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들 '무지개가 떴다'를 쓰게 한 결정적인 계기는 무지개의 2023 송년회였다. 송년회는 그 전 주 첫 정기 총회를 거치며 구성된 임원진들이 영혼을 갈아 넣어 촘촘하게 준비했다. 여러 가지의 순서 중 '감사 편지 낭독' 시간은 은혜의 아이디어였는데 회원들에게 축구를 하며 느끼게 된 소감을 취합해서 낭독하는 형식으로 읽어보자고 했던 시간이었다. 패들렛을 만들어 링크로 들어가 각자의 이야기를 남길 수 있도록 했다. 그렇게 우리 회원들의 생각과 소감을 읽으며 받은 감동과 눈물이 핑 돌도록 내 마음을 가득 채운 울림은 2022년 7월 얼떨결에 시작된 이후 무지개에서 함께한 나의 축구 연대기가 펼쳐지게 했다. 그리하여 이렇게 무려 20편의 글을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15명의 회원들이 3월 10일 창단식을 함께 하며 매주 2회씩 만나왔던 우리 무지개는 25명의 회원이 모인 축구단이 되었다. 7명이 모여 '공놀이'를 할 때부터 지금까지, 3월에 감독님이 처음 오시고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참 많은 성장을 했고 많은 경험을 했고 많이 끈끈해졌다. 새로 구성된 회장님 이하 무지개WFC 1기 임원진들은 이런 마음을 송년회를 통해 보답하고 기념하고 싶었기에 촘촘하게 송년회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즐축대결
우리는 명색이 축구단인 만큼 축구의 능력을 겨뤄보는 이벤트도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이름하야 '즐축대결(즐거운 축구 대결)'. 체력 대결(셔틀런), 리프팅 대결, 드리블 대결의 세 가지 종목으로 구성된 이번 대결은 감독님께서 주도하여 진행해 주셨다. 하. 우리 감독님, 표정이 어찌나 밝던지. 지금껏 그렇게 깊은 보조개를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시더라. 3월에 훈련을 시작한 이후로 오늘이 제일 행복하다고도 하셨다. 하하하. 역시 행복함을 숨길수가 없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제일 먼저 셔틀런의 시간이다. 15m의 간격을 신호에 맞춰 왕복하는데 신호가 점점 짧아진다. 감독님은 이걸 위해서 스피커까지 가져오셨다. 하.. 얼마나 즐겁게 준비하셨을까.ㅎㅎ 아무튼 시작 신호가 울리고 처음엔 그럭저럭 할만했다. 시간 간격이 길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점점 짧아져 속도를 내야 하니 회원님들이 점점 멈추기 시작했다. 정말 힘들었다. 나는 셔틀런을 처음 해봤는데 89회로 7위를 기록했다. 1위는 역시 우리의 서주장. 은혜는 118개를 기록했다. 범접할 수 없는 주장의 체력에 다들 역시 주장이라며 엄지를 척척 보냈다.
다음 대결 종목은 리프팅 대결! 내 축구 열정을 불러일으킨 첫 번째 계기가 바로 리프팅 연습이었던 터라 그래도 우리 축구단 안에서 순위 안에 들 정도는 되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며 대결에 임했다. 대결은 땅에 한 번 튀기고 리프팅하는 방식이었다. 앗. 아쉽다. 연속으로 하는 거면 나 잘할 수 있는데. 나는 46개 리프팅을 성공해서 5위로 순위에 올랐다. 1위는? 역시 서은혜. 그녀는 리프팅 110개를 기록했다! 뭐야! 왜 이렇게 잘하는 거야! 나는 집중력이 짧다는 것을 깨달았다. 흑.
마지막 대결은 드리블 대결이었다. 드리블 연습도 틈틈이 많이 연습했는데, 그래서인지 잘할 거 같다는 근자감 발동! 화이팅 해보자 다짐했다. 콘과 콘 사이를 드리블로 통과하되 콘을 쓰러트리면 2초가 추가되었고, 마지막 콘까지 가면 다시 돌아와 공이나 몸이 먼저 결승선 안으로 들어오는 시간 기록을 재기로 했다. 콘 사이를 빠르게 통과하고 마지막 달리기도 빨라야 한 데다 콘을 넘어뜨리면 시간이 추가되었기 때문에 다들 긴장한 듯 조용했다. 두 번의 기회가 주어졌는데 나는 처음 했던 기록이 더 좋았다. 19.43초. 1차전 1위를 기록했다. 오, 나도 드디어 1등인가! 기대했지만 2차전에서 우리 은혜가 17.96을 기록해 내 1위를 가져가버렸다. 짧았던 기쁨이었다. 아쉬웠지만 은혜 너무 멋져!
그리고 이어졌던 미니경기에서는 0:0 무승부로 경기를 마쳤는데 평소 승부차기를 시켜주지 않았던 감독님이었지만 대결의 날이라 그랬는지 승부차기를 하라고 하셨다. 와우! 우리의 첫 승부차기네. 나는 나의 역할을 골로 잘 수행했고, 이 승부차기는 즐축대결 동점자의 순위를 매기는 데에 결과가 사용되었다.
