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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언니 Mar 20. 2024

<골드미스 프롤로그>

어쩔 수 없이 골드미스가 되어가는 그녀의 스토리 - #6


#6
그래도 결혼은 해야지.



생각보다 작성해야 되는 프로필의 내용이 많아서 이 것도 일이다.


만약 은경이 여기서 결혼에 성공한다면 미래의 남편은 이 프로필 사진으로 그녀를 처음 접하게 되는거니까 반드시 본연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담아내야 한다. 과한 포토샵으로 인위적인 느낌말고 그녀의 은은하면서 자연스러운 사랑스러움을 사진에 담아내야 한다.


중요한 일인 만큼 과감하게 전문가의 손길을 빌리고자 프로필 사진만 찍는 전문 스튜디오를 예약하고 단아하고 고급스러운 스타일이 트레이드 마크인 미용실로 메이크업과 드라이를 예약했다. 또 카드 할부를 긁으려니 약간 찔리는 마음도 들지만 결혼에 성공하는 것이 지금 최우선 과제이기 때문에 걱정은 뒤로 미루기로 했다. 숙원하던 결혼의 첫 삽을 뜨니 설레는 기분이 든다.


예약날 아침부터 은경은 부지런을 떨었다. 혹시라도 부어서 섬세한 얼굴 선의 느낌을 담아내지 못할까봐 미용실 예약 3시간 전부터 바쁘게 움직였다. 아침 햇살을 받으며 산책을 하니 뭔가 긍정의 기운이 샘솟는 것 같다. 연예인들이 이래서 촬영날 일찍 일어나서 운동 같은 걸 하나보다. 이대로만 가면 오늘 프로필 촬영은 ‘이은경’이 휘어 잡을 것 같은 확신이 든다.


-


예약 시간보다 20분이나 일찍 도착한 미용실은 사진에서 봤던 것 보다는 작고 낡은 느낌이었다. 사실 결혼이라는 인륜지대사의 과정을 치루는데 최고급 샵을 예약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이 정도에서 만족해야 한다고 은경은 스스로를 다독였다. 오늘은 중요한 날이라 완벽한 감정 콘트롤이 필요하다. 얼굴에 기분이 많이 티나는 은경은 오늘만큼은 긍정적이고 성공한 여자의 바이브를 온종일 끌고 가야 한다고 머리속에 새겨넣었다.


 “너무 잘하신다. 미소도 자연스럽고 표정이 살아있어요. 모델하셔도 되겠어요.”


은경은 뿌듯했다. 사진 작가의 칭찬에 같이 호들갑을 떨며 맞장구를 치고 싶었지만 우아한 모습을 보이며 한 텐션을 낮추고 미소만 지어 보였다. 결혼이라는 성인식을 준비하는 프로필 사진이다. 평소의 은경처럼 밝게 삶을 즐기는 모습도 좋지만 중요한 날인 만큼 진지한 자세로 임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다른 사람들도 알았으면 좋겠다.


중요한 촬영도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갔다는 만족감에 은경은 자기 삶에 제대로 된 주인공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작가가 칭찬을 해서가 아니라 그가 확인을 위해 보여준 컷들 하나 하나가 긍정적이고 꾸밈없는 우아한 여성을 담고 있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은경은 괜찮은 여성이다. 매니저와 상담하며 스스로 나이만 많고 능력 없는 노처녀가 된 것 같은 느낌도 받았지만 오늘을 생각해보면 중요한 일도 잘 완수할 수 있고 외모도 나쁘지 않고 나름 경쟁력이 있다.


비록 회사원으로 살고 있지만 그녀는 배우처럼 감정을 담아내는 일도 잘 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결혼이라는 건 일생의 희노애락을 함께하는 파트너를 찾는 일이니까 감정을 잘 담는다는 것은 일종의 장점이 아닌가. 생각하면 할수록 결혼은 그녀에게 맞는 일이다.  


-


300장 중에 10장의 사진만 골라야 되는데 30장 쯤 추려내니 다 마음에 들어서 최종 프로필 사진을 고르는게 너무 어려웠다.

‘나 진짜 동안이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네.’

확실히 전문가의 손을 타니 필터로 만든 인위적인 사진과 다르게 자연스러움이 묻어났다.


은경 특유의 소소한 고급스러움과 사랑스러움이 묻어나는 사진 3장을 프로필로 낙점했다. 나이, 직업, 좋아하는 것, 이상형… 좋아하는 것과 이상형을 5문장 정도로 축약해서 써내는 것이 보통일은 아니었다. 하루 종일 프로필 작성에만 매달리고 퇴근 후 집에 와서 까지 썻다 지웠다를 반복하여 저녁 8시가 다 되서야 매니저에게 메일을 보냈다.


“은경님, 안녕하세요.”


메일을 보내고 3분도 못 기다린 은경이 매니저에게 전화를 하자 8시라는 시간이 무색하게 매니저는 금방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프로필 다 써서 메일 드렸거든요. 퇴근하셨을텐데 전화드려서 죄송해요. 이제 바로 진행되는건가요?”


“저희가 보내주신 프로필로 매칭 가능한 상대를 알아볼꺼고요. 남성분도 은경님 프로필 받으시고 만남을 승낙하시면 이제 스케줄 잡아서 만나실 수 있게 도와드려요.”


은경은 자신이 상대를 고르면 바로 만남이 진행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상대도 승낙해야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조금 맥이 빠졌다. 본인도 결정사에 가입하고 비용을 결제했지만 남북협상하듯이 찔끔 찔끔 나가는 진도에 ‘결혼은 비즈니스구나’ 하는 것이 다시 한번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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