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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변기에는 왜 파리가 있을까?

[ 넛지, 리처드 탈러, 캐스 선스타인, 리더스북 ]

[ 넛지, 리처드 탈러, 캐스 선스타인, 리더스북 ]


여러분은 이 글을 읽을 '자격'이 없습니다.


 평소와 같이 블로그를 하다가 혹은 인터넷 서핑을 하다, 위의 빨간 제목을 보고 발끈(?)해서 이 글을 읽게 되었다면 먼저 사과를 드리고 싶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 그리고 누구보다 내가 제일 잘 알다시피… ) 만일 내가 제목을 저렇게 짓지 않고 '행동 경제학의 저명한 도서, [ 넛지 ] 리뷰'라고 적어놓았다면, 과연 여러분이 이 글을 읽기 시작이나 했을까? 당신이 이미 4줄이나 읽어버렸다는 점에서, 여러분을 향한 나의 '넛지(Nudge)'는 이미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참으로 낯선 낱말인 넛지(Nudge)는, 신조어나 어려운 학술 용어가 아니라 단순한 영어 단어일 뿐이다. 바로 이 Nudge는 '팔꿈치로 꾹꾹 찌르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를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대놓고 내가 원하는 것을 상대방에게 요구하거나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눈웃음과 함께 팔꿈치로 꾹꾹 찌르며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상대방을 슬그머니 '유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인 리처드 탈러와 캐스 선스타인은 전 세계 경제학의 '락스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대단한 인물들이다. 리처드 탈러는 행동 경제학의 대가로서 2017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고, 캐스 선스타인은 미국 오바마 정부의 핵심 참모로서 중용되었다. 이러한 그들이 주장하는 넛지란, 그 단어 뜻에 충실하게 '국민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은근슬쩍 이끄는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저자들은 먼저 우리 일반 국민들에 대한 정의를 내린 후에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그들은 '호모 이코노미쿠스(경제적 인간)'을 줄인 '이콘'이라는 이상적인 인류의 모습과 / 실제 우리가 드러내는 평범한 모습인 '인간'을 비교해서 설명하고 있다. 이콘은 한마디로 '완벽히 합리적'인 인간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항상 이익과 손실을 정확히 계산할 줄 알며 어떤 실수도, 착각도 없이 -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법만을 정확히 실행한다.


 하지만 우리 '평범한' 인간들은 알다시피 그렇지 않다. 우리는 숱한 유혹에 넘어가고, 한때의 충동을 참지 못해 나중에 발생할 수많은 이익을 내팽개친다. 그리고 설령 이 결정이 내 인생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라 해도, 당장 내가 '귀찮다'라고 느낀다면 그 결정을 차일피일 미루기 일쑤이다. 저자인 리처드 탈러와 캐스 선스타인은 이런 우리가 잘못되었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이는 우리가 인간이기에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인정하는 데서부터, 우리를 바꾸려는 그들의 '넛지'가 시작된다.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2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바로 '게으름'과 '흥미'가 우리의 행동을 자연스레 변화시킬 수 있는 키포인트라는 것이다. [ 넛지 ]는 이 주장들에 대해 우리가 흔히 주변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사례들부터 경제, 정치 분야의 커다란 예시들까지 다루어 설명하고 있다.


 먼저 게으름이란 말 그대로 우리 평범한 인간들의 귀차니즘, 즉 '타성'을 의미한다. 여러분에게 묻고 싶다. 혹시 새로운 웹사이트에 가입할 때, '가입 약관'이라는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는 분이 있는가? 또는 새로운 보험에 들으려 할 때, 우리의 목숨 값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것의 자세한 계약사항을 정말로 전부 다 읽은 후에 사인을 하는가?

 위의 질문들에 모두 '네'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도 중요한 인생의 판단들을 단지 '귀찮다'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쉽게 포기해버리곤 한다. 얼마든지 악용될 수 있는 개인정보의 유출(웹사이트 가입), 수년간 보험료만 내고 정작 큰일이 났을 때 보상은 받지 못하는 경우(보험 계약) 등은 우리의 귀찮음에 젖어, '설마'라는 단어의 뒤에서 잊혀 버린다.


 이러한 인간의 귀찮음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용하기 위해 저자들은 우리가 부지런해지기를 기대하지 말라고 말한다. 대신 우리가 반드시 필요로 하는, 또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정보들만 추려서 아주 간단하게 제공하라고 주장한다. 즉 개인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면 이러한 데이터가 어디에 쓰이는지, 만일 내가 사고가 난다면 얼마를 받을 수 있는지만 요약해서 알려주고 동의를 받으라는 것이다. 이럴 경우에만 우리는 소비자로서의 권리를 온전히 지킬 수 있고, 소위 장사꾼들의 '술수'에 넘어가지 않게 될 것이라고 저자들은 주장한다.