역시 주장답게 모든 종목 1위를 석권하여 전체 1위를 기록한 은혜의 뒤를 이어 7위, 5위, 2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운 좋게 전체 2위를 내가 기록했다. 운동으로 메긴 순위에서 2위를 하다니 이건 정말 난생처음 있는 일이었다. 학창 시절 체육시간을 좋아하긴 했지만 몇몇 잘했던 종목을 빼면 그럭저럭이었는데 2위라니. 이 날은 나를 많이 칭찬했다. 우리는 분기별로 즐축대결을 이어가기로 했다. 다른 회원과의 경쟁보다는 내가 세웠던 기록을 넘어서자는 의미로. 그렇게 다음 즐축대결까지 열심히 훈련해야 할 명분을 또 하나 만들었다.
1위 은혜, 2위 나, 3위 산하 송년회에서 시상했다.
임원진 회의는 밤이 깊도록
임원진에서 야심 차게 준비한 코너는 회원들 모두가 의미 있는 상을 받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기획한 '일곱 빛깔 시상식'이다. 이렇게 모인 우리 25명이 얼마나 소중한가. 한 명 한 명을 떠올리면서 회원에게 딱 맞는 특별한 상을 만들었다. 예를 들면 회장님은 '들장미소녀 캔디 상', 목소리가 커서 너무 잘 들리는 수정이는 '네 목소리만 들려 상', 구단주님은 '고마워요 항 상', 감독님은 '극한 직업 상' 이런 식으로 딱 어울리는 상을 만들기 위해 밤이 깊도록 회의를 했다.
송년회 준비는 각자 역할을 분담해서 진행했다. 장소를 섭외하고 첫 송년회를 빛내줄 지역 어른들을 초대하기 위해 내빈 명단을 구성하고 연락하고 음식을 맞추고 이벤트 상품을 준비하고 1년간의 활동 내용을 정리하고 회원들에게 공지하는 등 챙길 게 아주 많았다. 지금껏 그래왔듯 각자 할 수 있는 것을 챙겼고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준비 과정이었다.
드디어 그날
드디어 송년회 날이다. 11월부터 준비한 송년회를 하는 날 또 아침부터 들떴다. 빨리 퇴근하고 송년회가 시작돼서 같이 즐기고 놀고 싶었다. 우리의 송년회는 면소재지에서 밥집을 운영하고 있는 효운언니네 식당을 통째로 빌려 진행했다. 자리의 제공뿐만 아니라 효운언니의 어머니께서 음식까지 너무 맛있게 준비해 주셔서 우리는 아무 걱정 없이 너무 맛있는 음식들을 먹으며 술을 마시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엄청난 송년회였다.
그 전 주에 있었던 첫 정기 총회에서 나는 수석부회장으로 지명되었다. 내향형 인간으로 지내는 게 나는 좋은데 역시나 축구와 관련된 일에서는 파워 E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또 경험하는 날이었다. 이번 송년회의 사회도 맡아 진행하게 되었는데 식순을 구성하고 내빈의 소개 순서를 정하고 소감을 말하는 타이밍 등을 보다 즐겁고 집중도 있게 진행하기 위해 노력해 보았다. 다행히 그게 또 잘 됐던 것 같다. 마이크 잡는 게 부끄럽기도 하고 부담스러워서 나에겐 참 쉽지 않은 일인데 그래도 즐겁고 좋은 날이라 그런지 참석하신 분들도 잘 집중해 주셨고 호응도 많이 해주셔서 감사한 시간이었다.
임원진들이 최선을 다해 처음부터 끝까지 준비한 만큼 즐거운 시간이 이어졌다. 이 시간이 오기까지 애쓰신 구단주님과 회장님, 올 한 해 우리를 맡아 고민이 많으셨던 감독님의 인사말씀도 듣고 내빈 분들의 응원의 말씀도 들었다. 출석왕, 즐축대결상(1~3위), 감독님이 직접 뽑은 무지개 MVP상(역시 골키퍼로 맹활약한 택순언니), 무지개 상표권상(무지개WFC이름을 지은 내가 받았다) 등 '2023 무지개 어워드'를 통해 우리가 열심히 해온 지난 시간을 응원했다.
