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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명진 Oct 17. 2023

물숨의 약속

      

  할망이 웃었다. 

  웃을 때마다 주름진 얼굴이 일그러졌다. 미소를 보일수록 검게 그을린 눈가가 자꾸 쪼글쪼글 구겨졌다. 친구를 만나러 가야 하는데 머리가 아프다며 주저앉았다. 

  “두통약 ‘뇌선’ 좀 사다줍써.”

  “진료소에서 받아온 약 다 드셨어요?”

  늘, 그녀는 두통약을 넉넉하게 지니고 있길 원했다. 테왁과 망사리가 해녀에게 가장 소중한 물건이듯, 언제부터인지 머리 아플 때 먹는 약은 필수품이 되었다. 

  그녀의 일터인 바다는 언제나 정직했다. 바람이 일면 물살은 거세진다. 하얗게 포말을 만들어내던 파도조차 쉼 없이 제 몸 던지는 일에 익숙했다. 해녀들이 물속에서 숨을 참으며 작업하는 일도 파도가 일궈낸 물보라와 닮았다. 끊임없이 밀려갔다 밀려오는 동작은 그날의 수확량과 비례했다. 매 순간 숨을 참는 일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터득하는 원초적 행위였다. 망사리 가득 채우기 위해 욕심부리면 물숨을 돌리지 못해 사고를 당하고 만다. 그들에게 적당한 양이란 해류로 너울대는 해초 속을 살피다 수압과 물숨까지 견뎌낼 줄 아는 인내심만큼이다. 테왁을 부표 삼아 저승길 드나들며 숨비소리를 만들어내던 해녀들의 일상이 물비린내를 풍긴다.

  그녀들은 최초의 직업여성으로 바다만 믿고 살아왔다. 맞벌이를 하기 위해 남녀 모두 취업을 목표로 공부에 몰두하는 요즘과 비교하면 제주도 상황은 많이 달랐다. 제주도는 논농사도 힘들고, 밭농사도 힘들었다. 예전부터 화산 돌로 가득한 섬에서 가정 경제를 꾸려가기 위해 여성들이 앞장섰다. 그녀들은 바다를 상대로 물질을 해 돈도 벌었다. 고려시대부터 제주 해녀는 남편보다 집안의 가장 역할을 하며 가정경제를 책임져오고 있지 않던가.

  할망의 일상은 어려서부터 제주 바당에서 어머니 일을 도우며 시작되었다. 물질나간 어머니 대신 동생을 업고 바닷가를 서성거리며 짬짬이 소중기를 재단했다. 옆트임을 만들어 여유 있게 늘렸다 줄였다 품 조절도 가능하게 했다. 입고 벗기 편했던 소중기는 물질할 때 꼭 필요한 옷이었다.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배우며 저승에서 돈 벌어 이승에서 쓰게 될 줄 어찌 알았겠는가. 소중기는 전문 해녀복이 없던 시절부터 전

천후 작업복으로 실용성을 갖추었다. 이웃 여자들 모두 소중기를 입고 바다로 뛰어들어 돈을 벌어왔다. 자신도 그들처럼 해야 하는 줄 알고 시작한 물질이었다. 

  일 년 내내 공기통 없이 숨을 참고 10m 이상의 해저로 들어갔다. 일 분 내지는 이 분 여 동안 전복과 뿔소라, 해삼, 미역, 톳 등을 채취했다. 운이 좋으면 하루에 감태 몇 십 킬로그램도 건져올렸다. 가사도 돌보며 틈틈이 맨몸으로 일하던 여자 벌이로는 쏠쏠한 편이었다. 

  무명이나 광목으로 만들어 입던 소중기의 시대는 갔다. 1970년대 고무옷이 나오면서 해녀들은 효과적인 물질을 위해 10㎏ 정도 되는 납덩어리를 등과 허리에 차고 물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물의 저항을 덜 받는 소중기에 비해 고무로 만든 잠수복은 부력이 발생해 물속에서 잠수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빗창 하나 손목에 걸고 시시각각 요동치던 바다에서 바위틈에 끼어 목숨을 잃거나 다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수압에 의한 편두통은 살아가는 내내 고질병이 되었다. 

  속절없는 시간 속에서 할망은 함께 물질하며 이웃으로 지내던 친구의 제삿날도 달력에 표시해놓고 살아왔다.

  “그런데, 해녀들은 왜 산소통 없이 바다에 들어갔어요?”

  질문을 하는 순간, 할망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거 오래된 약속이주. 바당도 살고 우리도 살고.”

  잠수부와 스쿠버다이버들이 활개치는 AI시대에 오로지 오리발과 물안경과 테왁에만 의지해 바다로 뛰어들었다. 수확이 저조할 듯싶은 작업 방식은 해산물의 씨를 말리지 않기 위해 예부터 묵언으로 이어온 약속이었다. 학교에 다니지 못했어도 다음 세대들을 위해 바다를 지켜온 순수한 마음의 표현이었다. 멋진 잠수복과 훌륭한 잠수 장비를 그녀들이 갖출 줄 몰라서가 아니었다. 자신의 숨을 참을 수 있는 시간만큼 건져올리던 작업량이 생태계를 보존하고 내일을 기약하는 행동으로 지켜졌다. 일천 년 세월 동안 가족 생계를 책임지며 가사를 감당해온 저력이 바로 이런 배려심 때문이었을까. 자라나는 후손을 위해 자연환경에 순응하며 살아온 순박함이 울컥 가슴을 때렸다. 

  오랜 세월 그녀들은 할머니의 할머니, 어머니의 어머니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자연 친화적인 방법으로 바다를 사랑한 죄밖에 없다. 날마다 잠수병에 시달리며, 현재를 지키고 아주 먼 미래를 위해 문명의 이기를 무관심하게 참아온 삶이 아름답게 빛나야 하지 않을까. 제주 해녀문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수 있었던 이유도 산소통 없이 물질을 일삼기 때문이다. 더구나 바다 속에서는 단독으로 작업할 수 없었다. 아무리 숨을 오래 참을 수 있어도 공동체 작업이 아니면 해낼 수 없는 일이 물질이었다. 함께 들어가 서로 도와주고 도움을 받아야 빗창도 쓰기 편했고, 위험도 줄일 수 있었다. 

  섬에서 살아가는 여인네들이 억척을 부릴 수밖에 없었던 원인도 간단했다. 육지에서처럼 공산품이나 먹거리 유통이 제주도에서는 원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바다 자원도 자연 기후에 따라 생산량이 일정할 수 없었다. 태풍이나 해일이 오면 바다 속은 뒤집어진다. 요동치던 파도가 잠잠해지면 바다는 온화한 성인의 모습으로 모든 걸 받아들인다. 그때가 되면, 다시 원래 상태의 평정이 해녀들을 유혹했다. 그렇게 당신 살아 있는 내내 바다로 출근하는 직장인이었던 그녀들의 약속은 오늘도 지켜지고 있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잠수병으로 생을 마감한 친구들이 지켜온 물숨의 약속은 할망 추억 속에 그리움만 쌓아놓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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