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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명진 Oct 17. 2023

제주 할망 손으로 깁다

     

  보따리를 풀었다. 우수수 알록달록 천 조각이 쏟아진다. 크기와 모양과 천의 색깔이 각양각색인 앞치마가 눈앞에 펼쳐진다. 손으로 한 땀 한 땀 바느질한 귀한 물건이다. 천연염색으로 물들인 조각천을 이어 만든 앞치마에서 바느질 선이 삐뚤빼뚤 휘청거리고 있다. 유명한 디자이너 솜씨가 아니어도 자투리천으로 완성된 앞치마는 남달라보인다. 한 장 한 장 펼쳐볼수록 값을 따질 수 없는 그녀의 하루가 고스란히 전해져 콧등이 시려왔다.

  보통의 할망들이 그러하듯, 그녀는 작은 키에 구부정한 허리로 동네를 종횡무진 돌아다녔다. 밭에 나가거나, 바다에 나가거나, 마트에 가거나, 노인정에 갈 때도 잠시를 가만있지 못했다. 예부터 부지런한 사람 손끝에 물마를 날 없다고 했던가. 옆집 할망은 동네 일거리만 보면 참지 못하고 해치워야 속이 시원한, 지칠 줄 모르는 불사조 같았다. 세월이 흐를수록 바다를 믿고 살아야 하는 섬 생활에서 그녀가 의지해야 할 일은 평생 바느질밖에 없었을지 모른다. 

  항상 옆구리에 바느질 도구를 끼고 다니는 할망에게 마을 사람들은 장난처럼 한마디씩 했다.

  “할망! 내 것도 해 줍써.”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녀의 얼굴은 환한 웃음을 만들어냈다. 길에서 할망을 만나거나, 그녀의 집 앞을 지나다 눈이라도 마주칠 때면 어김없이 한마디 인사를 듣게 된다.

  “나 그거 하나 꼭 맹글이 주켜.”

  처음에는 그 말이 당황스러웠지만 그녀의 사연을 듣고부터 덩달아 꾸벅 고개를 숙였다. 할망 손으로 얼마나 많은 앞치마가 만들어져 이웃에게 건네졌을까. 우리 동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할망 솜씨를 좋아했다. 일류 의상 디자이너가 아니라도 그녀의 앞치마는 한껏 돋보였다. 한 가지 색상이나 온전한 천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앞치마는 제주 어머니들의 강인한 삶을 그대로 전해주고도 남았다. 

  신천리에 터를 잡은 후, 할망과 부딪치는 일이 자주 생겼다. 바로 옆집인 탓도 있었지만, 하루 중 대부분을 밖거리 평상에 앉아 소일하는 할망의 일과 덕도 있었다. 날마다 꽃잎 떨어지는 나무 사이로 작은 덩치의 할망이 보였다. 눈이 마주칠 때면 언제나 손짓으로 나를 불러세웠다. 눈이 어두워바늘귀가 보이지 않아 실을 끼울 수 없다고 도움을 청하기 일쑤였다. 할망 무릎에는 무수히 많은 조각천이 널브러져 있었다. 귀퉁이에 밀쳐져 있는 낡은 재봉틀도 손때가 묻어 반들거렸다. 방 한쪽 벽면에는 오색실이 꿰어진 수십 개의 바늘이 넓은 판에 꽂혀 있다. 색색의 실 중 당신 마음에 드는 바늘을 찾기 어려우면 할망은 불안한 듯 보였다.

  “따님 안 계셔요?”

  내 물음엔 대답도 않고 그저 바늘만 챙겼다. 남편을 잃고 혼자 물질하며 살아가는 딸과 살고 계신 할망은 바다를 몹시 싫어했다. 바닷가 마을에서 대부분의 아낙들은 물질을 일삼으며 살아갔다. 삶이 평범해보이던 제주였다. 할망은 젊은 시절 남편을 바다에서 잃었다. 그녀가 선택한 제주살이는 바다를 의지하기보다 천에 물들이고 삯바느질해주며 자식을 키우는 일이었다. 남자가 귀하던 제주에서 밭일 집안일 모두 여자들 차지였다. 새벽에 입었던 앞치마는 한밤중이 되어서야 풀 수 있었다.

  “어머니는 예쁜 치매에 걸리셨어요.”

  얼마 전 불혹을 훌쩍 넘긴 할망 딸은 하루에도 몇 번씩 할머니의 바늘귀를 꿰어주는 내게 푸념 아닌 넋두리를 쏟아냈다. 잠도 주무시지 않고 앞치마만 만들던 그녀에게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 딸의 얼굴을 깜박깜박하는 일은 다반사가 되었다. 손주손녀 얼굴도 이름도 잊어버렸다. 하지만 바다에 묻힌 남편 얼굴과 이름은 또렷하게 기억했다. 

  벽에 걸린 아버지의 사진과 이야기 나누는 엄마를 발견하고 놀란 딸은 병원을 찾아갔다. 자식조차 ‘예쁜 치매’라고 말하던 할망의 증세는 바느질거리만 잡으면 꼼짝 않고 앉아 시간을 보냈다. 바느질에 집중하느라 밖에 나가는 일도, 길 잃을 일도, 주방에서 사고칠 일도 없었다. 그런 엄마에게 딸은 볼 일이 있거나 물질을 나갈 때면 바느질감을 잔뜩 안겨주고 나간다고 했다. 할망은 딸이 들어올 때까지 힘든 줄 모른 채 앞치마만 만들었다. 눈이 침침해 보이지 않아도, 귀가 어두워 들리지 않아도, 손가락이 닳아 있어도, 앞치마 만드는 일에 싫증을 내지 않았다.

  왜 하필 앞치마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집착하는 걸까. 할망의 앞치마에는 알록달록 감물이 들어 있거나, 새와 나비가 날아다니거나, 쪽빛 바탕에 꽃이 피어 있거나, 바람에 나무가 흔들려 잎이 떨어지고 있다. 홀로 살아온 할망에게 바느질은 때때로 상실감과 외로움을 치유하는 벗이 되었을 게다. 할망은 삯바느질과 염색을 할 때마다 세상살이에서 생겨난 아픔을 씻어내려 했을지도 모른다. 자연친화적인 천연 재료를 만들면서 그 동안 부딪쳤던 사연들을 고운 색깔로 풀어내지는 않았을까. 한 땀 한 땀 주머니를 만들고, 가슴선을 파며 나무도 세우고, 꽃밭도 만들고, 우짖는 새도 빚어내며 더딘 시간에 추억까지 보태느라 전전긍긍했으리라. 희로애락의 순간을 밟아가는 자신에게 희망의 문까지 열어두려고 밤잠 설친 날이 얼마나 많았을까.

  바람 부는 날도, 비가 오는 날도, 눈이 내리는 날도, 햇살 눈부시게 화창한 날도, 실과 바늘과 조각천만 있으면 행복하려나. 내게 선물해준 앞치마가 할망 정신이 맑은 시절 아름다운 기억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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