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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봉산 아래에서 ㅡ 정용애 작가

김왕식

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Mar 06. 2025








                       오봉산 아래에서



                                    정용애



시골로 들어온 지 어느덧 삼 년. 그동안의 세월이 하룻밤 꿈처럼 흘러가 버렸다. 어느 날 문득 뒤돌아보니, 계절은 벌써 세 바퀴나 돌아가 있었다. 봄이면 산수유 꽃이 노랗게 피어 마을을 밝혔고, 여름이면 논둑에 앉아 귀뚜라미 노래를 들었다. 가을이면 붉게 물든 단풍을 따라 걸었고, 겨울이면 나뭇가지 사이로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차 한 잔을 마셨다.

아, 그런데 왜일까. 이렇게 자연과 더불어 살며 하루하루가 감사로 가득했는데, 이상하게도 마음 한편이 허전해졌다. 무엇이 채워지지 않은 걸까.

"어이구, 이따금 시상에…."

어느 늦가을 저녁, 텃밭에 앉아 해를 바라보던 그가 나지막이 탄식을 흘렸다. 해는 산 너머로 빠르게 가라앉고 있었다. 손을 뻗어 붙잡아 보고 싶을 만큼 하루가, 아니, 일 년이 빠르게 흘러갔다.

"아따, 왜 이리 시간이 훌쩍 가불었대야…"

그는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산허리를 감도는 노을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사계절이 흐르는 동안, 산의 나무들은 계절 따라 아름다운 옷을 갈아입었다. 봄이면 연초록 새순을 틔웠고, 여름이면 짙푸른 잎으로 산을 뒤덮었다. 가을이 되면 황금빛 옷으로 갈아입었고, 겨울이면 그 마저도 벗어버리고 앙상한 가지로 하늘을 향해 섰다.

텃밭에서는 봄마다 부추가 파릇파릇 돋았고, 오이 덩굴이 울타리를 넘나들었다. 토마토는 붉게 익어 달콤한 향을 풍겼고, 감자는 흙 속에서 토실토실 알을 키웠다. 밥상 위엔 늘 자연이 주는 선물이 가득했다.

그런데 무엇보다 신기했던 건 계란 부화였다.

"아따, 이거 기냥 사다 놓은 계란이 아니여?"

"그렇지라. 근디 이거를 부화기에 넣어 보믄…"

며칠이 지나자 계란 껍질이 사르르 갈라지더니, 노란 솜뭉치 같은 병아리들이 삐약삐약 소리를 내며 세상으로 나왔다. 그렇게 작은 생명이 탄생하는 순간을 지켜보는 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었다.

하지만, 그 녀석들이 자라면서 텃밭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어매! 저 것들 좀 보소! 상추밭을 죄 다 헤집어놨는디야!"

그는 병아리들이 뛰어다니며 텃밭을 엉망으로 만드는 걸 보면서도 마냥 웃고 있었다. 어찌나 예쁘고 사랑스러운지.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즐거웠고, 행복했다. 자연과 함께하는 생활이 그를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그 행복이 오래갈 줄 알았건만, 요즘 들어 마음이 묘하게 허전했다.

"이렇게 살면 되는 줄 알았는디…"

전원생활은 풍요롭고 평온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다. 사람은 자연 속에서 홀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었다. 함께 나누고, 함께 웃으며 살아갈 때 기쁨이 더 깊어지는 것이었다.

"사는 날 동안 남을 위해 배려하며 살 때 그 기쁨이 더욱 풍성해지지 않을까…"

그는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오봉산 아래는 아침 해가 늦게 뜨고, 저녁 해는 빨리 사라졌다. 그래서 늘 하루가 짧았다. 어느 날 저녁, 그는 산 아래를 거닐다가 멀리서 종소리를 들었다.

뎅… 뎅…

군부대에서 울리는 저녁 종소리였다. 묵직한 그 소리가 가슴을 울렸다.

"사람이 산속에 산다고 기냥 자연만 보고 살믄 안 되는가벼. 사람은 사람 속에서 살아야 하는디."

그는 종소리를 들으며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이제는 다시 걸어가야 할 때였다. 자연이 주는 기쁨도 중요했지만,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따뜻한 정 또한 놓쳐서는 안 될 것이었다.

