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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명진 Oct 17. 2023

사랑이라 더 애잔하다

       

  싹쓸바람이 분다.

  세찬 풍속으로 인해 마음도 몸도 성글게 구멍이 뚫렸다. 휘익휘익 몰려다니는 힘빠진 나뭇잎과 모래먼지가 얼굴을 때렸다. 플라스틱 병 속에서 피어오르던 촛불의 흔들림이 휘청휘청 위태롭다. 주변을 에워싼 억새들도 쉭쉭 울음 소리를 냈다. 하늘에 떠도는 구름조차 흩어졌다 모였다 숨바꼭질을 했다. 삽질을 하는 그의 손끝도 파르르 떨렸다. 

  여명이 채 뜨기 전이었다. 어둠이 벗겨지지 않은 1월의 공기는 매섭고 차가웠다. 섬뜩한 기운에 번쩍 눈을 뜨고 밖으로 달려나왔다. 더럭 겁이 났다. 철수가 보이질 않았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다. 급하게 자동차에 시동을 걸었다. 녀석이 늘 놀던 집 주변과 바닷가를 둘러봤다. 그림자조차 곁을 내주지 않는 해안가를 두리번거렸다. 성치 않은 몸으로

어디 갔을까. 자꾸 불길한 예감이 뒤꼭지를 붙잡았다. 

  녀석은 뒷마당과 옆집의 경계인 돌담 모서리 틈새에 끼어 널브러져 있었다. 

  “철수야!”

  흔들어봤지만 흰 털의 몽실함만 차갑게 손바닥에 잡혔다. 그래도 몸이 굳지 않았으니 응급처치를 서둘렀다. 우왕좌왕 두서없는 나를 그가 막았다.

  “그냥 보내줘요.”

  순간, 눈물이 쏟아지며 두어 해 동안 있었던 사건들 하나하나가 시나브로 겹쳐졌다. 2년 전 11월에 철수는 떠돌이 신세로 우리 집에 머물게 되었다. 녀석의 의젓한 기품은 훈련받은 명견의 모습과 흡사했다. 백방으로 수소문을 해봤으나 주인 찾는 일은 실패였다. 어쩌다 주인과 헤어져 집을 잃고 거리를 방황하는 신세가 되었을까.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영리하고 순해보이는 눈동자와 마주칠 때마다 정이 깊어졌다. 녀석은 더부살이 신세인 줄 알아채고 언제나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실내에서 키우던 우리 강아지 물건에는 코도 들이대질 않았다. 밥을 먹을 때도 순서를 기다렸다. 잠을 잘 때도 현관 앞 모서리에서 웅크리고 잤다. 집 안에 있는 강아지와 자신은 스스로 다름을 인정하는 듯싶어 안타까웠다. 

  철수는 오후만 되면 언제나 긴 하울링을 했다. 한라산 쪽과 하늘을 바라보며 울 때면 내 가슴도 두근두근 무너져내렸다. 분명 주인을 그리워하거나 자신의 가족을 찾으려 애쓰는 몸부림일 터였다. 언제 태어났는지 나이가 몇 살인지 모르지만 그동안 살아온 녀석의 삶이 늠름한 자태에 배어나왔다. 분명 사랑받고 살아오지 않았을까. 주인의 보호 속에 살아오던 개들은 낯선 환경에 버려지면 들개가 되기 일쑤다. 살기 위해 적응해나가야 하는 그들은 먹이를 구하기 위해 사나워지거나 초라해진다. 

  철수는 얼마나 떠돌이생활을 했을까.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줄 때면 고개를 푹 숙이고 꼬리를 흔든다. 그 모습을 볼수록 사랑을 나누어줄 수밖에 없었다. 함께 동거를 시작한 후, 철수는 방문하는 손님들께 나날이 인기를 얻어갔다. 손님들이 산책을 나설 때면 앞서서 바닷가까지 길 안내를 해주었다. 주변에 개들이 나타나면 물리쳐주기까지 했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올 때쯤이면 어디서 달려와 집까지 안내해줬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철수는 카페에 방문하는 손님과 지나가는 사람을 구분할 줄 알았다. 누구에게는 꼬리를 흔들며 바라보기만 하고, 누구에게는 짖어대며 집을 지켰다.    일 년이 흘렀을 어느 날, 철수는 떠돌이 여자 친구와 사랑을 시작했다. 녀석의 순애보는 주변 사람들 모두를 감동시켰다. 새록새록 정이 깊어갈 즈음 철수의 몸에서 이상징후가 발견되었다. 그 무렵 강아지 세 마리도 태어났다. 주인을 잃고 떠돌았던 기억 때문인지 철수의 아내 사랑과 자식 사랑은 남달랐다. 가족을 지킬 수 있고, 집이 있다는 사실은 녀석에게 최고의 행복이었을지 모른다. 안식처에 대한 뿌듯함은 훌륭한 가장의 도리를 지키게 했다. 병원을 방문했을 때, 철수의 몸속에는 심장사상충이 퍼져 있었다. 미처 예방접종을 해주지 못한 내 불찰이란 자책감으로 인해 시간이 흐를수록 괴로웠다. 처방받고 약을 먹이고 주사를 맞혔지만 철수는 합병증에 시달려야 했다.

  영주산 뒤쪽에서는 한라산이 가깝게 보였다. 넓게 펼쳐진 억새밭은 바람을 피할 수 있어 따뜻할 듯싶었다. 둥글고 도톰하게 쌓은 돌담은 다른 천적들로부터 시신을 지켜줄 터다. 영주산을 등 뒤로 찰랑찰랑 고여 있는 저수지 물은 철수를 목마르지 않게 만들어줄 듯 보였다. 삶은 하늘에 구름이 일어나는 일과 같고, 죽음은 하늘에 구름이 사라지는 일과 같다고 했던가. 허망하게 떠난 철수의 삶이 죄지은 일 없고, 최선을 다해 가족도 지켰으니 다음 생에서는 좀 더 건강하고 멋진 사람으로 태어나리라. 

  그동안 이웃들은 떠돌이개가 주인을 잘 만나 복이 터졌다고 했다. 하지만 녀석은 우리 가족에게 웃음과 사랑과 정을 더 많이 알게 해주고 떠났다. 이승에서 마무리 못한 인연은 저승에서 나누고, 미련 없이 먼 길 떠나다 뒤돌아보고 손 흔들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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