 두 번째인 '흥미'란 우리는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이끌리는 재미 또는 흥미가 없다면 결코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이미 여러분이 겪은 바 있다. 그래, 내가 이 책 리뷰의 제목을 여러분이 화날 만하게 적은 것은, 여러분이 약간의 분노와 동시에 '이 자식이 어떤 내용을 썼길래 이딴 말을 써놓은 거야?'라며 흥미를 느끼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는 뭐, 여러분이 이미 잘 알고 계시지 않은가? (이미 이 리뷰의 후반부에 이르렀다)


 또 아주 손쉬운 예를 들자면 남자 화장실의 소변기에 붙어있는 '파리 스티커'를 들 수 있다. 남성분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겠지만, 공중화장실의 남자 소변기 아랫부분에는 파리 모양 스티커가 붙어있다. 그리고 이는 볼일을 보는 남성들에게 격렬한 '조준 본능'을 일깨워 소변을 거기에만 맞추게끔 유도한다. 

 이는 네덜란드의 공항에서 처음 적용된 방식인데, 이를 통해 남자 화장실의 청결도는 자그마치 80%나 올라갔다고 한다. 즉 소변을 보는 남성들의 흥미를 이끈 스티커 한 장이, 굳이 '소변을 흘리지 마시오'라고 엄포를 놓는 방식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우리를 '넛지'한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두 가지 특성 '게으름'과 '흥미'를 자극하여 세상을 좀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 있다는 저자들의 설명은 참으로 흥미로웠다. 이 책이 행동 경제학이라는 딱딱한 말보다, '심리학' 책 같다는 말이 더 우리에게 와닿는 이유가 이 때문일 것이다. 나는 [ 넛지 ]를 읽으며 이 책이 점점 민주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존중해가는 우리 시대에 '은근한 설득'의 힘을 보여준 - 파괴력 있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 불편하게 느낀 것은 이 책이 어찌 보면 너무나도 인간을 '얕잡아 보는 것' 같이 느껴졌다는 점이다. 위에서 말했듯 [ 넛지 ]에는 수많은 사례들이 나오는데, 거기에는 '윤리적 논란'이 될 만한 것들 역시 많았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10대 미혼모들의 새로운 임신을 막기 위해 그녀들에게 임신을 안 할 동안 1달러씩을 제공하자던가(나는 이 주장을 하며 무덤덤한 그들의 말투에 약간 소름을 느꼈다), 생전에 장기기증을 거부한다는 약속이 없었다면 이를 자동으로 허락한 것으로 여겨 보호자의 동의 없이 장기를 적출해야 한다는 등의 것들 말이다. 


 이러한 예시들은 물론 머리로만 차갑게 생각하면 모두의 이익을 향상시킬 수 있는, 좋은 일이다. 하지만 마치 사람을 도구처럼, 또는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는 짐승처럼 여기는 듯해 썩 기분 좋은 감정은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역시 경제학자들의 책이다 보니, 너무 눈에 보이는 플러스(+)와 마이너스(-)에만 신경을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인간이지, 본능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동물이 아니지 않은가.

 이 외에 사소하게 불평을 하나 하자면, 교수 두 명의 합작품인 이 책은 대중 서적이라기보다 마치 논문과 같이 어렵게 쓰였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상당히 난해하고, 딱딱했다. 특히 제2부 '돈' 파트에서는 의료 보험과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대해 분석한 글이 있었는데, 솔직히 나는 이 부분을 읽다가 몇 번이나 머리를 감싸 쥐어야 했다. 만일 나중에 개정판이 나온다면, 조금 더 책이 두꺼워지더라도 이해하기 쉬운 용어를 사용하였으면 싶다.


 [ 넛지 ]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주장 중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정책 기조로 선택되었다는 점이 그 사실을 뒷받침하기에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꼭 거대한 범위의 정책이나 법이 아니더라도, 이는 우리 생활 속 '설득의 스킬'로도 쓸 수 있다. 하찮은 책 리뷰를 쓰는데도 넛지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잘나지도 않은 내가 증명하지 않았는가? 내 팔꿈치에 꾹꾹 찔려 여기까지 와준 당신에게 감사하며, 그대 역시 턱을 괴는 것보다는 효과적으로 '팔꿈치'를 쓰는 방법을 [ 넛지 ]를 통해 배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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