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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명진 Oct 17. 2023

억새 마음 소리로 울다

         

  한라산을 그렸다. 

  한라산 위로 호수보다 푸른 하늘을 그렸다. 그 위에 하얀 구름으로 나무도 그리고 꽃도 그렸다. 가을바람이 후두둑 시든 이파리를 날려 보낸다. 은빛 억새의 흔들림 속으로 사람들 얼굴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대나무 숲을 지나 억새 사이에서 수십 명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른다. 그들은 맥없이 쓰러지며 울부짖는다. 끊어질 듯 들리는 아우성은 바람 소리를 따라 숲으로 사라졌다. 부드러운 선을 만드는 오름의 능선이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곡예를 한다. ‘잃어버린 마을 영남동’은 한라산을 등에 업고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밀물처럼 내게 다가왔다. 

  벼르고 벼르다 찾아왔다. 산록도로를 지날 때마다 궁금하고 또 궁금했다. 한라산 남쪽의 첫 마을인 영남동. 백록담이 가깝게 보이는 해발 400m의 중산간지대에 이정표 하나로 남아 있는 마을. 그곳은 4·3이란 소용돌이와 함께 사라져가는 제주의 아픈 역사 현장이다. ‘잃어버린 마을’은 어떻게 존재하고 있을까. 제주도에는 4·3사건으로 인해 사라진 마을이 여러 곳 있다. 그 중 영남동은 꼭 가보고 싶고, 들르고 싶은 장소였다.

  ‘잃어버린 마을 영남동’ 이정표를 바라보며 좁은 산길로 방향을 틀었다. 이정표마저 없다면 안쪽에 마을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몰랐을 스산한 입구다. 들어갈수록 우거진 수풀은 판타지 영화에 나오는 배경처럼 두 눈을 자극했다. 주민들이 식수로 사용했던 우물터와 군데군데 부스스 울음소리를 내는 대나무들이 있어 옛 마을 터임을 짐작하게 만든다. 억새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길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갔다. 

  ‘영남동 잃어버린 마을’ 표석이 햇살에 반짝였다. 당시 주민들이 경작했던 농경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삐뚤빼뚤 경계를 만드는 낮은 돌담 사이로 바람이 길을 안내해준다. 저 바람은 어디서 왔다 어디로 가는 걸까. 바람이 들려주는 소리에 귀 기울여 본다. 옛사람들 농사짓던 밭자락이 꿈틀거리며 옷깃을 붙잡는다. 저기 어디쯤 밭주인이 살던 집이 있었겠지. 아마 옆에는 닭장도 쇠막도 있었을 거야. 혼자 또 머릿속에 그림을 마구 그려넣는다.

  1800년대 중반쯤 생겨난 영남리 마을 사람들은 화전을 일궈 조와 메밀과 콩과 감자를 심어 연명하며 살아왔다. 일제강점기에는 50여 호가 있었을 정도로 번성한 마을이었다. 1948년 11월 17일 제주도에 계엄령이 선포된 이후, 중산간지대는 초토화되었고, 주민들은 고난의 시절을 겪어야 했다. 11월 중순께부터 이듬해 2월까지 약 4개월 동안, 진압군은 중산간마을에 불을 지르고 주민들을 집단으로 살상했다. 

  중산간지대에서 해안마을까지 내려간 주민들도 무장대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희생되었다. 남아 있던 주민들은 사태가 금방 끝나리란 생각에 마을 위쪽 어점이악 왕하리와, 내명궤, 땅궤 등에 숨어 있었다. 추운 겨울을 한라산에 숨어 있다 잡히면 사살되거나 형무소로 보내졌다. 토벌대의 초토화작전으로 중산간마을 95% 이상이 방화되었다. 살벌한 토벌로 인해 마을 자체가 없어져버린 ‘잃어버린 마을’이 수십여 곳 생겨났다. 하지만 그곳의 하늘과 구름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그 모습 그대로 버티고 있지 않던가.

  그 당시 영남리로 불렸던 이 마을도 4·3사건은 피할 수 없었다. 주민 90여 명 중 피신하지 못한 50여 명이 희생되는 불운을 겪어야 했다. 평화롭게 보이던 산속 마을이 누군가에게는 잊고 싶고, 생각하기 싫은, 불행의 장소가 되었다. 그곳은 몸서리치며 외면하고 싶은 공간으로 변해버렸다. 살아남았던 사람들조차 악몽에 시달리다 마을을 떠났다. 그들에게 영남동은 다시 돌아오고 싶지 않은, 잊고 싶은 고향 동네가 되지 않았을까. 댐 공사로 수몰된 탓에 고향이 있어도 돌아가지 못하고, 실향민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제주도에는 들춰내고 싶지 않은 상처로 인해 고향을 등지고 떠난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고향에 가기 싫은 이들의 마음 숲에는 항상 억새가 부르르 몸을 떨며 울고 있을 터다. 주위를 빙 둘러본다. 화전갈이 흔적이 뚜렷한 계단식 밭을 바라볼수록 환영이 어른거렸다. 묵묵히 괭이질하던 동네 삼촌이 금빛 햇살 사이로 손을 흔드는 듯하다. 저만치에서 광주리를 이고 오는 아낙네의 감물들인 바지자락이 어른거린다. 무너진 돌담 사이로 아이들 웃음소리가 메아리 돈다. 칭얼거리던 아기는 누나 등에서 잠이 들었을까.

  4·3사건으로 인해 제주지역공동체는 파괴되고 엄청난 정신적, 물적 피해를 입었다. 가슴 깊이 상처로 남아 있는 참혹했던 인명피해 현장은 사라지지 않은 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행여 말 한마디 잘못하면 부모형제 혹은 친척, 아니면 지인들이 다칠까 두려워 생존자들은 오늘도 입을 열어 증언할 생각도 못하고 떨며 지낸다. 누가 그들을 위로해줄 수 있을까. 동굴에 갇혀 있거나 산속을 헤매며, 자신들의 고초가 무엇 때문인지도 몰랐을 순박한 사람들 표정이 시나브로 흔들리는 억새를 닮았다. 

  사람이 살기 힘든 동굴로 몸을 피한 후, 견뎌야 했을 공포감과 배고픔도 허락해주지 않았던 토벌대의 행동을 누가 징벌할 수 있을까. 동굴 속에 피신해 있는 선량한 주민들에게 토벌대가 총을 쐈을 때였다. 한 명도 나오지 않자 나무에 불을 붙여 연기로 질식시킨 뒤 한 사람씩 끌어내 모두 총살해버렸다. 이렇듯 기록으로 남아 들려오는 이야기마다 가슴 아프게 명치를 때린다.

  걸음을 옮길수록 마을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던 왕돌빌레에 세워진 잃어버린 마을 표석이 자꾸 눈시울을 붉게 만든다.

  “옛 우물터를 찾아 시원한 물 한 모금 마시며 영남마을 주민들의 아팠던 삶을 다시 한번 되새겨보라. 이곳에 밝은 햇살이 영원히 머물기 바라며 이 표석을 세운다.”

  입구를 찾아나오는 내내 잃어버린 마을 하나가 내 심장에 박혀 제주의 또 다른 모습으로 저장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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