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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남을 2루타가 터진 순간

[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현대문학 ]


[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현대문학 ]

 

 글을 쓰고 싶다. 이 단순하고도 강렬한 욕구를 느끼게 된 때가 언제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가장 그럴듯하다고 느껴지는 시기는, 초등학교 즈음 학년이 올라가며 새 반의 낯섦과 어색함이 가득한 상황이다. 다른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그룹을 찾아 헤매며, 소위 '친구'를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나를 제외한.

 그러나 워낙 내성적이었던 나는, 친구보다 손에 쥐고 있던 '책'을 읽는 것에 더욱 흥미가 끌렸던 것 같다. 주변의 소란스러움이 점점 내 안에서 잊히고, 오직 책과 나만이 남아있을 때. 그때 문득 '아, 글을 쓰고 싶다.'라는 느낌을 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철없는 어린아이였던 만큼, 그 바람은 단순하지만 한없이 순수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이 바람은 여전히 내 삶의 가장 큰 원동력으로서 여전히 한 뼘 한 뼘, 잎을 틔우며 자라나고 있다.

 이 책을 서점에서 만나게 된 것은 순전한 우연이었다. 여자친구의 학용품을 사러 갔다 다소곳이 책장에 앉아 나를 바라보던 이 책의 눈길은, 짧지만 잊히지 않을 정도로 강하게 다가왔다. 그때 바로 이 책을 구매하고 싶었지만, 여러모로 가난한 나는 가슴 깊숙이 이 아이의 이름만을 꾹꾹 새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추석이 지나, 다시 한번 우연히 그 서점을 찾았을 때.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얇은 먼지와 함께 날 기다리던 이 책을, 나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다. 거금 2만 원을 털어 결국 나는 이 아이의 손목을 쥔 채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 아이가 내게 들려준 이야기는 그 2만 원의 가치를 터무니없이 능가했다고, 그래서 나는 결코 후회하지 않았다고 지금 부끄럼 없이 말할 수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하루키스트'라는 굳건한 팬층마저 만들어 낼 정도로 세계를 들썩이는 작가이고, 그런 그에 대해 우리는 흔히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전문적인 집필 훈련을 받았을 게 분명해.' 혹은 '소설가로서의 엄청난 재능이 그를 성공하게 만들었을 거야.' 

 거기서 조금 더 나아간다면 '그 사람만의 엄청난 삶의 역경이, 그에게 소설가로서 무한한 영감을 주었을 거야.'라는 생각까지 할 수 있을 것이다. 


 부끄럽게도 나 역시 이러한 생각에 세뇌되어 있는, 어리석은 자들 가운데 하나였다. 글을 쓰고 싶어 하는 별처럼 많은 이들 가운데 변변한 경험 하나 없는 내가 소설을 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요 근래 일종의 좌절감에 빠져있던 나였으니까. 

 하지만 내가 만난 책 속의 하루키는 요즘같이 선선한 가을밤, 맥주를 한 캔들고 동네 공원을 방황하는 여느 아저씨 같은 친근한 느낌이었다. 하나 추가하자면 한 손의 맥주와 함께, 다른 한 손에는 책을 들고 있는 아저씨랄까. 단순히 매일 골방에 틀어박혀 머리를 쥐어싸매는 소설가의 모습이 아닌, 그 아저씨는 동네 헬스장에서, 집 앞의 카페에서, 골목 숨어있는 단골 맥줏집에서도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이웃'의 모습이었다.

 하루키가 스스로 '소설을 써야겠다'라고 결심하게 된 때를 회상하는 장면은 이러한 내 느낌의 절정을 찍었다. 그의 이 결심은 총알이 목숨을 위협하는 전쟁터도, 끝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는 순례길에서도, 자아를 찾아 떠난다는 거창한 여행도 아닌 '야구장에서 2루타가 터진 순간'에 이뤄졌다. 


 대체 작은 공이 날아가는 순간과, 소설가로서의 여생을 결정하게 된 순간에 무슨 연관이 있을까? 웃음이 나올 정도로 아무런 맥락이 없는 결심을 그는 '마치 하늘을 떠돌던 새의 깃털이 우연히 머리 위로 살며시 내려앉은 것 같았다'라고 표현한다. 

 우리가 굳이 이를 이해하려 노력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타인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듯, 그 역시 그 스스로만이 이해할 수 있는 느낌이었을 테니 말이다. 어쨌든 이러한 그의 조금은 엉뚱한 모습과 함께 그는 소설가로서 지성보다는 체력을 강조하고, 크나큰 사건이 아닌 작은 일상들의 연속을 중요시한다. 불현듯 기적적으로 찾아오는 영감보다는 꾸준히 반복되는 사고思考를 말하고, '작가로서의 즐거움'을 말한다. 


 그는 작가가 글을 쓴다는 즐거움을 잊게 되는 순간은 곧 '독자가 글을 읽는 즐거움을 상실하게 되는 순간'이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그는 30년이 넘는 작가로서의 세월 동안 글을 쓴다는 것의 즐거움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으며, 이는 하늘이 내린 어떤 재능보다 중요한 것임을 잔잔한 목소리로 읊조린다.

 영화, 드라마, 그리고 소설까지 모든 인간의 작품들은 '절정'이 없이는 인기를 끌지 못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다. 우리가 읽는 소설 속에서 주인공이 아침에 일어나 맛있게 밥을 먹고,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를 성실히 하며, 기분 좋은 꿈을 꿀 거라 기대하며 침대에 몸을 누이는 과정을 한 권 내내 반복해서 본다면 어느 누가 재미를 느끼겠는가?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야기'의 주인공들에게만 해당된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위와 같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하루의 의미를 쌓아가는 '삶'의 주인공들이다. 우리에게는 모두 각자의 발단에서 결말까지의 이야기가 있으며, 무엇보다 이것을 잊지 말아 달라고 하루키는 부탁한다. 

 소설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이 책은 새로운 눈을 뜨게 해주지만, 살아가는 모든 주인공들에게 이 책은 당신의 삶을 응원한다며 어깨를 두드려 줄 것이다. 


 여담이지만,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 2016년 노벨문학상 수상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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