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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든밍지 Mar 13. 2024

일찍 일어나는 새가 피곤하다

  다음 생리를 기다리는 일은 언제나 지루한 일이다. 병원에 다니느라 못 만났던 지인들을 가끔 만나는 것 외에는 또 다음 주기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전략을 짜는 일에 꽤 많은 시간을 보낸다. 이번 주기의 식습관, 운동습관을 돌아보고, 반성한다. 속절없이 1년은 흘렀고, 이번에는 병원도 바꾸기로 한 마당에 결심도 남달랐다.


  일단, 부족한 영양제를 구입했다. 엽산도 사고, 코큐텐도 사고, 오메가 3도 사고... 활성형 엽산이 좋은지, 성분이 좋은 코큐텐은 어떤 제품인지, 비린 맛이 안 나고, 크기가 작은 식물성 오메가는 어떤 건지 등등... 약사들의 유튜브 채널을 보며 정보를 찾아댔다. 사실 영양제는 큰 역할을 하지 않겠지만, 이렇게라도 마음의 안정을 찾고 싶었달까.


  유튜브에 시험관 관련 영상과 카페 성공 후기글을 보면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말이 있다. 바로 '일찍 잤다는 것'. '새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일어납니다.'라는 노래도 있을 정도로 좋은 습관이라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다. 1년 전으로 돌아가 시험관을 시작할 때도 알고 있었다.


  사실 그때도 똑같은 영상을 봤던 기억이 난다. 실천하지 않았을 뿐. 리셋버튼이 필요했다. 실패로 점철된 지금의 생활을 뒤엎을 새로운 루틴이 필요했다. 지금까지 운동도, 식단도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었다. 하지만, 잠 습관만큼은 영 별로였다.


  예민한 편이라 늦잠을 자는 편은 아니었으나, 늦게 잠드는 것은 확실했다. 보통 새벽 1시~2시에 잤다. 백수... 아니 휴직자 주제에 뭐가 이리 바쁜 건지 밤 11시는 되어야 집안일을 비롯한 모든 일이 끝났고, 그때부터 온전한 자유시간이 시작되었다.


  이 시간을 포기할 수 없어 두세 시간쯤 혼자 자유를 누리다 잤다. 그래봐야 핸드폰을 하고, 좋아하는 예능이나 영화를 보는 게 다였지만. 이제는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했다. 평생 생선은 입에도 대지 않았지만 임신에 도움만 된다면야 못 먹는 생선을 먹어야 하나 할 정도로 절실했다.


  일찍 자고, 일어나면 난자 질이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임신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그 말을 믿고, 새나라의 어린이가 되어보기로 했다. 손해 볼 건 없었다. 마침 새해를 며칠 앞둔 어느 날부터 일찍 자기를 시도했다. 밤 10시에 잠이 드는 게 목표였다. 새벽 6시 30분에 알람을 맞춰놓고 며칠간 그 시간에 일어났다.


  주말도 예외는 없었다. 3개월이 지난 지금 아직도 그 루틴은 지켜지고 있으나, 10시에 잠드는 게 목표였던 것은 어느새 10시 30분, 11시로 늦춰질 때가 많았지만, 그래도 나름 꾸준히 지켜지고 있다. 시작 전에는 일찍 일어나는 게 훨씬 힘들 거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더 힘든 것은 일찍 자는 것이었다.


  왜 그렇게 자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생각나는지 알 수 없었다. 밸브는 잠갔나. 내일 먹을 고기는 냉동실에서 꺼내놨나. 등의 오만가지 잡생각이 머릿속을 휩쓸 없다. K-수험생과 직장인 생활을 오래 한 편이라 일찍 일어나는 것에는 거부감이 없는 편이었으나, 일찍 자는 것은 영 익숙해지지 못했다.


  누웠지만 잠이 들지 않는 이도저도 아닌 상황이 시간낭비로 느껴졌다. 일찍 자려면 최대한 피곤한 상태여야 했다. 그러려면 깨어있는 동안 최대한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들어야 했다. 소파에 멍 때리며 TV 보는 시간은 당연히 없어졌다.


