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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춘쿠키안의 글귀는?

도서관 동아리모임

by 반짝이는 엘리

도서관에서 그림에세이 동아리 모임이 있는 날. 아이를 학교에 보낸 후에 서둘러야한다. 방심하다보면 별 것도 안했는데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리기 때문이다. 코앞이 도서관이라고 늦장부리다 부랴부랴 갔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도서관의 동아리 모임을 두군데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 중 목요일은 그림 에세이 모임이다. 매주 그림을 선정하고 감상이나 느낌을 이야기하고 있다. 미술에 문외한이라 가입을 망설였지만 지금은 가입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매주 새로운 그림을 만나는 것도 좋고 그림을 통해 생각지도 못했던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무엇보다 같은 그림을 보고도 다르게 생각하는 글을 읽면 사고가 유연해진다.

모임때는 회원분들이 빈손으로 오지 않는다. 간단한 과자며 마실 차를 가지고 모이곤 한다. 이날은 한분이 새해 덕담이 들어있다는 포춘쿠키를 준비해오셨다. 만두를 접어놓은 모양같이 생긴 포춘쿠키는 반으로 쪼개면 덕담이 적힌 종이가 들어있었다.
모임이 끝난 후 단톡방에는 포춘쿠키에서 나온 덕담의 사진이 하나둘씩 올라왔다.

"새해에는 이제까지 미루어 왔던 일들을 시작하면 스스로 놀랄 정도로 말끔하게 처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새해에는 당신은 특별한 사람들과 또한 특별한 인간관계를 맺게 될 것입니다. 잠시 스치는 것처럼 보이는 인연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큰 성공은 관계로부터 올 것입니다"

짧막한 문구들이 왠지 받은 사람과 연결되어 신통한 점괘라도 되는 듯 잘 어울렸다. 덕담에 덕담이 덧붙여져 훈훈한 말들이 오갔다. 나도 가방에 챙겨넣었던 포춘쿠키를 꺼냈다. 나한테는 어떤 문구가 있을지 기대가 됐다.
쿠키를 반으로 뚝하고 갈랐다. 종이가 나와야지 정상인데 텅비어있었다. 한쪽에 말려 있나? 하고 산산 조각을 내어보았지만 글자가 적힌 종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런, 꽝이었다.
포춘쿠키도 꽝이 있었나? 공정상 불량일텐데 하필이면 내가 뽑은 것에 이런일이 생겼는지, 똥손도 똥손도 이런 똥손이 없었다. 당연히 있을것이라 생각했는데 텅빈 쿠키안을 보니 황당함을 느꼈다. 새해의 복을 받지 못한 느낌이었다. 포춘쿠키에게조차 덕담을 받지 못하다니! 아직 오지도 않은 새해가 더더욱 멀게만 느껴졌다.

텅 빈 쿠키를 사진찍어 단톡방에 올렸다.
"전 꽝이네요" 아그작 아그작.

덕담없는 포춘쿠키를 씹으며 허무함을 삭혔다.
서로서로에게 덕담으로 가득했던 단톡방에 작은 소요가 일어났다.

"앗! 엄청난 복이 올거란 신호로"
"더 해줄 말이 필요없는 멋진 새해가 될 건가 봅니다"

꿈보다 해몽이지만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그래, 내가 만들어가는거지. 나도 내일의 나를 모르겠는데 랜덤의 쿠키따위가 어찌 알겠나. 아직 그 어떤 것도 정해진 게 없으니 마음가는데로 해보라는 깊은 뜻이려나? 속이 빈 포춘쿠키를 먹으며 '맛은 있네' 라고 생각했다.

그날이 그날이었던 하루가 글을 쓰면서 새로움으로 가득한 하루를 보냈다. 새로운 모임에 나가고 새로운 사람들과 만났다. 새로운 만남은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하고 다양한 경험을 만들게 된다. 소중한 인연을 맺기도 한다.
미술사는 커녕 미술 전시회도 잘 다니지 않았던 내가 매주 미술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게 될 줄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몰랐던 그림과 화가에 대해 알게 되고 관심을 갖게 되니 전시회에도 가는 등 자연스레 일상안에 스며들었다. 삶이 어떤 방식으로, 어떤 길로 확장되어 나아갈지 모를 일이다.
그러니 포춘쿠키안에 덕담 한 줄정도는 차라리 내가 써봐야겠다

"새해에는 많은 것에 도전해보세요. 생각지도 못할 행운과 즐거움이 찾아 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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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