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이 골드미스가 되어가는 그녀의 스토리 - #10
#10
독거노인 예비군
은경은 꿈을 꾸었다.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이 그녀의 데이트 상대로 나왔다. 티비에서도 잘 생겼었는데 실제로 보니 인형이 따로 없다. 그런 그가, 은경이 너무 예쁘다고, 동안이라고 잘 보이기 위해 귀여운 허세를 떤다.
갑자기 쇼핑 좋아하냐고 묻더니 은경이 그동안 차마 들어갈 수 없었던 디올 매장을 데려갔다. 느껴보지 못했던 황홀이다. 이제야 제대로 된 인생을 사는 기분이다.
영화 속 여주인공처럼 이것저것 둘러보고는 가방과 스카프, 그리고 디올의 아이콘인 시그니처 리본 슈즈를 골랐다. 당연히 눈이 튀어나오는 가격일 것이다. 그런데도 잘생긴 그는 은경에게 그것만 사도 되겠냐고 물어본다.
‘어머 당연히 괜찮지. 지금 너무 사치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어.’ 그러자 그는 은경을 감동시키는 답변을 한다. ‘당연히 되지. 다음에는 최고급 호텔로 스위스 여행이나 가자.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은경이는 시간만 내.’
눈을 뜨니 테라스 카페이다. 어느새 새로 산 디올 슈즈로 갈아 신고 쇼핑백을 한가득 쌓아둔 그녀는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유럽풍 카페에 앉아있다. 맞은편에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이 눈부시다. 지금 솟아나는 에너지가 비타민A를 피부가 흡수해서 샘솟는 것인지, 눈앞의 짜릿한 아름다움을 보고 엔도르핀이 돌아서 샘솟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은경은 지저귀는 새소리에 잠을 깼다.
기분 좋은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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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만 꿨는데도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느낌을 받는다. 오랜만에 즐거운 마음으로 출근했더니 나은이 오전 반차라고 한다. 조용한 오전 시간을 보내고 점심이 끝나자마자 사무실로 돌아오니 나은이 출근했다. 그녀를 비롯한 팀원들은 또 수다삼매경에 빠져 있다.
“식장 보고 온 거야?”
“그럼 바로 진행되는 거야?”
나은을 둘러싼 미혼 여성들이 질문을 쏟아냈다.
“부모님 뵙고 바로 허락받으니 오빠도 확신이 드는 것 같더라고. 빨리 식장 예약하고 결혼하자고 난리야.”
“집은 어떻게 하기로 했어?”
“사실 오빠 부모님이 증여해 줘서 합정에 아파트 있는데 마침 거기 전세가 이번에 끝난대. 거기 살려고.”
현실적인 질문이 나오며 한층 업된 분위기가 진지해질 것이라 예상했던 은경은 새로운 사실을 접하게 되며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충격을 느꼈다.
“어머 뭐야. 이런 행복한 서프라이즈는! 전부 다 해결됐네. 그럼 이제 결혼 준비만 하면 되겠다.”
“너무 부럽다. 이제 품절녀야!”
까르르까르르.
톤 높은 여자들의 웃음소리에 귀가 찢어질 것 같다.
‘왜 이렇게 내 인생은 안 풀리지.’
한 달 전 만해도 나은이나 은경이나 같은 사무실에 비슷한 상황이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나은이는 이제 살아갈 집이 있는 안정된 중산층이고 은경이는 월세를 전전하는 노처녀다.
현실을 마주한 은경은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
‘40대에 300만 원도 안 되는 월급을 받으며 월세에 생활비까지 혼자 다 내고 어떻게 돈을 모으지? 이제 결혼은 끝인가?! 내가 독거노인이 되는 것인가?! 비서는 나이 차면 못하지 않나? 기술을 배워야 하나?'
셀 수 없는 질문들이 머릿속을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50대가 되면 좋아하는 마사지를 받을 돈은커녕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오피스텔에서 빌라로, 쪽방으로 전전하며 가난한 빈곤층으로 전락해 버리는 본인의 처량한 미래가 그려졌다. 엄마보다 처량하게 얼굴에 빈곤함이 비치는 그런 노년을 그녀가 맞이하게 된다.
자기 세계에 빠져있던 은경이 ’ 청첩장‘이라는 단어를 듣고 정신을 차렸다.
“결혼식을 3월에 할 거니까 아마 청첩장은 2월 말쯤 줄 수 있을 거 같아”
“어머 진짜 순식간이다. 너무 바쁘겠어!”
은경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맞추기 위해 입만 웃어 보이며 예의를 갖췄다.
절대 나은의 결혼식에는 가지 않겠다. 앞으로는 나은과 가깝게 지내지 않을 것이다. 세상물정 모르는 것이 안타까워 언니로서 선의로 이것저것 가르쳐 주었는데 배신당한 기분이다.
가여운 동생인 줄 알았더니 아주 여우 같은 영악한 계집이다.
은경이의 알맹이만 쏙 빼먹고 자기만 행복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