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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언니 Mar 06. 2024

<골드미스 프롤로그>

어쩔 수 없이 골드미스가 되어가는 그녀의 스토리 - #4


#4
나도 해볼까?!



‘정신 차려라’ 사건 이후 화기애애하던 사무실이 조용해졌다.


은경이는 선을 넘은 죄인이기 때문에 선뜻 나서서 분위기를 풀 수 없는 입장이라 조용히 눈치만 보고 있다. 그러면서도 나은이가 괘씸한 것이 언니의 입장에서는 그녀를 생각해서 헛돈 쓰고 상처받지 않게 해 주려는 건데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며 상담을 다녀왔다.


매니저들의 직업이 나은이 같은 애들한테 동화 속 주인공처럼 결혼할 수 있을 것 같은 환상을 심어주고 돈을 뜯어내는 건데 얼마나 말을 잘하겠는가. 거길 자기 발로 갔으니 아마 나은이는 수백만 원을 뜯겼을 것이다.


문제는 생각보다 나은이가 행복해 보인다는 것이다. 소영 대리와 킥킥대며 남자 이야기를 하는 걸 보니 진짜로 남자를 만나기 시작했나 보다.


재밌어 보인다. 은경이가 회사 말고 다른 곳에서 모르는 남자와 말을 섞어 본 지 얼마나 오래되었나. 이제 곧 있으면 40이다. 신도시에서 가정을 꾸리며 자리 잡아가는 친구들이 생각나 자기만 혼자 뒤처진 느낌이다.


은경이는 오늘따라 퇴근길이 의미 없이 느껴졌다. 항상 총총걸음으로 칼퇴를 하면 이유 없이 즐거웠는데 오늘은 집에 가서 할 것도 없는데 칼퇴를 해서 뭐 하나 싶다. 기다려주는 사람도 없고 드라마를 보는 것 빼고는 딱히 할 일도 없다.


지금은 수도권이 되었지만 은경이는 시골마을 출신이다. 매일 아침 해뜨기 무섭게 일어나 뙤약볕 아래에서 중노동을 하던 엄마는 삶의 피로가 얼굴에 묻어난다.


은경이는 유난히 예민하고 얇은 피부 때문에 해를 오래 볼 수도 없다. 게다가 거친 일에는 맞지 않는 섬세한 성격을 갖고 있어 엄마처럼 시골마을에 사는 것은 옵션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농사가 얼마나 불안정한 수익을 내는지 어려서부터 농사 망친 이야기를 수없이 듣고 자라서 라이프 스타일을 중시하는 그녀는 어떻게든 도시에 살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 낼 것이다.


동네가 개발되면서 부모님도 농토를 팔아 빌라를 세웠고 전보다는 편하게 수익을 얻고 있지만 엄마는 이미 늙어버려서 아무리 꾸며도 빈티 나는 시골 할머니가 되었다. 해외는커녕 국내 여행도 거의 해본 적이 없고 은경이가 좋아하는 명품 이야기는 이름이 어렵다며 듣는 것도 싫어하는 할머니다. 은경이에게 ‘저렇게 살면 안 되겠다’의 표본이 엄마이고 그녀는 불쌍한 여인이다.


하지만 결혼한 엄마의 인생이 불행하다고 하여 은경이까지 안 할 수는 없다. 외동딸이었으면 혹시 모르겠지만 농촌에서 남동생이 있는 누나로 태어난 탓에 물려받을 것이 얼마 없기 때문이다.  늙어서 돈이 없는 것은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비참한 인생이어서 싱글로 미래를 맞을 수는 없다. 은경이도 기댈 수 있는 남자가 필요하다. 생각해 보니 나은이 말고 은경이야 말로 결정사가 필요한 것 같다.


맨날 보는 인스타그램이지만 오늘따라 결정사 광고가 계속 보인다.


‘결혼해. 듀오’


‘그래. 나도 결혼해야지. 언제까지 혼자 살 거야. 이제 같이 놀 친구도 없잖아.’ 은경이 머릿속에 생각이 스쳐 지나가기 무섭게 손가락이 광고를 클릭해 버렸다.


‘당신에게는 어떤 사람이 어울릴까요?’


매니저라는 사람이 끈질기게 전화할 것을 알면서도 어느새 손가락이 핸드폰 번호를 입력하고 있다.


우우웅~


7시 반이 넘어서 최소한 오늘 밤은 안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화가 바로 온다. 이래도 되나 싶어서 진동이 3번 올 때까지 핸드폰만 쳐다보고 있었지만 손이 저절로 통화 버튼을 향해 간다.


‘여보세요?’


사근 사근한 목소리의 매니저는 마치 대학교 때 동경하던 여자선배 같았다. 연애경험을 간단히만 이야기했는데도 공감과 분석이 동시에 나오는 것을 보니 전문가는 전문가였다. 게다가 상담 사무실이 회사에서 걸어서 10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다는 소리를 듣자 마음이 술렁였다. 내친김에 다음날 퇴근 후 매니저와의 상담을 예약하고 전화는 끊으니 벌써 9시다.


‘내가 미쳤나 봐…’


스스로 주책이다 싶어 헛웃음이 나왔지만 순식간에 모르는 사람과 남자 이야기를 하며 1시간이 훌쩍 넘기도록 미주알고주알 자신의 이야기까지 쏟아냈다. 게다가 다음날 만날 약속까지 잡고 보니 회비가 얼마나 하려나 걱정도 되지만 설레는 건 사실이다.


잡다한 생각에 시간이 너무 빨리 흘렀다. 가슴이 두근거려 잠이 올까 모르겠지만 은경이는 내일을 기약하며 얼굴에 붙였던 팩을 떼어내고 자리에 누웠다.


하루가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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