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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수업

도서관 독서문화프로그램

by 반짝이는 엘리

오늘은 조금 특별한 강의를 들으러 서둘러 준비를 했다. 도서관 강의실에서 하는 수업이 아닌 야외수업이었기 때문이다. 날이 더워지기 시작했으니 모자도 쓰고 물도 하나 챙겼다. 오래 걸을 수도 있으니 편한 신발을 신으라는 안내에 따라 운동화도 신었다. 소풍을 가는 아이처럼 나도 모르게 마음이 들떴다.

설렘이 가득한 발걸음으로 버스에서 내려 모이는 장소로 향했다. 어색하게 주변을 둘러보니 신청한 도서관 이름이 적힌 종이를 들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쭈뼛쭈뼛 인사를 하고 참석 명단에 사인을 했다. 주변에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은 서로서로 아는 듯했다. 나만 혼자 왔나? 하는 생각이 들던 차에 함께 동아리 모임을 하는 분이 이곳을 향해 걸어오시는 것을 보았다.

"이 수업 신청하셨네요!"

"아! 아는 사람 없어서 어쩌나 했는데 다행이네요"

도서관이 아닌 곳에서 그것도 약속도 없이 만나니 더 반가웠다.


여름의 시작, 행궁의 돌담벼락과 화성의 성곽을 따라 초록빛이 진하게 빛났다. 오늘 수업은 행궁의 옛 모습과 역사적 의미를 현장을 걸으며 배우는 시간이었다. 골목골목을 누비며 예전의 행궁동 모습이라든지, 나혜석 생가터, 순교 성당, 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 나온 거리, 지금은 이전하고 없지만 역사적의미가 있는 학교터들을 돌아보았다.

행궁동을 갈 때마다 성곽 뷰나 화성행궁 뷰 등의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카페나 레스토랑을 찾아다니기만 했는데 전혀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역시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맞다. 요즘 젊은이들의 트렌디함이 돋보였던 장소가 역사와 전통이 있는 장소로 구석구석 새로워 보였다.


강사님은 중간중간 맛집 소개도 잊지 않으셨다. 유명한 통닭거리 말고도 화교가 하는 중국집이나 아주 저렴한 가격의 칼국수집, 옛날 모습 그대로의 돈가스집을 소개해 주셨다. 주로 이곳에서 오래된 곳이나 역사의 의미가 있는 곳을 추천해 주셨는데 맛깔나는 음식 설명에 갑자기 배가 고파지면서 수업이 끝나면 들러봐야겠다고 메모를 했다. 맛집 블로그에서 알 수 없는 새로운 정보에 마치 현지 맛집 고수가 된 기분도 들었다.


강사님은 한정된 시간 내에 많은 것을 알려주시고 싶으셨는지 걸음을 빠르게 움직였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어느새 저 앞에 걸어가고 계셔서 종종 걸음으로 뒤쫓아가기 바빴다. 정감있는 모습에 감탄하며 사진을 찍다보면 뒤쳐지기 일쑤였다. 요즘은 아파트 단지가 대부분이라 골목길을 보기가 힘든데 행궁동에서는 옛 골목길 감성을 느낄 수 있었다. 벽화가 그려져 있는 골목길, 드라마에 나왔던 곳, 담장을 넘은 붉은 장미꽃들이 골목길만의 낭만이 있었다.


현재 행궁동은 수원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 중 한 곳이다. 트렌디함과 한옥의 조화가 돋보이며 수원화성 부과 행궁 뷰는 마치 멀리 여행 온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옛 모습을 그대로 살리는 것은 어렵지만 행궁동에서는 보존이라는 개념이 잘 유지되고 있다. 주택의 외관을 살리고 안에는 현대식으로 모던하게 인테리어해서 카페나 레스토랑으로 변모하고 있다. 골목골목마다 실거주자들이 점차 줄어들고 너무 많은 집들이 상업시설로 변모하고 트렌디함이 넘쳐흘러 친숙함이 떨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곳이다. 게다가 옛 모습을 잊지 않으려는 사람들까지 있으니 어쩌면 행궁동은 옛것과 새로움이 함께 공존하는 법을 잘 아는 것이 아닐까? 공존할 때 행궁동의 가치와 매력이 더 높아진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 것이다. 우리가 행궁동에 기대하는 것 또한 그것이기 때문이다.


더운 날 한 시간 반 동안 쉴 틈 없이 걸었지만 흥미로운 이야기에 힘든 줄 몰랐다.

행궁동에 올 때마다 새로 생긴 멋진 곳만 찾아다니지 말고 오래전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곳에도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관심이 있어야 보인다.

수업을 듣기 전에는 모르고 지나쳤던 곳이 알게 되니 보이게 된 것처럼 말이다.


인생에 있어서도 관심이 있으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많다. 글쓰기에 관심이 생기니 그제야 글쓰기 관련 모임이나 수업들이 눈에 띄었다. 버스정류장마다 붙어있는 시들도 관심이 생겼고 도서관 수업 역시 한번 들은 사람이 계속 들었다. 어쩌다 보니 도서관 수업의 마니아가 되어 인문학부터 철학, 영화, 미술, 창업 등의 여러 수업 들을 들었다.


수업이 끝나고 강사님이 추천해 준 카페에 커피를 마시러 갔다. 2층으로 올라가니 행궁동의 구시가지가 한눈에 보였다. 오래된 듯한 커피잔에 커피를 한 모금 마실 때마다 구수한 목 넘김이 좋았다. 바리스타의 핸드드립 솜씨가 정성이 느껴졌다.

도서관을 벗어나 현장에서 직접 듣는 수업은 제법 재미있었다. 더운날 한시간반동안 쉴 틈 없이 걸었지만 흥미로운 이야기에 힘든 줄도 몰랐다. 카페에 앉자 발의 피로가 몰려왔지만 창문밖으로 보이는 백년도 더 된 듯한 커다란 나무를 바라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휴대폰을 열어 익숙하게 도서관 앱에 들어갔다. 어떤 재미있는 수업이 올라와 있을지 궁금해하며, 오늘처럼 재미있는 수업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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