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왜 노무현은, 어떻게 김대중은

[ 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 메디치미디어 ]


[ 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 메디치미디어 ]


 바야흐로 '설득의 시대'다. 법이라는 약속 아래, 우리는 더 이상 원하는 것을 가지기 위해 남을 마구 때리거나, 물건을 훔치지 못한다. 만약 그런 짓을 저지른다면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원했던 것들이 아닌, 차가운 한 쌍의 수갑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상대방의 온전한 마음을 얻는 데 폭력이 더더욱 쓸모가 없다는 진리를 일깨워준다.

 그렇다면 우리가 상대방의 모든 것, 즉 상대방의 마음은 물론 자발적인 지지까지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말과 글을 통한 '설득'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설득의 힘은 특히 거대하다. 정치는 한마디로 '누가 더 국민의 마음을 많이 얻느냐로 승패가 갈리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국민들을 설득하기 위하여 스스로의 무기인 말과 글을 갈고닦아, 연설이라는 형식으로 전투에 나선다.

 그리고 이 게임의 결과는 어떠한 말과 글이 더 많은 국민을 납득시켰는가로 갈린다. '자신'이 꿈꾸는 나라가 '모두'가 함께 꿈꾸는 나라가 되었을 때, 말과 글의 힘은 정점을 찍는다. 그리고 여기, 일부가 아닌 '전 국민'을 설득시키는 데 성공한 두 정치인의 말과 글이 담긴 책이 있다.


 저자인 '강원국'은 청와대에서 8년 동안 '스피치 라이터(Speech writer)'로 일했다. 스피치 라이터(연설기록비서관)란 대통령의 연설문을 작성하는 공무원으로,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과 글은 이 사람의 손끝에서 재탄생했다.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한두 명이 아닌 오천만 국민을 설득해야 하는 자리인 만큼, 저자의 생생한 경험담은 대통령이 국민의 마음을 얻는 데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해야 했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저자는 두 대통령의 글을 써나가며 동시에 설득의 힘의 거대함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두 거인이 글쓰기로 어떻게 국민과 대화하였는가, 그는 이 책에서 이를 우리에게 가감 없이 보여준다.

 먼저 노무현 대통령의 글쓰기는 처음부터 듣는 이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연설문이 길고 지루할수록 청중의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렵고, 졸음만 몰려올 뿐이다. 그렇기에 노 대통령은 모든 연설문을 요약하는 한 단어, 한 문장을 찾기 위해 무던히 애썼다. 그리고 그 핵심을 문장들이 뒷받침하는 형태로 글을 이어나갔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면, 공무원에게 인사청탁을 해 불법적인 이득을 보려는 자들에게 그는 이 단 한 문장만으로 강력하게 경고한다.

 "인사청탁하면 패가망신한다." 


 이 짧은 문장을 통해 인사청탁을 하려는 자들도, 인사청탁을 해주려는 공무원에게도 잊히지 않을 강한 인상을 남긴 것이다. 이렇듯 그는 듣는 이를 배려하여 누가 들어도 대통령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는 데에 노력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글쓰기는 글에 다채로운 '이미지'를 덧입혔다. 김대중이란 세 글자를 들으면 자연히 떠오르는 '햇볕 정책','아랫목 윗목론'등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친숙한 대상을 경제, 안보 등의 어려운 주제에 비유해 이해를 도왔다. 



 만일 햇볕 정책을 '북한을 향한 경제적 지원을 통한 남북 관계 경색 해소와 공동 성장'이라고 길게 썼다면 국민들의 뇌리에 대통령의 말과 글이 이렇게 깊이 남을 수 있었을까? 그는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데 성공한 것은 차가운 바람(북한에 대한 제재)가 아닌 따뜻한 햇볕(북한에 대한 다방면의 지원)이었다며 국민들에게 어렵게 느껴질 통일 정책을 한 편의 동화와 같이 표현했다. 

 그가 이렇게 듣는 이들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한 무수한 노력들은, 손녀뻘의 비서관을 앞에 두고 몇 번이나 연설문을 연습했다는 데에서도 엿볼 수 있다. 즉 그는 글쓰기의 목적이 글을 쓰는 이의 자기만족이 아닌, 어디까지나 듣는 이들의 쉬운 이해에 있어야 함을 누구보다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이러한 두 대통령의 글쓰기 방식 외에도 강원국 작가는 청와대에서 그가 겪은 일화들을 통해 대통령의 속 사정을 들려준다. 비서실의 실수로 연설문이 누락되어 대통령이 애드리브로 연설을 한 것, 발표 2시간 전에 연설문 전면 수정 요청이 오는 등 그가 겪은 대통령의 연설문이란 매일 최선을 다해도 부족할 만큼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두 대통령에게 연설문이란, 단순하고 일방적인 정부의 발표가 아닌 '국민과의 소통'이라는 점을 깨닫는다. 어디까지나 낮은 자세로 임하며 국민을 이끄는 것이 아닌, 국민과 함께 가는 것이 두 대통령에게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이었다는 것을 느낀다. 누구보다 존경한 그들이었기에 그는 이 책을 '두 대통령을 향한 연서(戀書)'라고 표현하며 이제는 저물어버린 두 위인을 추억한다.



 폭력으로 자유를 앗아갈 수 있다. 왜곡된 정보로 판단을 흐리게 할 수 있다. 자유로운 표현을 억압하여 모두 불만이 없는 듯한 사회를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떤 강제적인 수단을 쓴다 해도 이를 통해 '국민의 마음'만은 얻을 수 없다. 

 노무현, 김대중 두 전 대통령의 모든 것을 긍정할 수는 없다. 그들도 다른 정치인들과 다를 바 없이 때로는 국민의 뜻에 반하기도 하고, 무리한 결정들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국민과 소통하며 설득하려는 노력' 하나만은 포기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불통'의 답답함에 분노를 감추지 못하는 요즘, 이 당연한 노력이 아마 우리가 두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전 03화 역사에 남을 2루타가 터진 순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