'고마워요 항 상'의 주인공 김선복 구단주님, 출석왕을 기록한 나, 은혜, 수정이
나의 열심이 보이는 상장들
임원진의 엄청난 고민의 결과물인 '일곱 빛깔 시상식'에서 회원님들이 의미 있는 상을 받고 소감을 말하고 건배사를 하는 동안 우리는 그동안 못 나눴던 이야기도 나누고 술과 밥도 같이 먹고 마시면서 깊어가는 송년회를 아쉬워했다.(사진을 올리고 싶은데, 얼굴들이 점점 달아오르는 관계로 올릴 수가 없다. 하하;;;)
아쉬우니까 필요한 건 뭐다? 바로 노래방! 구단주님께서는 평소 색소폰을 연습하셔서 집에 노래방기계를 가지고 계셨다! 그 크고 무거운 엠프와 노래방기계를 손수 옮겨주고 세팅해 주셔서 행사를 원활히 진행함은 물론 밤이 새도록 이어진 노래와 춤의 향연으로 정말 즐겁게 놀았다. 축구가 아니어도 이렇게 재미있게 놀 수 있는 우리다. 다가오는 2024년에도 올해처럼 축구라는 주제 안에서 즐겁고 행복한 일이 많이 생기길 함께 바랐던 시간이었다.
조력자 편에서 잠깐 언급했던 산하의 감사 편지 낭독 시간을 따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아래는 우리의 마음을 다 읽은 듯 편지를 직접 손으로 써온 그녀의 편지이다. 우리는 편지 내용을 들으며 눈시울이 붉어지고 감동받고 서로의 의미에 대해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꿈
지금까지의 이야기 중 축구를 하며 생긴 나의 꿈에 대해서 종종 언급을 하곤 했는데, 나의 최종 꿈은 60대까지 건강하게 축구하기이다. 이왕이면 같은 나이대 축구인들 중 제일 잘하고 싶기도 하다. 우리 축구단 안에서 에이스도 되고 싶다. 가장 두려운 것은 부상 때문에 축구를 못 하게 되는 것이다. 부상은 사전에 방지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평소 스트레칭을 꼬박꼬박 빼놓지 않고 워밍업이나 마무리 훈련도 잊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경기를 할 때에는 너무 심하게 과열되지 않도록 여유를 갖고 집중력을 높여 다치지 말아야겠다. 경기를 하다가 다치게 되면 심한 부상으로 이어지게 되어 상당 기간 진짜 고생하게 되기 때문이다. 상상만 해도 너무 싫다. 건강하고 즐거운 축구 인생 60까지 가자!
'무지개가 떴다' 마지막 편을 마치며 우리의 꿈도 생각해 본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일주일에 두 번씩 훈련을 꼬박꼬박 나오며 춥건 덥건 비 오건 바람이 불건 상관없이 공을 차는 걸까? 다들 축구라는 존재가 생활의 활력소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모쪼록 지금 함께 공차는 우리들이 축구라는 생활의 활력소를 놓지 않고 축구 안에서 서로의 행복을 찾으며 마음껏 즐기고 오래오래 같이 축구할 수 있으면 좋겠다. 같은 취미를 가진 평범한 여성들이 만들어가는 드라마틱한 이야기들을 오색 찬란한 무지개 색깔로 그려나가길 바라본다.
우리 무지개WFC는 꿔야 할 원대한 꿈이 있다. 그건 바로 양평군 여성축구 1위! 23년 12월, 양평군 여성풋살 친선대회에 두 팀으로 출전해 2위와 3위를 기록했던 바 있지만 우리는 원팀으로 풀코트, 아니면 최소한 하프코트로 하게 될 경기에서 양평군 1위를 목표로 하고 있다. 벌써 3년 차를 맞이하고 있는 우리, 올 해는 큰 일 한번 벌일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엄청난 겨울을 보내고 있으니깐!
아무리 추워도 축구는 절대 못참아!
<무지개가 떴다>를 마치며
어느 날 번뜩 떠오른, 얼떨결에 축구를 시작한 나의 이야기로 20편의 글을 쓰다니. 이번 <무지개가 떴다>는 여성축구 입문기이다. 다음번에 다시 만날 '여성축구 성장기'에서는 훨씬 성장한 회원 개개인의 역량과 수준 높은 팀플레이, 대회 출전의 이야기와 축구에 막 입문한 여성들을 위한 훈련 가이드까지 제시할 것을 약속하며 이만 연재를 마친다. <무지개가 떴다>라는 제목은 박태환감독님께서 지어주셨는데 바쁜 일정에도 내용을 감수해 달라는 요청에 언제든 함께 해주시고 같이 고민해 주셨다. 그 덕분에 20편의 글이 잘 정리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항상 감사한 우리 감독님, 오늘도 감사합니다. 아무 걱정 없이 축구만 즐길 수 있게 한없이 내어주시고 항상 애써주시는 이기술 회장님과 김선복 구단주님, 좋은 훈련을 진행하기 위해 매 번 고민이 깊은 은혜 감독과 영진 코치, 무지개를 잘 가꿔나가기 위해 각자의 노력을 하는 임원진, 항상 같이 땀 뻘뻘 흘려가며 진지하게 하지만 즐겁게 훈련하는 우리 회원님들께 무한 감사를 드린다. 우리 회원님들이 흔쾌히 본인의 이야기를 싣는 것과 사진 사용에 동의해 주셔서 보다 밀도 있는 글을 완성할 수 있었다. 스르륵 써 내려간 짤막한 글들을 재미있게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리며, 마지막으로 외쳐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