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구구절절한 게 싫다.'는 말을 꽤 자주 하며 살았다. 누가 빙빙 돌려 말한다거나 사족을 붙이는 게 싫었고, 요점 없이 모호한 글을 보면 '그래서 뭐?'라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그래서일까. 꽤 오랜 시간 시와 시인을 동경했다. 짧은 문장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 그 점이 좋았다. 시어의 숨은 뜻을 찾아내고, 해석하는 데는 영 소질이 없었지만, 그냥 시를 읽는다는 그 느낌이 좋았다. 뭔가 멋있어 보이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달까.
5년 전이었다. 우연히 쓴 시 한 편이 시집에 실렸다. 작가가 아닌 일반인 여러 명의 시를 모아 실은 책이었다. 최근에 우연히 책장을 정리하다 그 책을 다시 펼쳐보았다. 그 시절의 시를 쓴 내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일도 사랑도 뭐 하나 쉽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위로가 필요한 순간에 나는 시를 읽고, 썼었다.
그때는 꽤나 시에 진심이었지만, '조금 더 글을 잘 쓰게 되면 다시 써봐야지.' 다짐만 하고, 다시 치열한 일상의 굴레 속으로 돌아갔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글을 쓰면 쓸수록 시는 더 어렵게만 느껴졌다. 글을 더 잘 쓰거나 시가 쉬워지는 그런 날을 기다리는 건 아마 이번 생애는 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묻어두었던 그 마음을 다시 한번 꺼냈다. 가을이라 마음이 유독 센치해져서 일지도 모르겠다.
요새 유행하는 말이어서 그런가. 주변 사람들이 장난스럽게 꽤 많이 하는 말 중 하나는 "너 T야?" 다. MBTI의 T(사고형)인 사람이 상대방이 공감이나 위로를 원하는 상황에서 오로지 팩트만을 말하는 것을 놀리는 표현이다. 그래서인지 T인 내가 시를 쓴다고 하니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의외라는 반응이다.
예를 들면 T인 나의 대화는 이런 식이다.
"샐러드만 먹으면 살이 빠질까? 요새 살이 너무 쪘어."라고 물으면,
"뭘 먹든 적게 먹으면 살은 안 쪄. 적당히 먹으면 돼."라고 말한다.
'다이어트를 하는 나를 응원해 줘, 공감해 줘.'라는 말의 의미를 모르는 건 아니나, 이상하게 입은 공감이나 위로가 아닌 뼈 아픈 팩트만을 말하고 있었다.
F(감성형)가 되고 싶어 시를 쓰는 건 아니다. T의 마음도 촉촉해지고 싶은 그런 순간이 있다. 계속 그러고 싶었으나 참아왔는지도 모르겠다. 입으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마음으로는 누구보다 공감하고, 공감받고 싶은 순간이 있다. 시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다. 멋진 시어도 함축적인 의미도 잘 모르겠지만, 일단 써보고, 시라고 이름 붙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