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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도서관

그때의 도서관

by 반짝이는 엘리

나의 첫 도서관은 중학교때였다. 중학교 옆에 제법 큰 시립 도서관이 있었다. 학교 끝나고 도서관에 자주 갔었는데 정문으로 가려면 빙 돌아가야했지만 운동장 옆 철조망으로, 일명 개구멍을 통해 가는 것이 일쑤였다. 그 개구멍은 누군가 뚫어놓으면 어느새 막혀있고 또 금세 뚫어놓고 막아놓기를 반복했다. 창과 방패의 대결이었을까? 별것도 아니었지만 개구멍을 통해 가는 도서관이 어찌나 스릴있던지. 나쁜짓을 하러 가는 것도 아니고 목적지가 도서관이라니 정말 바람직하다. 지금생각해보면 차라리 학생들의 자유로운 도서관출입을 위해 쪽문을 만들었어야하지 않나 싶다. 책을 읽겠다는데, 공부를 하겠다는데 막을 일인가?


도서관 주변에는 내가 다니던 여중 뿐아니라 여고, 남중, 남고가 있었다. 주변에 학교가 많아서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학생들이었다. 그래서인지 열람실도 남여 따로 구분이 되어있었고 무서운 직원분이 딱 지키고 계셨다. 공부는 안하고 친구들이랑 휴게실에서 떠들다가 근엄하게 생긴 직원분께 혼나기도 하고 누가 쳐다보지도 않는데 괜히 외모에 신경쓰기도 했다. 그때는 그게 재미였다. 도서관 휴게실과 매점은 여학생과 남학생들의 만남의 장이기도 했다. 음료수를 수줍게 건네기도 하고 삐삐번호가 적힌 쪽지를 몰래 주기도 했다. 물론 나같은 평범한 학생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일이었지만.


종이로 된 학생증을 들고 종이로 된 대출증을 만들었다. 처음 만든 대출증으로 가방 무겁게 책을 들고 가는 마음이 참 든든했다.

친구들은 공부하러 열람실에 있을 때 나는 2층 자료실에서 책을 읽었다. 로맨스 소설도 읽고 추리소설도 읽고 무협지도 읽고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읽었다. 공부하다 지겨워지면 열람실을 나와 자료실에서 책을 보곤 했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한참을 책을 읽다 올라가면 친구들이 어딜갔었냐며 타박을 했다.

중학교 바로 옆 고등학교를 나와 도서관이 가까운 덕에 나의 중고등학교시절이 책을 가장 많이 읽은 때였다. 지금은 책육아라고 책읽는 것을 적극 권장하지만 나는 공부는 안하고 책만 읽는다고 혼나기도 했다. 그래서 아이를 키울때 책육아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기도 했다. 책을 나름대로 많이 읽었는데 공부는 잘하는 편이 아니었기에.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읽은 책들이 공부와 관련된 책이 아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렇게 책을 읽었기에 그나마 했던 걸지도...?


요즘은 도서관에 카페가 입점해있지만 예전에는 도서관 지하에는 대부분 매점이 있었다. 컵라면을 처음 먹은 것도 도서관이다. 컵라면은 도서관 매점의 인기메뉴였다. 뒤돌아서면 배고프던 중고등학교 시절, 용돈 아껴가며 친구들과 나눠먹는 컵라면은 정말 맛있었다.

도서관에 매점은 왜 없어지게 되었을까? 우리동네 도서관만 없는걸까? 아쉬운 대목이긴 하다.


얼마전 친정집에 가는 길에 오랜만에 내가 다니던 중학교가 있는 동네를 지나가게 되었다. 동네는 주변 아파트도 생기고 많이 변한 모습이었다. 즐겨가던 학교 앞 떡볶이집도 없어지고 서점도 다른가게로 변했다. 나의 중고등시절의 대부분을 차지한 시립도서관 역시 변화가 있었다. 도서관이 없어진건 아니었고 이름이 교육문화원으로 바뀌면서 도서관역할뿐 아니라 여러가지 프로그램이나 전시를 하는 복합예술공간이 되었다.


도서관에서 교복을 입고 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들을 볼때면 나의 학창시절도 떠오른다. 친구들과 키득키득거리며 필담으로 수다를 떨었던 시간들, 책 뒤에 꽂힌 손으로 적은 대출기록증. 영화에서 보던 우연한 만남을 기대하며 기웃기웃거리던 순박한 마음들. 오래된 책이나 인기없는 고전쪽 책장으로 가면 쿰쿰한 종이냄새가 났었는데 가끔씩 그때의 향기가 그립기도 하다.

학교와 도서관을 잇는 개구멍은 아직 있으려나? 문득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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