그는 저녁 하늘을 바라보며 천천히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정용애 작가의 '오봉산 아래에서'는 자연 속에서의 삶을 배경으로 인간 존재의 본질과 삶의 의미를 탐구하는 작품이다. 작가는 전원생활을 통해 계절의 변화, 생명의 탄생, 자연이 주는 풍요로움을 경험하며 평온한 삶을 누린다.
 시간이 흐르면서 알 수 없는 허전함을 느끼고, 결국 인간은 자연 속에서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더욱 깊은 기쁨을 누릴 수 있음을 깨닫는다. 이 과정은 마치 자연의 순환처럼 서서히 진행되며, 마지막 종소리를 계기로 새로운 깨달음에 이른다.

작품 속에서 드러나는 작가의 삶의 가치관은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하는 태도이다. 작가는 산과 나무, 텃밭과 가축을 돌보며 자연이 주는 선물을 소중히 여긴다. 자연은 변화하고, 순환하며, 끊임없이 생명을 잉태하고 소멸한다. 계란이 병아리로 부화하는 순간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라고 묘사하는 대목에서 작가는 자연의 경이로움을 진정으로 체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작가는 인간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삶의 가치를 강조한다. 자연 속에서 얻는 기쁨만으로는 완전한 삶이 될 수 없으며, 결국 사람과 함께 나누고 교류할 때 비로소 삶의 의미가 더욱 풍성해진다는 깨달음을 작품의 결론부에서 강조한다. "사람이 산속에 산다고 기냥 자연만 보고 살믄 안 되는가벼"라는 구절은 자연 속에서 얻는 깨달음이 다시 인간 세계로 향하는 필연적인 흐름임을 보여준다.

이 글의 미의식은 '자연미'와 '인간미'의 조화 속에서 발현된다. 작품 전반에 걸쳐 자연의 아름다움이 생생하게 묘사된다. 산수유가 노랗게 마을을 밝히고, 논둑에서는 귀뚜라미가 노래하며, 단풍이 붉게 물드는 이러한 장면들은 마치 한 폭의 한국적인 풍경화를 보는 듯하다. 뿐만 아니라, 병아리가 부화하는 모습이나 텃밭의 풍성한 수확은 생명의 따뜻한 온기를 전달하며, 자연이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임을 보여준다.

이 글이 자연예찬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는 인간적인 감성과 철학이 자연 속에서 결합되기 때문이다. 단순히 풍경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의 생활과 그 속에서의 내면적 성찰이 어우러지면서 독자는 자연 속에 살아가는 한 인간의 감정 변화를 따라가게 된다. 결국, 자연의 아름다움은 인간의 깨달음과 연결되며, 이를 통해 작품은 단순한 서정적 수필이 아니라 깊이 있는 성찰의 기록으로 자리 잡는다.

정용애의 '오봉산 아래에서'는 자연 속에서의 삶이 주는 기쁨과 그 한계를 섬세하게 포착한 작품이다. 작가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 평온하고 아름답지만, 그것만으로는 인간 존재의 모든 갈증을 채울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자연과 인간의 공존 속에서 더욱 깊은 의미를 지닌다.

이 글은 그저 전원생활 예찬이 아니라, 인간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삶의 방향을 성찰하는 작품이다. 자연의 시간 속에서 변화하는 삶의 모습, 그리고 그것을 통해 얻은 통찰이 잔잔한 감동을 준다. 종소리를 듣고 삶의 방향을 다시금 정하는 결말은 독자에게도 삶의 본질을 돌아보게 만든다.

이처럼 '오봉산 아래에서'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관계적 존재성을 통찰하며, 독자들에게도 삶의 의미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ㅡ 청람






