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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 일이 일어났다.

내 강아지가 아프다.

by 엘리멘탈 Mar 25. 2025

얘네 보내줘야 할 때가 오면 나는 보호자로서 보내줄 거야

Quality of life is more imporant 

(삶의 질이 더 중요해)

It is my responsiblity to let them go in peace 

(평안하게 보내주는 것도 내 책임이야)


어느 날부터인가 매일 얘기했던 거 같다. 

아이들이 열 살이 넘어가고쯤 

아이들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느낄 때쯤 

그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내가 의식할 때쯤. 

아마 그러지 못할 나를 알기에 내 무의식이 나 자신에게 주문을 걸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빠는 똑똑했다. 내가 삶의 질 운운하며 안락사 어쩌고 저쩌고 떠들어 댈 때 자기는 못할 거 같다고 했다. 그러면 나는 보호자가 내려줘야 하는 결정이라고 똑똑한 척 나불거렸다. 나는 한 치 앞도 못 보고 나 자신도 모르는 장님에, 멍청이였다.


브런치 작가로 신청할 때의 나는 나이 들어가는 내 강아지들에 대한 이야기도 쓰고 싶었다. 아니, 써야만 했다. 철부지 아무 생각 없을 때 데려온 두 작디작고 소중한 생명체들이 지금의 나라는 사람을 만드는 데 아주 큰 한몫했기 때문에다. 아이들이 건강할 때 이야기를 시작해서 아주 잘 기록하고 싶었다. 아주 사랑을 가득 담은 애틋한 마음으로. 나중에 그 시간이 오면 그때쯤에는 내가 차곡차곡 마음을 다잡았기를, 준비가 되었기를 하는 마음으로.


내 당찬 포부와는 다르게 우리의 삶의 난이도는 수직 상승 했고 나는 글쓰기는커녕 책 한자 읽을 마음의 여유가 없어졌다. 


새 집으로 이사를 하고 태양이가 귀가 거의 안 들린다는 걸 확실히 알았다. 그게 그렇게 마음이 아프고 슬펐다. 이 놈이 이제 내 목소리를 못 듣는다니 사랑한다 예쁘다 잘한다 매일매일 말해줄 걸 소리 지르고 혼내지 말걸. 애가 내가 집에 와도 못 알아차릴 때, 소리가 안 들리니 내가 어딨는지 몰라서 여기저기 찾으러 다닐 때, 태양아 해도 반응 없는 내 강아지를 볼 때 나는 후회와 속상함으로 너무 괴로워서 가슴에 매일매일 멍이 들었다. 그래서 안 그래도 한 수도꼭지 하는 나는 한동안 우기였다.


이게 현실이라는 걸, 태양이가 이제 나를 영영 못 들을 거지만 그래도 그 와중에 좋은 점도 있다는 걸, 귀가 안 들리는 걸 담담히 받아들이는 게 한참 걸렸다. 이 예민한 아이가 매 주말 터트리는 폭죽, 옆집의 레노베이션 공사소리, 하루 종일 짖는 옆집 강아지, 천둥소리 등에 깜짝 놀라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래서 '그래 귀가 안 들리니까 좋은 점도 있어' 하며 나를 다독였다. 


그러는 즈음에 태양이는 한껏 신나서 zoomie 하며 까불면서 소파에 뛰어오르다가 순식간에 고관절을 다쳤다. 다치는 순간에 얼마나 고통스럽게 그리고 우렁차게 애가 소리를 질렀는지 그 소리가 내 귓가에 남아 한참 동안 나를 괴롭혔다. 원체 뒷다리가 약한 강아지였다. 6주 때부터 보던 의사 선생님은 태양이가 살짝만 살쪄도 관리하라고 하셨고 2살 이후부터는 매 끼니마다 사료 무게를 재서 주며 체중 관리를 했다. 그 다친 날도 내가 마침 "태양이 요즘 살찐 거 같아, 살 좀 빼야 해"라고 했던 참이다. 내 탓 같았다. 아니 내 탓이었다.


이미 태양이는 열다섯 살이었다. 병원에서는 나이가 들어 고관절을 다쳤으니 어쩔 수 없다고 했고 나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마 회복되지 않을 거라고 했을 때 나는 또 무너졌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 없었다. 아무 데도 못 뛰어오르게 계단을 만들고 미끄러지지 않게 러그를 깔고 매일 마사지하고 아이스팩, 핫팩 하며 기도했다. 그랬더니 3개월 지나니까 애가 뒷다리를 쓰기 시작하고 2주 만에 다 빠졌던 근육이 슬슬 다시 붙으면서 6개월 지났을 때는 많이 좋아졌다. 제가 언제 고관절을 다쳤었나요 하며 원래대로 총총 거리며 다닐 수 있게 됐을 때 글을 한번 써보려고 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어떻게 다쳤고 어쩌고 쓰다 보니 또 눈물이 광광 났다. 그래서 또 접었다.


지금이야 저건 아무것도 아닌 훨씬 더 많은 상황을 겪어 냈기에 아무렇지 않게 (=엉엉 울지 않고, 도망가지 않고) 담담히 써내려 가고 있지만, 그 당시에 나는 내 강아지들이 늙어가는 거, 아픈 거 생각을 하는 것만도 마음이 찢어지듯 아파서 아예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모든 게 다 내 탓 같았고 모든 게 다 후회 됐고 너무 미안하고 너무 속상해서 피하고 도망쳤다. 그래서 글 쓰는 건 불가능했고 무기한으로 덮어 놨었다.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이제 정말 내가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완벽주의자 성향이 살짝 있는 나는 글을 쓸 때 내가 계획한 대로 순서에 맞춰 내 기준에 맞춰 내 성질대로 쓰고 싶었다. 이 글들은 나를 위한 일기 같았기에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여 제대로 쓰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정한 완벽함을 따라가기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계획하는 대로 인생이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그냥 닥치는 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내 컨트롤에서 벗어나는 일이 있을 때 나는 힘을 내어 빠져나오던지 

아님 그냥 견디고 버텨 내야 한다는 것을 

지난 육 개월 동안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리고 나에게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음을.

내 아이들의 이야기를 지금 당장 최대한 많이 남겨놓아야 함을.

깨달았다.


그래서 내가 정해놓은 기준과 완벽함에서 벗어나

글을 그냥 쓰기로 했다.


흐르는 눈물은 어쩔 수 없고 

슬픈 마음을 막을 수 없지만

그저 내가 끝까지 내 정신줄을 

부디 꽉 잘 붙잡고 있기를 바라며

글을 쓰겠다.


내 아이들이 내 옆에 숨 쉬고 있는 동안 

이 소중한 시간들을 어떤 식으로든 기록하고 싶다.

나를 위해, 그리고 오빠를 위해, 그리고 내 사랑하는 태양이와 꼬맹이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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