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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수필

대전에서 살아남기#1 (몽심)

by 소려












필자는 대전광역시에 거주하고 있다. 노잼 도시라는 프레임이 있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성심당이라는 믿음직한 선봉장 아래 견고하게 구축된 든든한 제빵 방어선이 지키고 있는 대전은 노잼이 아니라 빵의 도시라고 할 수 있다. 대전이 촉나라고, 성심당이 유비라고 한다면 그 아래 ‘오호대장군’ 역시 존재한다. 대전 빵 어워즈에서 당당하게 1위를 꿰찬 떠오르는 신예. 오호대장군중 막내인 베이커리계의 조자룡 ‘몽심’에 다녀온 후기를 간략하게 적어보도록 하겠다.


필자는 토요일 아침 일찍 눈을 떠 릴스를 보며 시간을 낭비하다가 문득 배가 고파졌다. 마치 달팽이처럼 먹고 자고 싸는 것 이외엔 관심이 없는 본인이기에 지극히 정상적인 사고 흐름이었다. 오늘따라 하늘도 흐릿하겠다, 뜨끈한 짬뽕 한 그릇이 땡겨 필자가 대전 1등 중국집으로 꼽는 ‘자유대반점’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웬걸? 오픈 시간이 11 시인 거 아니겠는가. 당시 시각은 10시였고, 중국집까지 차로 길어봐야 15분 밖에 걸리지 않으니 시간이 붕 뜨게 되는 셈이었다. 필자는 본인의 호두만 한 뇌를 솔찬히 굴려 대전인으로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결론에 도달한다. 남는 시간 동안 ‘정동문화사’에 가서 에그타르트를 사 먹기로 한 것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정동문화사는 웨이팅으로 악명 높은 베이커리 중 하나이다. 특히 주말에는 가히 지옥이라 불릴 만 한데 그걸 오픈런도 아니고 10시에 가겠다는 대전 사람이라면 상상도 못 할 미친 생각을 한 것이다. (실은 오픈 시간은 11시 30분이지만 에그타르트를 사려면 9시에는 도착해야 가능하기 때문에 편의상 오픈런이라고 표현하겠다)


그렇게 본인은 약 10시 40분경 정동문화사에 도착한다. 왜 이렇게 늦게 도착했냐고? 입을 옷 고르다가 조금 늦고 말았다. 제길, 이미 줄은 길어질 대로 길어져 디워마냥 거리를 휘감고 있었다. 이대로 줄을 서면 주객이 전도가 되는 것은 물론이요 한정수량으로 살 수 있는 에그타르트를 살 수도 없어 보였기에 필자는 눈물을 머금고 플랜 B 빵집으로 이동한다.


정동문화사가 오호대장군 중에 관우라면 ‘콜드버터베이크샵’은 장비다. 왜냐면 여기가 위에서 말한 대전 빵 어워즈에서 2등을 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는 에그타르트를 사기 위해 차를 몰고 그곳으로 향했다. 근데 아뿔싸! 오픈 시간이 12시라는 것 아니겠는가. 필자는 머리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오늘은 에그타르트의 날이 아닌가 보다 싶었다. 그 순간 맞은편에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는 빵집이 보였다. 바로 몽심이었다.


필자는 그대로 몽심 오픈 대기줄에 조심히 발을 들이밀었다. 몽심은 11시 오픈이었기에 조금만 기다리면 들어갈 수 있었다. 2등 빵집을 찾아왔더니 맞은편에 1등 빵집이 있었다니 이거 완전 소 뒷걸음치다가 쥐를 잡은 격이었다. 필자는 그렇게 줄에 서서 기다렸다.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하지만 줄은 더럽게 느린 속도로 줄어들었다. 가게 안쪽이 보이는 곳까지 왔을 때쯤 본인은 그 이유를 깨달았다. 매장 크기가 코딱지만 한 것이 아니겠는가. 5명만 들어가도 꽉 차는 아주 조그마한 크기였다. 아, 신이시어 저는 에그타르트와 정녕 연이 없는 것입니까…?


인고의 기다림 끝에 필자는 입장해서 빵을 사들고 나왔다. 오늘따라 날이 빌어먹게 추웠다. 기다린 시간이 아까워 마들렌과 휘낭시에, 그리고 치아바타까지 같이 구입했다. 가게를 나서고 시간을 보니 12시였다. 이럴 거면 아까 정동문화사 줄을 섰지. 빌어먹을. 하지만 괜찮다. 나는 결국 에그타르트를 손에 넣었으니까.


