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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든밍지 Jun 19. 2024

술을 끊었는데 왜 처음처럼이 생각나지

에필로그

  지금은 술을 끊었지만, 나름 프로 술꾼으로 살던 시절이 있었다. 술자리보다 혼술을 사랑하는 진정한 애주가이던 시절. 맥주, 와인, 보드카, 위스키, 소주, 막걸리, 사케 등 다양한 술이 있지만, 소주, 보드카 등의 독주를 즐겨마시는 편이었다.


  맥주는 배가 불렀고, 와인과 막걸리는 숙취가 심했다. 빨리 취하는데 저렴하기까지 한 소주는 그야말로 가성비 최고의 술이었다. 소맥도 싫어하는 그야말로 '소주파'형 인간으로 꽤 오랜 시절을 보냈다. 지금은 제로 슈가 열풍이 주류계도 휩쓸었지만, 그때는 참이슬과 처음처럼이 소주계의 양대산맥이었다.


  멋모르던 시절에는 참이슬을 먹었지만, 어느샌가 처음처럼이 더 좋았다. 아마, 도수가 조금 더 낮은 탓에 목 넘김이 더 깔끔했달까. 무엇보다 그 이름이 좋았다. 브랜드 담당자가 신영복 교수의 글귀 <처음처럼>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처음처럼 목 넘김이 좋다는 뜻으로 지었다고 하는데... 나 같은 사람들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다.


  이제는 마시지 않는, 꽤 좋아했던 소주 브랜드의 이름이 왜 이번 연재의 에필로그를 쓰는데 생각났을까. 난임 이야기를 처음 다뤘던 1편이 책으로 나오고, 너무 힘들어 당분간 다시 쓰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했었다. 우연히 듣게 된 독자의 형식적인 칭찬이었는지도 모를 말에 감동받아 몇 달이 지나 2편을 쓰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마치 술을 잔뜩 먹고, 토하고, 내가 술을 다시 먹으면 사람이 아니라고 말해놓고도 며칠이 지나면 그 결심은 알코올에 증발되듯 사라져 버리는 것처럼. 처음에는 10화까지만 써야지 생각했다. 그다음에는 15화까지만 써볼까. 그러다 20화까지 와버렸다.


  매주 글 하나를 내는 것, 그전에 다른 글도 연재해 보았지만, 반복되는 실패를 거듭하면서 글을 쓴다는 게 마냥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계속된 실패를 상기하며, 들여다보는 일은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난임 부부가 많다지만 병원에서 보이는 게 전부인 듯했고, 주위 사람들이 별생각 없이 던진 말에 상처만 늘어가는 날들이었다.


  물론 이번 연재의 소소한 수확도 있다. 구독자도 조금은 늘었고, 그전에도 여러 번 브런치 메인에 오른 적이 있었지만, 난임을 주제로 한 글은 메인에 오른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몇 편이 메인에 올랐다. 그 덕분인지 라이킷 수도 늘었다. 심지어 공중파 TV의 출연 제의까지 받았다.


  물론 얼굴 노출이 두려워 고민하다 끝내는 고사 했지만. 방송 출연을 제의받고, 내심 기뻤다. 내 글을 보고 연락했다는 점이 특히 좋았달까. 방구석에서 매일 써 내려간 글이 누군가에게 가서 닿았다니! 사실 쓰면서 시간도 에너지도 꽤 드는 일을 왜 매주 반복할까 고민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쓰면서 마음속에 풀리지 못한 무언가, 어디에든 말하고 싶었던 답답함이 해소되는 느낌이 계속 쓰게 하는 것이 아닐까. 2편의 연재는 이렇게 끝나지만, 분명 하루 이틀 지나고 3편을 어떻게 시작할지 머리를 굴리고 있는 내 모습이 불 보듯 훤하게 그려진다.




  난임 여정은 끝나지 않았다. 그 말은 아직 쓸 얘기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모아둔 배아도 없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난자채취부터 시작하는 일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아무것도 없는 처음에서 시작해야 하기에 그 소주 브랜드가 생각났으려나.


  그도 아니면 술 생각이 간절할 만큼 현실이 힘들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모름지기 끝이 있어야 시작도 있다는 유명한 말처럼, 다시 시작하기 위해 잠시 숨을 고른다. 언제나 그랬듯 처음처럼.



  그동안 <난임, 뜻밖의 여정 : vol 2>를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부디, 이 글이 누군가의 마음에 가서 닿았기를 바랍니다. 조만간 3편으로 돌아올 예정이나, 누군가의 힘이 되는 응원이 있다면 저는 내일이라도 쓰고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 <사진출처 : 처음처럼 | 롯데칠성음료 (lottechilsu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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