  집 앞에 떡 하니 있는 마트를 두고, 왕복 1시간 거리의 마트로 두부를 사러 갔다. 운동, 독서, 요리, 장보기, 글쓰기, 그림, 피아노, 독서모임 등 깨어있는 시간에 과할 정도로 모든 일에 열과 성을 다했다. 효과는 확실했다. 눕자마자 바로는 아니더라도 오디오북 15분 예약 모드의 음성이 멈출 때쯤에는 잠들 수 있게 되었다.


  뼈때리는 명언으로 유명한 개그맨 박명수가 그런 말을 했더랬다. "일찍 일어나는 새는 피곤하다."라고, 사실이다. 일찍 일어나면 하루를 더 빨리, 많은 일을 할 수 있기에 피곤하다. 하지만, 나는 일찍 자기 위해 자발적(?)으로 일찍 일어나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든다.


  이게 무슨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 싸는 소리냐고 할 수 있다. 생계를 위해 일찍 일어나야만 하는 자영업자나 직장인들은 극대노할 수 있는 부분이나, 임신 성공을 위해 일도 휴직한 마당에 지금은 이게 내 일이고, 목표라는 점을 감안해 주길 바란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생명의 탄생을 너무 사무적(?)으로 보고 있나 싶지만, 그만큼 간절하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면 피곤한 건 사실이나, 오늘도 꽤 알차게 보냈다는 것에 뿌듯함도 느낀다. 큰 성공이 아닌 작은 성공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고 어디선가 들었다. 매일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자는 것, 정말 별 거 아닌 작은 성취가 연이은 실패로 점철된 우울한 인생에 아주 작은 파동을 일으켰다.


  어느덧 시작한 지 3개월 차, 얼마 전에는 나름 실험정신(?)이 생겨 알람을 맞추지 않고 잤다. 일어나서 멍 좀 때리고, 늦장을 부렸는데도 아침 7시였다. 확실히 습관이 된 것이다. 효과는 결과로 증명될 것이기에 일단은 계속해보기로 한다.


  하루를 빨리 시작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다. 미라클 모닝이 유행처럼 퍼져 아침에 운동하고, 독서하고, 필사를 하며 열심히 사는 사람들도 많다. 사실 그전까진 이런 것에 회의적이었다. 본인의 생활 패턴대로 사는 것이 행복이고, 그런 삶의 방식을 언제나 지지해 왔다.


  '일찍 일어난다고 뭐 달라지겠어?' 자는 시간과 활동하는 시간의 물리적 총량은 다를 바 없다고 믿었다. 하지만, 하루를 일찍 시작하는 기분은 직접 해보니 꽤 상쾌했다. 많은 일을 했지만, 아직 오전이라는 사실에 가끔 놀라기도 한다.


  무엇보다 일찍 자고, 일어나고, 운동, 식단도 최선을 다했을 때 결과가 실패인 것과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 자유롭지만 불규칙적인 생활로 실패했을 때의 나에게 미치는 타격감의 차이는 다를 것이다. 적어도 뭐라도 해보고 실패했다면 그 결과에 후회도, 미련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가장 컸다.




  일찍 일어나는 건... 아니 일찍 자는 건 처음에는 노력이 필요했고, 그다음엔 점차 익숙해졌다. "일찍 일어나면 피곤한가요?" 누군가 묻는다면, 답은 "예스!" 하지만, 어느새 일상에서 우울감이 아주 조금 덜어졌고, 성취감이 한 스푼 추가되었다. 출근할 직장도 없고, 오늘이 불금이어도 일찍 자리에 눕는다.


  조금 빨리 하루를 마감하고, 조금 빨리 하루를 시작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만, 또 못할 일은 아니기에 자발적으로 일찍 일어나는 피곤한 새가 되기로 한다. 간절함은 언제나 나태를 이긴다.


사진출처 : KBS <해피 투게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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