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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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약인가, 시간은 약인가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이들에게 위로가 되어왔다. 가슴을 후벼 파는 슬픔도, 가슴이 내려앉을 만큼의 좌절도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진다. 견디기 어려운 순간 속에서도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혹은 누군가에게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라고 말하며 위로한다. 그러나 과연 시간은 정말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까?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어떤 상처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다. 오래된 상처는 기억 저편으로 묻히기도 하지만, 문득문득 떠올라 다시금 아픔을 되살린다. 누군가를 잃은 슬픔, 깊이 새겨진 배신의 흔적, 가슴을 찢는 후회는 시간이 흘러도 그저 ‘익숙해질’ 뿐,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시간은 해결사가 아니다. 시간이 약이 되는 것은 그 시간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상처를 돌볼 수도, 외면할 수도 있다. 상처를 들여다보고 이해하며 극복하려는 노력이 있을 때, 시간은 비로소 약이 된다. 하지만 아무런 변화 없이 그저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린다면, 시간은 해결책이 아니라 공허한 흐름일 뿐이다.
또한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때로는 상처받은 사람에게 쉽게 던지는 위로가 될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라는 말 한마디가 진정한 공감 없이 건네질 때, 그 말은 오히려 상대를 더 외롭게 만들 수도 있다. 어떤 아픔은 시간만으로는 치유되지 않으며, 함께하는 손길과 진심 어린 공감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시간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 시간에 모든 것을 맡기기보다는, 그 시간을 살아가는 태도를 고민해야 한다. 변화하려는 의지, 스스로를 돌아보는 성찰, 그리고 다른 이들과 함께하는 온기가 있을 때, 비로소 시간은 우리에게 약이 될 수 있다. 시간이 약이 되는 것은 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우리 삶 속에서 우리가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