시기이기 때문에 빨리 남자를 만나야 한다. 초조한 마음을 추스르고 매니저가 전달해 주는 새로운 프로필을 받았다. 전보다 못하다. 외모도 별로고 스펙도 전보다 떨어지는 느낌이다. 은경은 단단히 준비했는데 매니저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 화가 났다.


‘나를 어장 안의 물고기로 보고 관리를 제대로 안 하는군’ 싶어 은경은 바로 매니저에게 전화를 했다. 그런데 매니저가 예상치 못한 말을 꺼냈다.


“은경님 지금은 시작 단계여서 레벨을 맞춰가는 중이에요. 은경님이 누구나처럼 좋은 상대와 결혼하고 싶은 건 알고 있지만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질 만큼 현실이 녹록하지 않아요. 은경님 말고도 수많은 조건도 좋고 외모도 훌륭한 여성분들도 같은 남성분들을 원하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하고 상대의 선택을 못 받을 수 있거든요. 지금 전달드린 프로필도 은경님 취향을 고려해서 선별한 거예요. 은경님이 만남을 추진하셔도 상대가 승낙할지 알 수 없어서요.”


대놓고 부정적인 매니저의 답변에 은경은 위축됐다. 자신에게 주제파악이나 하라는 소리인 것 같았다. 그동안 은경이 만남 실패에 대해 얼마나 많은 분석을 했는지 앞으로는 성공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할 것인지... 한 팀이라고 했던 매니저에게 상담하고 싶었지만 그녀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현실적이고 차가운 말들에 모두 쏙 들어가 버렸다. 전문가인 매니저의 서비스를 받기 위해 돈을 냈지만 은경은 갑이 아니다. 고객님이라고 불러는 주는데 왕은 아니다.  


“그럼 일단 마지막에 주신 분은 너무 나이 들어 보이셔서 안 되겠어요. 나머지 분들은 진행할게요.”


자존심이 많이 상했지만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기분이 다운되어 버려서 목소리도 풀이 죽은 채 나가 버렸다. 전달받은 4개의 프로필 중 상태가 너무 심각한 1개를 빼고 나머지만 진행하기로 했다.


결혼은 정말 어렵다. 은경에게만 어려운 것인가 모두에게나 어려운 것인가. 학교 다닐 때 그렇게 자신감을 갖으라고 자존감을 높이라고 떠들어대더니 사회에 나오니 모두 은경을 자존감을 깎아내리는데 혈안이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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