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도 보인다. 근데 이 그림은 1968년에 그렸데. 그땐 삼각김밥이 없었어. 그림 제목은 자화상이야. 자화상이 뭔지 알아?”
“응! 나를 그리는 거”
다행히 아이는 자화상이 뭔지는 알고 있었다.
“맞아, 추운 겨울의 감옥에서 자기 모습을 그린 거래”
“아~근데 잘 모르겠는데?”
“너무 추워서 담요를 뒤집어쓰고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그린 거래. 듣고 보니 그렇게도 보이지?”
“어. 근데 그냥 삼각김밥 같아”
어쩌나. 검정 삼각형 모양이 삼각김밥을 떡 하니 연상시키긴 한다.
“너라면 자화상을 어떻게 그릴래?”
“나 학교에서 그렸어. 태권도 하는 모습”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아이가 학교에서 그림을 가지고 왔던 게 기억났다. 태권도 도복을 입고 하늘을 향해 발차기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었다. 그게 자화상인 줄은 몰랐는데. 사범님이 발차기를 보여줘서 멋있어서 그렸다고 했다.
“그럼 이건 자화상이 아니라 장래 희망을 그린 거 아니야?”
“그럼 이건 뭔데!” 아이가 검정 삼각형 그림을 가리켰다. 할 말이 없었다.
“난 지금도 할 수 있거든”
아이는 식탁 의자를 한 손으로 짚더니 다리를 쭉 위로 들어 올렸다. 편법이었지만 그림에서처럼 다리가 하늘 위로 올라가긴 했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안에 숨겨져 있는 이야기를 알게 되고 시대적 배경을 알게 되면 보이지 않는 것까지 느낄 수 있게 된다. 이응노의 자화상에서 보이는 검정 삼각형 모양이 누군가에겐 단순한 삼각김밥이지만 누군가에겐 억울한 옥살이로 추위에 벌벌 떠는 모습으로 보인다. 다른 누군가에겐 또 다르게 보일 수도 있다.
아이의 그림에서 보이는 것과 실제의 모습이 다르더라도 멋지게 발차기하고 싶어 하는 아이의 마음을 볼 줄 알아야 한다. 몸은 따라주지 않지만 태권도를 좋아하는 마음을. 보이는 것 그 이면의 의미를 읽을 수 있다면 아이의 마음을 좀 더 가깝게 느끼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