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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말미의 시간

도서관에서 보내는 소중한 시간

by 반짝이는 엘리

아이 책을 빌리려고 도서관의 책장을 오가다 어린이 잡지가 비치된 곳에 발길이 멈췄다. 과학동아, 수학동아, 독서 평설, 월간 그림책 등 아이들 대상으로 한 잡지는 종류가 여럿 있었다. 비치되어 있는 잡지는 대출은 안되고 관내에서 읽을 수 있게 되어있었다.

뒤적뒤적 잡지를 보다가 '나무말미'라는 단어를 보았다.

나무말미는 '장마철에 잠깐 해가 나서 땔감을 말릴 수 있는 시간'이라는 순우리말이다. 며칠 동안 날이 잔뜩 흐리고 비가 오는 중간 잠깐 해가 나는 짧은 시간에 귀중한 땔감을 말리는, 짧지만 소중한 시간이라는 뜻이다.


생각해 보면 내게 '나무말미의 시간'이란도서관에서 보내는 시간이 아닐까? 하루 중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 글을 쓰고 책을 읽고 동아리 모임을 하고 강의를 듣는 짧지만 귀중한 시간이 내겐 '나무말미의 시간'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도서관에 있는 시간들이 더욱 소중해졌다. 책을 보거나 글을 쓰는 것은 집이나 카페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도서관에서는 집중이 더 잘 되었다. 생활의 할 일에서 벗어나 오직 책과 나와 만날 수 있기 때문일까?


도서관에서는 책도 읽지만 강의를 듣는 일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수업은 대부분 오전 10시부터12시까지 두시간 동안이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서둘러 준비하여 급한 걸음으로 도서관을 향한다. 어떤 수업을 가든지 생각보다 많은 인원과 생각보다 높은 수준에 놀란다. 동네 도서관의 수준이 결코 만만한 수준이 아니다. 인문학 강의부터 아이 교육에 관한 강의나 미술, 음악, 경제 등 다양한 분야의 강의들을 신청해 들을 수 있다. 대학교 다닐 때의 교양수업을 듣는 기분이 들었다. 그땐 재미가 하나도 없었는데 미술사나 역사, 철학 인문학이 이렇게 재미있는 일이었던가? 시험과 상관없는 배움의 즐거움을 느끼며 또한 나의 무지함도 느끼며 배움에 목말랐다.


도서관 수업을 한 번이라도 들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이런 세상이 있었구나, 이렇게 좋은 수업을 왜 이제껏 몰랐을까? 다른 세상으로 한 발짝 들어온 기분이다. 한번 빠지게 되면 또 다른 강의, 강의 후 개설된 동아리 이어진 활동들을 하며 빠져들고 만다.

미술작품에 대한 수업을 들으면 관련 책들을 읽게 되고 심리 수업을 들으면 나 자신을 돌아보며 글을 쓰게 되고 어반 스케치수업을 듣고는 여행을 가도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관심사는 넓어지고 전혀 다른 관심사로 이어지기도 한다. 또다른 관심사가 생길 수도 있고 지금 하고 있는 어반스케치나 미술작품감상이 더 깊어질 수도 있다.

결국 내 삶이 좀 더 풍성해지는 일이 아닐까?

누구에게나 주어진 소중한 시간. 모두의 관심사나 취향이 다 다르지만 각자의 나무말미의 시간을 소중하고 값지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길 바란다.

나의 '나무말미의 시간'역시 그 어느때보다도 환하고 밝게 빛나는 시간이 될 것같다. 앞으로 도서관에서의 강의가 기다려지고 어떤 강좌들이 개설될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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