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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든밍지 May 29. 2024

솔드아웃된 소금빵을 기다리는 이유

성공의 맛은 어떤 맛일까

   살아가면서 원하는 바를 다 이룰 수 없다는 건 진작에 알았다. 그럼에도 실패의 순간을 마주할 때마다 힘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얼마 전 한 모임에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당신은 어떻게 하나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여행을 떠난다, 맛있는 걸 먹는다, 드라이브를 하겠다 등의 모인 사람만큼의 다양한 답변이 나왔다. 내 순서가 되었다. 그 질문을 받았을 때부터 떠올렸던 말을 조심스레 말했다.


  "저는 벗어나지 않아요. 그냥 거기 있어요. 일이든 사람이든 상황이든 정면으로 마주해요."

자리에 모인 사람들 대부분이 웃었다. 평소 성격을 너무 정확하게 반영한 대답이었을까.


  꽃길만 펼쳐진 인생을 살아온 것은 아니기에 꽤나 자주 실패를 만났다.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는 성격이라 실패할 것 같은 일들을 도전하지 않았기에 그나마 마주한 실패가 좀 적었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실패라고 부르기엔 거창하지만 당시에는 견딜 수 없던 상황은 많았다.


  그럴 때마다 회피하기보다는 마주하는 편이다. 도망치고 싶지만 도망치지 않는다. 이것도 성향의 차이라 가족 중에서도 회피파와 정면파로 나뉘지만, 일단은 견뎌내는 편이다. 두 눈으로 직접 보고, 버티는 게 마음이 더 편한 성격 탓이다. 물론 해볼만큼 해보다 안되면 미련 없이 놔버리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끈기가 있다. 집요하다.'는 말도 종종 들었다. 마냥 칭찬은 아니었겠지만. 시험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6번의 난자채취와 3번의 배아이식, 흘러가 버린 1년 반의 시간 속에 그 어디에도 성공이란 단어는 찾아볼 수 없었다. 매번 실패하면서도 진료실에서 고민해 온 질문거리를 한가득 쏟아내는 환자이기도 했다.


  임신이 쉽지 않은 일인 것은 시작할 때부터 알았다. 기저질환이 있기도 했고, 키도 몸무게도 평균의 미치지 못하는 그야말로 초등학생의 체구로 성장이 멈춰버린 몸을 가졌다. 그런 탓에 어려움을 직감하면서도 그럼에도 끝내는 성공할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도 있었다.


  또다시 실패했다. 시험관 시계에 맞춰 살아온 일상의 시계를 잠깐 멈추는 게 아닌 부숴버리고 싶은 충동이 올라왔다. 의사에게 말했다. 쉬고 싶다고. 이번 주기를 쉬기로 했으나, 그렇다고 모든 걸 잊고 훌쩍 떠난다거나 그동안 멀리 했던 술을 마시는 등의 일탈을 즐길 순 없었다.


  꽤나 빡빡한 성격 탓일까. 쉬어도 쉬는 게 아닌데 도대체 왜 쉬고 싶다고 한 걸까. 실패를 마주했을 때, 아무렇지 않은 듯 훌훌 털고 일어나는 대인배는 아니다. 오히려 가슴 깊이 실패를 간직한 채 다시는 반복하지 않으려 곱씹고, 또 곱씹으며, 이를 갈며 다음을 준비하는 성격이다.


  쉬기로 해놓고도 여전히 실낱같은 자연임신을 꿈꾸며, 배란일을 확인하기 위해 산부인과를 몇 번이나 오갔다. 도서관에 가서 관련 책들을 빌려 파고들었다. 블로그나 카페 글도 닥치는 대로 읽었다. 전설 속의 나오는 보물 지도의 위치라도 찾는 사람처럼 어딘가 있을지 모르는 형체 없는 해결책을 찾고, 또 찾았다.

  

  소금빵 맛집 근처에 갈 일이 있었다. 이왕 간 거 '못 사면 말고...'는 없다. 무조건 사야 한다. 빵 나오는 시간에 맞춰 기다렸건만, 내 바로 앞에서 솔드아웃이 되었다. 앞사람이 하나만 적게 샀어도 살 수 있었을 텐데... 괜히 야속했다. 직원이 안타까운 듯 한 시간 후에 빵이 다시 나온다고 말했다.


  '기다릴까? 돌아서서 가버릴까?' 선택은 역시 기다리기로 했다. 이왕 마음먹은 이상 빈 손으로 돌아갈 순 없다. 한 시간 더 기다려서 산 소금빵은 맛있었지만, 기다릴 만큼의 맛이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사기로 했으니 사고 싶었다. 쟁취하고 싶었다는 표현이 더 맞으려나.


  시간낭비로 보이는 한 시간의 기다림은 기회의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는 시간, 물론 무턱대고 기다리면 빵을 살 수 있는 것과 임신은 다른 문제다. 마냥 기다린다고, 시간이 해결해 줄 일도 아니다.




  그럼에도 기다리고 싶다. 왜 실패했는지 지난 주기를 다시 차분히 생각해 본다. 생활 습관을 다시 짠다. 영양제를 추가하고, 빼고, 식단을 재정비한다. 운동도 다른 걸 시도해 본다. 그러다 보면 최적의 결과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소풍도 소풍 가는 날보다 가기 전날이 더 설레고, 빵도 먹기 전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더 설렌다. 하나만 사고 돌아가긴 아쉬워 더 사와 얼려두었던 소금빵을 베어 문다. 겹겹이 쌓인 묵은 마음 사이로 훅 들어오는 짭짤함, 언젠가 마주하게 될 성공의 맛이 이런 맛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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