빵을 사고 자유대반점에서 식사를 했다. 짬뽕이 본래 목적이었던 게 무색하게 오늘따라 간도 싱겁고 맛이 덜하다. 하지만 볶은 불향과 시원하고 칼칼한 국물 맛은 여전하다. 13,000원이라는 가격이 아깝지 않게 넉넉하게 든 건더기들도 훌륭하다. 하지만 이미 내 신경은 후식으로 먹을 에그타르트에 쏠려있었다. 맛있어야 할 것이다. 반드시 그래야만 할 것이다.

자유대반점 삼선 짬뽕


나는 빵과 곁들일 아샷추를 한잔 사들고 집으로 돌아와 포장지를 열었다. 고소한 냄새가 온 방에 퍼지기는 개뿔 빵들은 이미 차갑게 식어있었다. 주문하면 바로 볶아서 내어주는 삼선 짬뽕처럼, 주문하면 바로 구워 따끈하게 내어주는 삼선 에그타르트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삼선 에그타르트와 삼선 휘낭시에가 있는 즐거운 세상을 상상하며 빵을 꺼냈다.

좌측: 휘낭시에 / 우측: 에그타르트와 마들렌


휘낭시에가 포장되어 있는 모습이 굉장히 수상하게 생겼다. 불을 붙이면 기분 좋아지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를 것만 같은 비주얼이다.


다행히 안에는 휘낭시에가 들어있다. 나머지 것들도 꺼내어 상에 정렬한다.

아샷추와 함께


상남자는 빵을 예쁜 그릇에 담아먹지 않는다. 내가 굳이 왜 그래야만 하지? 네가 예쁘게 생기면 될 일 아닌가. 빵이 김민주처럼 생겼다면 예쁜 접시에 담든, 먼지 바닥에 굴러 나자빠지고 있든 똑같이 예쁘게 보일 것이다. 잡설은 그만하고 이제 진짜 맛을 봐보도록 하겠다.


마들렌은 레몬 마들렌을 주문했는데 생각보다 펑범하다. 기대가 높았어서 그런가, 그냥 맛있는 빵집에서 먹을 수 있는 마들렌 정도의 맛이었다. 특징이라면 조금 덜 달고, 식감이 가벼웠다. 사각거리지 않고 빵처럼 부드러운 느낌이랄까?


놀라운 건 휘낭시에였다. 한입 먹고 감탄을 내뱉었다. 겉은 살짝 그을려서 마치 크루통처럼 바삭하게 씹히는데 안쪽은 사각거림과 부드러움이 공존하는 재밌는 식감이었다. 진하게 나는 버터의 향이 묵직하게 받쳐주고, 그을린 부분에서 나는 깊은 풍미와 고소함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살면서 먹어본 휘낭시에 중에 가장 맛있었다. 참고로 필자는 휘낭시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두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맛있었다.


대망의 에그타르트는 어땠냐고? 솔직히 말하면 실망했다. 기대가 커서 그런가 생각보다 담백하고 은은한 맛에 실망하고 말았다. 내가 기대한 건 진득하고 꾸덕 달달한 에그타르트였는데 말이다. 물론 맛이 없진 않다. 은은하게 올라오는 바닐라빈 항과 계란의 고소한 향이 썩 괜찮았다. 필링의 상태 또한, 계란찜이 되기 직전 아주 절묘한 느낌으로 구워져서 좋았다. 다만 오늘 내가 기대한 묵직한 맛이 아니었을 뿐.


몽심의 빵은 대체로 맛있었다. 치아바타 사진을 안 찍었는데 치아바타가 상당히 맛있었다. 순위를 매기자면 휘낭시에> 치아바타> 에그타르트> 마들렌 순서가 되겠다. 또 방문할 의사가 있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할 것 같다. 휘낭시에 사 먹으러 갈 거다. 글을 쓰니까 또 생각나네. 두 개 사 올걸.


이것으로 짬뽕 먹으러 나갔다가 빵집에서 1시간 줄 선 이야기를 마치겠다. 여러분도 대전에 오게 된다면 성심당만 가지 말고 오호대장군 빵집들도 애용해 주길 바란다. 맛은 솔직히 오호대장군 쪽이 더 맛있다. 비싸서 그렇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대전에 빵 사러 올 거면 평일에 오길 추천한다. 주말에 왔다가 내 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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