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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집은 달동네입니다

[ 아홉살 인생, 위기철, 청년사 ]


[ 아홉살 인생, 위기철, 청년사 ]


철들 생각 없습니다.


 아이는 어서 어른이 되길 바라고, 어른은 다시 아이가 되길 바란다. 이 모순된 마음을 가져 보지 않은 어른이 이 세상에 한 명이라도 있을까? 비교적 젊은 지금의 나조차도 아이일 때를 그리워하는데, 우리의 부모님 세대는 오죽할까 싶다. 

 특히 시를 쓰고자 하는 사람에게 '어른스럽다'라는 말처럼 고통스러운 수식어가 없을 것이다. 시란 동심에 기대어서 바라볼수록 빛나기 때문에, 어른이 되어버린 시인은 아등바등 어린 '척'을 할 수밖에 없다. 비록 비참함을 느끼더라도, 어린아이의 눈을 가질 수 있다면 영혼까지 팔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시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 아홉살 인생 ]은 이러한 관점에서 한 편의 '동시'와 같은 소설이다. 작가인 위기철은 스물아홉 살의 어른의 눈으로, 아홉살 '백여민'의 인생을 관찰한다.

 여민이의 몸은 어린아이이지만, 그 나름의 인생은 결코 평탄하지 않다. 일용직 노동자인 아버지, 시각 장애인인 어머니. 그리고 그것들과 자연스러운 가난은 여민이를 아홉 살 답지 않은 아홉 살로 만들어 나간다. 


 이사 간 산동네에서 여민이는 순수한 관찰자로서 산동네 사람들을 바라보고, 이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자식도 없이 혼자 토굴 같은 독방에서 죽어 간 토굴 할멈, 유일한 친구이자 거짓말쟁이인 기종이, 자꾸 싸움을 걸어도 싫어할 수 없는 여자아이 우림이, 홀로 골방에서 공부만 하다 스스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골방 철학자까지……. 

 산동네 사람들에게 가난은 당연한 것이고, 절망은 숨 쉬듯 자연스럽다. 여민이는 이러한 사람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생각을 아무런 편견 없이 늘어놓는다. 


 여민이의 이런 시선은 너무나 순수하기에 어른인 우리들에게 더욱 아프게 다가온다. 산동네의 어른들은 서로의 앞에선 치켜세워 주지만, 뒤돌아서는 거리낌 없이 조롱과 욕을 했다. 돈 있는 이 앞에선 한없이 비굴해지고, 자신이 겪는 고통엔 항상 그럴듯한 이유를 붙이며 합리화시켰다. 잘 알지도 못하는 이웃을 소문만으로 판단하고, 강자의 폭력은 방관할 뿐이었다.

 이런 부끄러운 어른들 앞에서 여민이의 혼잣말은 우산이 없는 날 갑작스러운 소나기를 만난 듯, 강렬하게 다가온다. 골방 철학자를 비난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여민이는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이란 없다. 길가의 돌멩이조차도 장독대 뚜껑을 누르는 쓸모가 있다. 만약 골방 철학자가 정말 쓸 데가 없다면, 돌멩이 대신 골방 철학자를 올려놓으면 될 뿐이다."

 우리는 어느새 모든 가치를 '돈'으로 결정하고 있다. 이 일을 하면 얼마 정도 내게 이익이 있고, 저 일을 하면 얼마 정도 손해가 있으니 하지 말자,라는 말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하지만 애초에 '가치'의 단위라는 것이 돈으로 정의될 수 있는 것일까. 


 여민이의 말처럼 지구상에 수없이 존재하는 돌멩이 하나에도 나름의 가치가 있다. 하물며 그보다 훨씬 수가 적은 인간에게 가치가 없을 수 있을까. 

 아이의 시선은 이렇게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를 하염없이 부끄럽게 만든다. 어쩌면 아이는 '어른답지 못 한 어른'들을 혼내기 위하여 하늘에서 보낸 존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민이의 짧은 아홉살 인생은 우리에게 기나긴 가르침을 준다. 또한 위기철 작가는 이러한 가르침을 굳어버린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일깨워준다. 


 '어느새 나도 비겁한 어른이 되었다.'라고 안타까워하시는 분들에게 이 책을 한 번 읽어보라 하고 싶다. 그리고 아이와 어른의 구분이 결코 나이가 아니란 것을 깨달았으면 좋겠겠다. 우리가 모든 것에는 나름의 가치가 있다는 점을 진정으로 깨닫는다면, 우리는 언제고 아이로 되돌아갈 수 있음을 [ 아홉살 인생 ]이 말하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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