정용애 선생님께






 선생님의 글을 읽고 깊은 감동과 따뜻한 여운을 간직한 한 독자입니다. '오봉산 아래에서'를 읽으며 저 또한 자연 속에서의 삶을 꿈꾸고 동경했던 시간들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그저 조용한 산골에서 나무와 바람을 벗 삼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만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선생님의 글을 통해 자연 속에서의 고요함이 때로는 허전함이 되기도 하고, 결국 사람과의 온기가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시골에 들어오신 지 삼 년이 지났다고 하셨지요. 계절이 세 번이나 돌아갔다고 하셨는데, 그 시간이 선생님께는 참 빠르게 지나갔나 봅니다. 글을 읽으며 그 세월의 흔적이 하나하나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산수유 꽃이 마을을 노랗게 물들이고,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논둑에 앉아 여름밤을 보내고, 붉게 물든 단풍 사이를 걷고, 아랫목에서 차 한 잔을 마시는 겨울날의 따스함까지… 이 모든 풍경이 생생하게 그려졌습니다. 선생님께서 오봉산 아래에서 살아온 날들이 얼마나 깊이 자연과 닿아 있었는지,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은 감사를 느끼셨는지 글을 통해 오롯이 전달되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왜일까. 이렇게 자연과 더불어 살며 하루하루가 감사로 가득했는데, 이상하게도 마음 한편이 허전해졌다"고 하셨습니다. 선생님의 이 질문이 제 가슴에 깊이 남았습니다. 아마도 자연이 주는 기쁨과 평온함 속에서도, 우리가 진정으로 채워야 할 것은 '함께하는 삶'이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자연이 우리에게 한없는 선물을 주지만, 결국 인간은 사람들과의 교류 속에서 더욱 따뜻한 의미를 찾는 존재라는 것을요.

특히 선생님께서 병아리가 부화하는 모습을 보며 감동하셨던 부분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작은 생명이 계란 껍질을 깨고 나오는 순간, 그것이 단순한 자연의 섭리를 넘어 우리에게 감동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그것이 새로운 시작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마치 선생님께서 산 아래에서의 삶을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으셨듯이, 병아리가 세상에 나오면서 자신의 길을 가는 것처럼요. 하지만 그 병아리들이 자라면서 텃밭을 엉망으로 만들었을 때조차 선생님께서 웃으셨다는 대목에서 저는 선생님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란, 때로는 예기치 않은 혼란 속에서도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가는 기쁨을 찾는 과정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선생님께서는 점점 더 어떤 허전함을 느끼셨다고 하셨지요. 그리고 그 허전함의 정체를 고민하시다가 마침내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 "사는 날 동안 남을 위해 배려하며 살 때 그 기쁨이 더욱 풍성해지지 않을까"라고요.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며 깊이 공감했습니다. 아무리 자연이 아름다워도, 사람은 결국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함께할 때 더욱 충만한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진리를요.

그러고 보니, 선생님께서 저녁 종소리를 듣고 스스로에게 되뇌셨던 말씀이 떠오릅니다.
"사람이 산속에 산다고 기냥 자연만 보고 살믄 안 되는가벼. 사람은 사람 속에서 살아야 하는디."
이 말씀이 제 마음을 울렸습니다. 저 또한 조용한 곳에서 혼자 살아가고 싶은 마음을 가질 때가 많았습니다. 번잡한 도시를 떠나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했지요. 그러나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다른 이들과 더불어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데 있음을 선생님의 글을 통해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 마지막 장면에서 "이제는 다시 걸어가야 할 때였다."고 쓰신 부분이 유독 인상 깊었습니다. 자연의 기쁨도 중요하지만, 사람들과 함께하는 정 또한 놓쳐서는 안 된다고 하셨지요. 선생님께서 조용한 시골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가시면서도 결국 사람을 향한 그리움, 함께 나누는 삶의 소중함을 다시금 발견하신 것처럼, 저도 제 삶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제 삶은 마치 선생님께서 처음 시골로 내려오셨을 때처럼 자연 속의 고요함만을 동경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깨닫고 걸어가시려는 새로운 길처럼, 저도 이제는 사람과 함께하는 삶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어졌습니다.

선생님의 글이 단순한 전원생활의 기록을 넘어, 우리 삶의 근본적인 가치와 방향을 다시 생각하게 해 주셨습니다. 자연 속에서 홀로 만족하며 사는 것도 아름답지만, 결국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웃으며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풍요로움이라는 것을요.

마지막으로, 선생님께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따뜻한 시선과 깊은 성찰로 써 내려가신 이 글이 제게도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산 아래에서 걸어가시려는 새로운 길이 평안하고, 더욱 풍성한 기쁨으로 채워지기를 바랍니다. 저 또한 이 글을 가슴에 새기며, 제 삶 속에서도 따뜻한 나눔을 실천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좋은 글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걸음이 언제나 따뜻한 햇살 아래 있기를 기원합니다.

오봉산 아래에서의 깨달음을 함께 나누고 싶은 이웃 독자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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