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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이는 엘리 Dec 02. 2024

꿈꾸는 도서관

집앞 도서관

새 아파트의 입주가 시작되면서 주변에 학교도 생기고 공원도 생기고 상가도 들어섰다. 무엇보다 좋은 건 공원 안에 도서관이 생긴다는 것이였다. 초등학생 아이를 둔 나에겐 집앞에 도서관이 있다는 점은 무척이나 반가운 일이었다. 그동안은 집에서 좀 떨어진 곳이라 자주 가지 못했지만 도서관이 생기기만 하면 문턱이 닳도록 다닐 심산이었다.


새로 생긴 도서관은 크기가 크진 않았지만 곡선과 미적감각이 돋보이는 외관과 1층 로비 가운데 천장이 2층까지 뚫려있어 개방감이 있었다. 공부를 위한 열람실보다는 책을 편히 읽을 수 있는 공간이 더 많이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1층은 어린이 자료실과 유아자료실이 있었고 통창으로 공원의 전경이 한눈에 보였다.

도서관은 공원 가운데 자리잡고 있어서 산책을 하다가 아이와 가기도 좋았다. 새로 생긴 도서관인만큼 책이 모두 새책이었다. 한가지 단점이 있다면 생긴지 얼마되지 않아서 소장책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이 점은 시간이 지나면 해결 될 일이었고 도서관의 좋은 제도인 상호대차 서비스로 채울 수 있었다. 신이 마음에 아이에게 매일매일 책을 빌려다주며 책 셔틀을 자처했다.


그날도 역시 가방에 한가득 아이가 읽을 책을 빌려 양손 무겁게 도서관을 나서는 길이었다. 도서관 입구에 안내문이 붙어있었는데 평소에는 눈여겨 보지 않았던 알림판이 그날따라 눈에 띄었다.

바로 '드로잉 에세이'라는 강좌가 개설된다는 안내 포스터였다. 열두번의 수업 끝에 수강생들의 글을 모아 책으로 출판까지 한다는 내용이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보는 일만 열심히 했지 도서관의 강좌나 행사에 참여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에세이는 그렇다하더라도 드로잉이라니! 그림에는 재능도 소질도 없을뿐더러 그림을 그린지도 참 오래전이었다.

하지만 수업을 듣고 끝나는 것이 아닌 '출판'이라는 단어가 계속 마음에 남았다. 글을 실은 책을 만들 있다는 점이 다른 것을 다 이길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안해본 일을 시도하는 일은 언제나 머뭇거림과 설렘이 함께한다. 갈팡질팡 할까말까 고민했다. 막상 해보면 걱정했던 것 만큼 어렵지 않은 경우도 있고,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어려움을 실감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해보지 않는다면 알수가 없는 법이다. 그동안 머뭇거리다가 놓쳐버린 것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해서 후회한것보다 하지 않아서 후회한 일이 많았던 것이 생각이 나니 더이상 망설이는 것은 싫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동네 도서관수업인데 얼마나 잘하는 것을 원하겠어?'하는 가벼운 생각이 마음 한구석에 있었다.


그렇게 도서관수업에 첫발을 내딛었다. 도서관에 자주 갔었지만 강당이 있는 줄도 몰랐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수업이 내겐 터닝포인트와도 같았다. 그전엔 시간이 있으면 쇼파에 앉아 티브이를 보거나 동네친구들과 만나서 수다를 떨며 보냈다면 지금은 도서관의 수업을 듣거나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많아졌다. 내가 그림을 그린다니, 글을 쓴다니 몇 해전만해도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하지만 첫발을 들여놓자 다른 세상이 존재함을 알았다. 나이를 막론하고 다들 열심히 배우고 쓰고 책을 읽고 토론하며 값진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나만 홀로 집에서 아무것도 안하고 있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수업을 들으면서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며 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그 뒤로 가까운 도서관뿐아니라 여러 도서관에서 진행되는 강좌나 동아리모임에 적극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이렇게 좋은 수업이 있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아쉬워하며 다음에는 어떤 재밌는 수업이 있나 도서관홈페이지를 자주 들여다보았다. 시간이 될때마다 글쓰기 수업뿐아니라 미술사강의나 인문학강의도 신청하여 들었다. 마치 대학교 다닐 때 교양 수업을 듣는 기분이었다. 그땐 재미도 없었는데 나이 들어 이런저런 수업을 들으니 너무 재미있고 여러분야에 관심이 생겼다.


이제까지 주로 아이 책을 빌리기 위해 도서관을 갔었다면 이제는 나를 위해 도서관으로 간다. 수업도 듣고 동아리 활동도 하며 거의 매일 출근하듯 간다.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게 참 오랜만이었다. 그리고 그 기분은 잊고 있었던 열정을 다시 일깨워줬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꿈을 꾸고 새로운 도전을 한다.

도서관은 그렇게 나에게 꿈을 꾸게 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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