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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날, 다시 부르는 기도 ㅡ 정용애 작가    

김왕식

by 평론가 청람 김왕식 Mar 07. 2025










                 떠나는 날, 다시 부르는 기도




                                           정용애




아니, 벌써.
어느덧 1500여 일이 훌쩍 지나가뿌렀네.

텃밭 언덕 아래에 이름도 모를 풀이 무성하게 자랐고, 승자네 담 밑에는 미나리가 푸릇푸릇허니 싱그러움을 뽐내고 있당께. 맨날 지나던 길가에는 크고 작은 돌들이 정겹게 놓여 있고, 닭집 앞 텃밭에는 꼬꼬닭들이 잘 먹던 싱싱헌 상추가 잔뜩 자랐어라. 아침마다 찾아와 작은 텃밭을 노닐던 까치, 비둘기, 참새들이 재잘거리던 소리가 여그 귓가에 쟁쟁헌 것이 들리는 것 같네.

이 모든 것들이 이제는 손 닿을 수 없는 기억이 될 터이네. 떠난다는 것이 이리도 가슴이 저릿허네 그려.

코로나로 인해 오랜만에 교회를 찾았는디, 예배 마치고 나서 목사님이 문득 물으시더라고.

"언제 이사 오시요?"

곁에 있던 성도님들도 한 마디씩 거들었어.

"이왕 이사 오실 거믄 서둘러야제."

아직 다섯 해가 다 차려면 몇 달이 더 남았는디, 뭔 그리들 급허신가. 그 말에 마음이 스멀스멀 흔들려 불제. 집에 와서 남편한테 넌지시 말허니께.

"여보, 이사 갈 준비합시다. 하나님의 뜻인가 봐요."

그렇게 결심하고 난 다음 날, 오봉산 너머로 해가 쏙 올라오는 새벽에 카세트 들고 기도처인 텃밭으로 나갔어. 그리고 간절허게 기도한 뒤에, 부동산을 찾아가 집을 내놨제.

열흘 남짓 지났을까. 집이 팔렸다는 소식이 들려왔는디, 정신이 멍허니 멍청허니 하더라고. 이게 진짜 일이여, 꿈이여. 이사 준비로 분주허다가 서울에 새집까지 계약하고 나니, 이게 꿈인지 생신지 알 수가 있어야제. 모든 것이 너무나도 빠르게 흘러가뿌렀어.

그라고도 집 정리허면서 텃밭에 나가봤는디, 모든 감정이 한꺼번에 몰려오더라고.

"하나님, 오 년 전 전원생활을 소망하며 드린 기도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막상 떠나려니 맨날 찾아오던 까치, 비둘기, 참새들이 벌써 그립네라. 이사 날짜를 내년으로 미룰 걸 그랬나요? 후회가 됩니다. 기도를 철회할 수는 없을까요?"

간절허게 기도했제. 근디 그 순간,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허더라고.

"너 지금 뭐라고 했느냐? 중얼중얼하지 말고 알아듣게 말해 보아라."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어. 나는 다시 기도했제.

"하나님, 저는 아무개 권사입니다. 전원생활을 조금만 즐기다가 교회 근처로 돌아오겠다고 기도했었지요. 그 기도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요, 저희 닭 중에 '귀염이'와 '새싹이'가 있습니다. 이 아이들은 제가 부르면 소리를 알아듣고 '꼬꼬' 하고 달려옵니다. 그런데 이제 떠나야 하니 눈물만 나네요. 어찌해야 쓸까요?"

그때 또다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허더라고.

"사랑하는 딸아,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지? 네가 알아차리도록 해도 깨닫지 못하니, 당장 극동방송을 틀어 보거라."

집으로 돌아와 부랴부랴 방송을 틀었는디, 마침 한 목사님이 열변을 토허고 계시더라고.

"믿는 우리는 교회를 위해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제. 다시 무릎을 꿇고 기도허는데, 하나님께서 속삭이시는 듯했어.

"딸아, 너의 교회에 기도하는 성도들이 많지만, 한 자리가 비어 있다. 나는 그 자리에 기도하는 네 모습을 보고 싶구나."

그 순간, 모든 것이 분명해졌제. 몇 개월 앞당겨 이사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어. 가슴이 뭉클허고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더라고.

어제까지만 해도 너무 짧고 아쉬운 날들이라 했는디, 이제는 모든 것이 감사로 채워지더라고. 주어진 하루가 얼마나 소중헌지, 떠나는 이 순간까지도 하나님께서 함께하고 계심을 온전히 깨닫게 됐제.

텃밭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달라 보이더라고. 미나리 향기가 더 깊어진 것 같고, 꼬꼬닭 울음소리도 더욱 정겹게 들렸어. 이 모든 것이 그리울 테지만, 이제는 기쁘게 떠날라요.

하나님이 계신 곳이라면 어디든, 나의 기도할 자리가 있음을 알았으니께.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정용애 작가의 '떠나는 날, 다시 부르는 기도'는 한 개인의 삶 속에서 신앙적 깨달음과 이별의 정서를 담아낸 글이다. 이 작품은 단순한 이사 이야기가 아니라,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신의 뜻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준다. 작가는 친숙한 구어체와 지역 방언을 활용하여 독자가 정서적으로 쉽게 공감할 수 있도록 하며, 생활 속에서 체득한 신앙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이 작품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미의식은 ‘삶의 순간들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의미를 가진다’는 신념이다. 작가는 이사를 앞두고 정든 풍경과 익숙한 존재들과의 작별을 아쉬워하지만, 결국 그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깨닫고 감사로 받아들인다. “텃밭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달라 보이더라고”라는 문장에서 나타나듯, 외적 환경은 변하지 않지만, 내적 인식이 바뀌면서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이러한 변화는 작가의 신앙적 통찰이 깊어졌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독자에게도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힘을 가진다.

또한, 작가는 자연과의 유대를 통해 신의 섭리를 느낀다. 텃밭의 미나리, 닭, 참새, 비둘기, 그리고 매일 지나던 길에 놓인 돌들까지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그들과의 이별을 곱씹는다. 이는 작가가 종교적 신념을 넘어,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을 시사한다. 작가의 삶의 가치철학은 바로 여기에서 드러난다. 곧, 인간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 신앙과 다르지 않으며, 모든 만남과 이별 속에서도 신의 뜻을 찾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신과 인간의 관계를 하나의 대화로 형상화하며, 이를 통해 신의 음성을 듣고 깨달아가는 과정이 매우 섬세하게 묘사된다. 특히 “너 지금 뭐라고 했느냐? 중얼중얼하지 말고 알아듣게 말해 보아라.”라는 구절은 인간이 막연한 기도를 올리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신앙적 태도를 가져야 함을 강조한다. 신의 음성을 듣는 순간, 주어진 삶의 의미가 분명해지고, 떠남에 대한 아쉬움도 감사로 변한다.

작품은 궁극적으로 ‘기도하는 자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작가는 이사를 앞두고 흔들리지만, 극동방송을 통해 신의 뜻을 다시금 확인하며 자신이 기도할 자리를 찾는다. 이는 신앙이 단순히 개인의 바람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고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는 작가의 가치관을 반영한다.

요컨대, 정용애의 이 글은 신앙적 성찰과 자연에 대한 애정을 기반으로 한 미의식을 드러내며, 삶의 모든 순간이 신의 뜻 안에서 의미를 가진다는 철학을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독자들은 이 글을 통해 신앙적 삶의 태도를 되새기게 되며, 이별의 순간조차 감사로 받아들이는 작가의 성숙한 시선을 배우게 된다.






정용애 작가님께





작가님의 글 '떠나는 날, 다시 부르는 기도'를 읽으며 깊은 울림을 느꼈습니다. 단순한 이사 이야기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삶의 철학과 신앙적 깨달음이 한 편의 기도처럼 다가왔습니다. 작가님께서 떠나는 순간을 맞이하면서도 그것을 신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감사함으로 마무리하시는 모습이 감동적이었습니다. 글을 읽다 보면, 마치 한 사람의 삶이 한 편의 찬송이 되고 기도가 되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작가님이 살아온 터전, 텃밭의 정경이 참 따뜻하고 정겹게 그려졌습니다. 그곳에 뿌리내린 미나리, 참새와 까치, 닭들, 심지어 크고 작은 돌들까지도 작가님의 일상 속에서 함께 살아온 존재들이라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떠난다’는 것이 공간의 이동만이 아니라, 그곳에서 함께한 존재들과의 이별이라는 점에서 깊은 아쉬움이 묻어났습니다. 그 아쉬움을 넘어 감사로 바꾸어 가시는 작가님의 신앙적 태도는 제게 많은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특히, 이사를 결정하게 된 계기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과정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우연처럼 들려온 성도님들의 말씀이 작가님의 마음을 흔들었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결정하셨다는 대목에서 신앙이란 결국 일상의 사소한 순간에서도 하나님과의 대화를 이어가는 것임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정이 너무 빠르게 흘러가 작가님도 순간 당황하셨다고 하셨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자리를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하고 계셨음을 깨닫게 되는 과정은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특히, 기도 중에 들려온 하나님의 음성을 묘사한 부분이 제 마음에 깊이 남았습니다. “너 지금 뭐라고 했느냐? 중얼중얼하지 말고 알아듣게 말해 보아라.” 이 대목을 읽으며 순간 웃음이 나면서도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너무도 친근하고 따뜻한 방식으로 다가오셨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진 말씀— “딸아, 너의 교회에 기도하는 성도들이 많지만, 한 자리가 비어 있다. 나는 그 자리에 기도하는 네 모습을 보고 싶구나.”— 이 구절을 읽고 저도 깊은 울림을 받았습니다.

작가님은 떠남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기도의 자리로 부르심을 받은 것임을 깨닫고 기쁘게 순종하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쉬움과 후회, 그리움이 있었지만, 결국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기쁨임을 다시금 보여주셨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신앙이란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에 응답하는 삶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 응답 속에서 진정한 평안이 찾아온다는 것도요.

작가님의 글은 우리에게 신앙이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삶 속에서 경험하는 것임을 일깨워 줍니다. 때로는 작은 텃밭에서, 때로는 닭과의 교감 속에서, 때로는 지나가는 성도의 한마디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작가님의 삶이 기도가 되고, 그 기도가 다시 글이 되어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작가님께서 마지막에 “하나님이 계신 곳이라면 어디든, 나의 기도할 자리가 있음을 알았으니께.”라고 하셨을 때, 저도 모르게 눈물이 맺혔습니다. 우리가 사는 곳이 어디든, 어떤 환경에 있든,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해 있는가 하는 것이겠지요.

작가님께서 앞으로 새로운 곳에서 또 어떤 기도를 올리시며 살아가실지 기대가 됩니다. 그곳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순간들이 가득하시기를, 그리고 작가님의 글이 더 많은 이들에게 신앙의 깊은 울림을 전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늘 평안과 축복이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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